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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다이어리에 항상 적어 지니고 다녔던 리스트가 있었다. 다름아닌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이었는데, 서울대 학생들은 무슨 책을 읽을까에 대한 호기심으로 한권씩 읽으며 지워나갔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였을까? '서울대'라는 말은 어디에 붙든 묘하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 같다. 특히 그게 책이라면 더더욱.
이 책 역시 그랬다. 서울대학교 인기 교양 강좌인 '진화와 인간 사회'를 책으로 엮은 것이라는 말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국내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진화인류학을 더 많은 이들이 알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엮은 책이라는데, 그 설명에 충실하게 진화인류학에 대한 기본 개념을 잡아주는 것에서부터 진화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사회와 문화, 도덕과 종교까지도 아우르고 있다.
18세기 이후 인류학이 학문 분야로 자리잡으면서 인류학은 문화인류학, 고고인류학, 언어 인류학, 진화인류학의 네 가지 분야로 나뉘었다. 이 책은 그중에서도 진화인류학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에 따르면, 진화인류학은 마치 시간 여행을 떠나듯이 우리 인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매혹적인 학문이라고 한다. 몇백만 년에서 몇십억 년 에 이르는 광대한 시간 속에서, 우리 인간의 몸과 마음이 어떻게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해 왔는지를 탐구하는 학문.
본래 다윈 이전의 인류학은 성경에 기반해서 인종과 민족을 나누고 세상 모든 존재의 위계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그러나 중세 유럽을 지배하던 기독교 중심의 세계관은 15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대항해시대를 거치며 서서히 도전을 받았고, 다윈의 진화론이 대두되면서 인류학은 기독교 세계관을 넘어서 인간과 자연에 대한 새로운 사고와 관점을 제시하며 발전하기 시작했다고.
사실 학문은 배우는 것도 읽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누군가는 평생을 바쳐 연구한 기록이 학문이기 때문에. 진화인류학 역시 하나의 학문이다보니 읽는 것이 녹록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흥미로운 부분도 많아서 계속 읽어나갈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건 인간이 이족보행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산통(産痛)을 심하게 겪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책에 따르면, 놀랍게도 인간 외에는 이렇게 산통을 심하게 겪는 포유류가 별로 없다(!)고 한다. 두발 걷기의 진화로 인해 인간의 골반은 점점 작아지고 좌골극이 튀어나오며 천골이 넓어졌다. 한마디로 골반이 접시 모양에서 사발 모양으로 변했다는 뜻이고, 이는 출산과정에서 아기가 세상으로 나오는 문이 좁아졌다는 걸 의미한다고. 출산이 힘든 이유가 이족보행 때문이라는 건 상상도 못했기에 더 흥미로웠던 것 같다.
사실 이 책은 한 번 읽어서는 온전히 이해해서 내것으로 남기기 어려운 책인 듯싶다. 그래서 몇 번 더 읽어보고 내것으로 만들고 싶어졌다. 진화인류학을 이해하면 인간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