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학과나 영어교육과 출신이라면 거의 필수적으로 영어의 역사에 대한 강의를 듣게 된다.
나도 학부시절에 그런 강의를 흥미롭게 수강한 기억이 있다.
지금은 고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어떤 언어의 변천을 간략하게라도 알고 있는 것은
그 언어를 가르칠 때 상당한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영어와 프랑스어는 왜 비슷한 단어들이 많은지. 왜 영어는 발음과 스펠링의 차이가 큰지.
영어가 어떻게 세계적인 언어가 되었는지. 왜 영어에는 비슷한 뜻을 가진 단어들이 많은지에 대한
답을 알 수 있다.
오늘 리뷰하는 이 책에도 이상의 질문에 대한 답이 들어 있다.
고대 영어부터 현대 세계 각지에서 사용되는 영어까지 연대순으로 나열되어 있는데 페이지는 많지만
술술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 기본적인 영어단어들의 족보를 추적할 수 있는 점이 재밌다.
이 책의 처음부분에는 인류 공통어를 가지고 싶어하는 인류의 열망을 반영하는 인공어를 소개하고 있다. 에스페란토라는 언어인데 본인도 에스페란토를 공부하고 지금도 에스페란토를 지지하는 입장에서 이 언어가 소개되어 있는 점은 반가웠다.
이 책에서는 에스페란토는 고귀한 이상을 가지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에스페란토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은 영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시중에 영어의 역사를 다룬 책들은 이미 여러 권 번역되어 있다.
이 책에서 긍정적인 인상을 받은 것은 다른 책의 저자들이 특정 인물이나 작품이 영어에 끼친
영향을 과대 평가하는 것에 비해 이 책의 저자 필립 구든씨는 상당히 침착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영어의 발전에 크게 영향을 준 셰익스피어나 킹 제임스 성경에 대한 높이 평가하면서도
이런 작가들이나 작품들 외에도 다른 작가들과 작품들로 인해 영어가 발전되어 왔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계속 읽어가다 보면 약간 지루한 감이 들 수 있을 것 같다.
신대륙의 발견과 영국의 식민지 확장으로 외부의 여러 단어들이 영어에 유입되는 과정이 묘사되는데 수많은 외래 단어들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원어민들에게는 이 단어들의 유래가 궁금할 수 있겠지만 이런 단어들에 생소한 외국인들에게는 단순히 사전을 읽어 내려가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미덕은 영어에 대한 자화자찬을 억제하고 있는 점이다.
다른 비슷한 유형의 책들에는 영어가 세계어가 된 것은 영어 자체가 우월하고 우수한 점이 많아서라는 이상한 주장을 하는 책들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영어가 다양한 외부의 영향을 무리없이 수용하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는 장점을 부각시키면서도 다른 언어보다 언어 자체가 우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 않다.
영어의 역사를 알고 싶은 학생들,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들, 서양 역사에 관심있는 분들, 언어에 대한 교양을 쌓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