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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엘리스님의 서재

  박완서 님은 내게 특별한 분이다. 내게 문학의 꿈을 심어주셨고, 여성도 저렇게 당당하게,

단호하게 살아가야한다고 길을 가르쳐주신 분이다. 나는 대학 1학년에 어느 수업 강의실에

앉아, 20년 후 나의 모습을 글로 쓰라는 중간고사 시험지를 받았다. 나는 직업을 4개 가지고 사는

커리어 우먼의 하루를 일기처럼, 수필처럼, 소설처럼 형상화해서 썼던 기억이 난다. 그 중에 하나

는 소설가가 되어서 박완서와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어있는 것이었다. 대학입시를 하던 20대 초반

시절, 내 인생에 가장 부럽고 존경스럽던 분이 바로 그 분이었다.

   박완서 님은 현재 70대 후반의 연세에도 비교적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몇 안되는 작가이고, 여

성 분이다.이번에 나온 '친절한 복희씨'는 책 안에 실린 단편 중 하나의 제목이고, 한 때 대중적으

로 성행했던 어느 영화의 제목을 패러디한 것 같기도 하다. 더러는 2006년에 나온 작품도 있고

연도는 섞여있으나,  가장 최신의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어쩜 그렇게 글이 여전히 깔끔하고

군더더기 하나 없을까. 정말 감탄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실력이다. 천의무봉의 실력에 노련미와

마음까지 깃들었으니 박완서의 작품은 갈수록 좋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더욱 깊어진 안목과 삶을 끌어안는 마음으로 차분하게 서술하는 것을 따라가다 보면 간혹,

이것은 대중들이 제법 좋아할만큼 통속적이기도 하고, 아주 깊은 혜안을 가진 덕으로 흔히 말하는

본격 문학으로도 빠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수필같기도 하고 일기같기도 하지만, 가장

크게 와닿는 부분은, 그녀가 바로 우리들 앞에 앉아 조곤조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얘야, 이 사람아, 있잖아, 내 얘기 한 번 들어봐... 이런 식의 옛날 이야기

처럼 그녀의 이야기는 분명한 서사가 있으면서도, 한 번 들으면 끝나고 말 가볍고 싱거운

얘기가 아니라, 뭔가 아릿하고 아련하며 읽은 이의 마음을 건드리고 추억을 일깨운다.

그래서 그 이야기는 포근한 문체와 함께 자체로서 생명력을 가진다. 독자와 함께 공존하고

독자와 함께 사라질 것이다. 자극적이거나 지나치게 예술성을 추구하는 현대의 모든 예술

작품을 아우를 수 있는 힘은 뭐니뭐니해도 포용력일 것이다. 얼마나 넓고도 깊게 감동을

줄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중요하다. 나이가 주는 경험과 혜안으로 삶을 싸안고 어루만지는 힘은,

마치 어릴 적 외할머니가 내가 체했다고 할 때마다 나를 눕혀놓고 배를 둥글게 맛사지해주던

기억과 맞먹는다. 박완서의 글은 치유의 힘을 가진다. 나보다 낮은 사람들의 한을 보여주어

내려보게 하고, 그러나 그렇게 사는 서민이나 한많은 사람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과 주장

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의 삶을 내게 대어보고 우월감을 느끼라는 것이 아니라 포용력을

가지라는 것이다. 포용력은 이기주의나 개인주의와 대립되는 개념일 수 있다. 노년 문학이라고 해

서 젊은이들보다 나이 드신 분들이 읽어야 할 책은 아니다. 오히려 그녀의 글은, 따뜻하고

느긋한 마음을 갖기 힘든 시기인 10대, 20대부터 읽어야 한다. 그녀의 감수성 또한 그들에 밑지지

않는다. 그녀는 아직도 촉수가 예민해서 모든 것을 감지해낸다. 그래서 이야기 속 여인들은, 혹은

사람들은 자신의 공간 또한 확실히 지니고 있는 인물들이다. 그 속에 푸근함과 여유가 또 한번

사골 국물 우러나듯 우러나오니 오히려 보너스라고 생각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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