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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맹학교님의 서재
  • 오래된 우표, 사라진 나라들
  • 비에른 베르예
  • 22,500원 (10%1,250)
  • 2019-09-11
  • : 287

오래된 우표, 사라진 나라들 서평

 

이 책을 읽으면서 우선 지금까지 내가 수집했던 나라들 중에 어떤 나라들이 사라지기 전에 우표를 남겼는지 집에 있는 우표앨범을 확인해 보았다.

우표 앨범에는 저자가 언급한 만주국, 류큐(오키나와) 외에도 영국령 홍콩과 포르투갈령 마카오, 인도네시아가 점령하기 전의 동티모르, 고아, 통일 전의 서독의 베를린에서 자체적으로 발행한 우표, 대한제국 우표들이 보인다.

처음에는 저자 비에른 베르예씨가 나처럼 우표 수집가로서 지금은 사라진 나라의 우표를 전문적으로 수집하는 우취가인가 하는 호기심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 보니 저자는 우표 수집가라기보다는 우표는 단지 매개체이고 인문학자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표 수집의 여러 요긴한 자료를 얻기 위해 이 책에 접근한다면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으나 인문적인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다양하고 흥미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어떻게 보면 기행기이고, 문학책이며, 역사책이다.

책의 서문에도 나왔듯이 우표는 그 나라가 존재했다는 구체적 물증이다.

그래서 19세기말 대한제국에서도 나라가 혼란스러운 와중에서도 여러 종류의 보통우표와 기념우표의 디자인을 유럽의 여러 나라에 의뢰하고 우표 인쇄를 일본에서 하면서까지 독립국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재밌는 것은 우표는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표를 가장 아름답고 가장 작은 회화라고들 하는데 모든 나라가 우표에 한 나라의 정수를 담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인다.

본인이 수집한 북한 우표(조선 우표)들만 보면 이 화려한 디자인과 색감의 우표들 뒤에 비참한 현실이 있다는 것을 믿기 힘들 정도이다.

우표는 어느 시대나 일종의 정치적 선전의 도구이며 진실의 전달이란 부차적인 과제인 경우가 많았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현대 세계의 여러 지리적 특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소소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지금은 말레이시아의 영토가 된 라부안이라는 작은 섬이 있다.

이 섬은 브루나이 근처에 떠 있는 섬인데 분명 말레이시아 섬인데도 여권 검사를 하고 면세지역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지난 여름에 코타키나발루로 여행을 갔을 때 근처에 이 라부안이라는 섬이 있어서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에서는 이 라부안 섬이 원래 독립적으로 분리된 지역으로 우표까지 발행했던 지역인데 나중에 말레이시아에 통합된 후에도 그 독특한 지위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 지역이 독립국이든, 독립국은 아니지만 독특한 지위를 가진 지역이든 이 현실을 가장 분명하게 나타내어 줄 수 있는 것은 그 지역이 자체적으로 우표를 발행할 권리가 있는지 없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영국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부속 섬 중에는 영국왕실에 속해 있다는 독특한 지위를 가진 섬들이 있는데 이 섬들에서는 본토의 우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자체적인 우표를 매달 발행하고 있다.

저지, 건지, 맨섬 같은 섬들이 그러하다.

만약 가까운 미래에 스코틀랜드가 독립을 쟁취한다면 신정부가 먼저 할 일 중에 하나는 Scotland라고 표기된 우표를 발행하고 독자적 우편 사업을 시작하는 것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1910년에 소위 한일합방을 체결하고 일본이 한국 내 우체국에 남아 있는 구 한국우표를 수거하고 일본 우표로 대체하려고 노력했던 것도 이해가 된다.

세계 각지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각각의 지역에서 독자적인 우표를 발행했던 영국과 달리 일본은 조선을 영구적으로 일본의 일부로 삼고자 하였으니 우편제도의 통합은 필수적인 것이었다.

한반도에서 독자적인 우표가 다시 나오는 것은 1945년 해방 이후의 일이다.

만일 영국이 한국을 식민지화했다면 홍콩에서 그들이 했던 것처럼 분명히 British Korea란 이름으로 우표를 계속 발행했을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현재의 베트남의 일부분인 Sedang에서도 우표를 발행한 것이 나오는데 역사적으로 단명한 이 왕국은 지금 프랑스 가톨릭 선교기지의 잔해와 Sedand 우표만이 실제로 그러한 국명의 나라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흔적으로 남아 있다.

Sedang외에도 이런 지역이 무수히 많다는 것을 이 책은 말해주고 있다.

내 우표 앨범에도 지금은 사라지거나 국명이 변경된 로디지아, 독일의 자르의 우표를 발견할 수 있다.

한편 우리 역사와도 관련이 있어서 만주국 파트는 상당히 흥미로운데 일본제국은 만주국뿐 아니라 자신이 침략한 지역에서 우표들을 발행했다. 필리핀과 인도네시아가 그 예이다.

우표는 국가뿐 아니라 특정 도시들에서도 발행되는 경우가 있다.

이 책에서는 이탈리아와 구 유고슬라비아 사이에 있었던 트리스테 우표를 예로 들고 있다.

지금 현재도 홍콩과 마카오에서는 중국 본토와 달리 독자적인 우표들을 계속 발행하고 있으며 이 권리는 일국양제가 완료되는 시점까지 보유할 수 있다고 한다.

현재는 폴란드 영토가 된 단치히에서도 독자적인 우표를 발행했으며 지브롤터 같은 곳에서도 독자 우표를 발행하여 특수한 지역임을 나타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지금의 오키나와현인 류큐 우표들이다.

본인도 류큐 우표는 상당수 보유하고 있는데 지금도 비싸지 않은 가격에 쉽게 구할 수 있다.

2차 대전 후 일본 본토와 분리되어 미군정 통치아래에 놓인 오키나와는 류큐라는 본래의 이름으로 1972년까지 수 백종의 우표를 발행했다.

류큐 우표에 나오는 표기는 모두 일본어이지만 통화단위는 센트로 되어 있으며 여러 류큐 문화와 문화재를 담은 아름다운 우표들을 발행했었다. 일본에 다시 통합된 후로는 일본 우표가 통용되고 있으며 더 이상 류큐 우표는 발행하지 않았다. 아마 오키나와 사람들중에는 독자적인 오키나와만의 우표가 그리운 사람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순전히 상업적인 목적으로 우표를 발행하는 나라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이 세상에는 우표가 국가의 주요 수입원인 나라들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즉 최대한 아름답고 다양한 우표를 찍어 내어 외국의 수집가들에게 판매하여 외화를 획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나라들이 있는 것이다.

이런 나라의 대표적인 주자들은 유럽의 소국들이다.

서울시보다도 작은 산마리노, 리히텐슈타인, 안도라 같은 국가들인데 특히나 리히텐슈타인의 우표는 그 품질의 우수함과 디자인의 아름다움으로 정평이 나 있다.

로마의 바티칸 시국의 경우에도 우표 판매는 상당한 수입원이라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영토가 없는 국가(?)로 유명한 몰타 기사단에서도 우표를 발행하고 있다.

이것도 순전히 경제적인 목적이 강한데 이 나라(?)의 우표는 가톨릭 신자 우취가들 사이에 상당히 인기가 있다.

마지막으로 이 ‘오래된 우표, 사라진 나라들’에서 우리나라를 다루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

한반도에 있었던 대한제국의 우표들, 일본 패망 후에 급하게 우체국에 쌓여 있는 일본 우표 위에 조선이라는 문자를 인쇄하여 임시적으로 사용했던 우표들, 한국 전쟁중에 양측에서 발행했던 우표들, 외화수입의 일환으로 우표수출에 열을 올리는 북한등... 흥미로운 주제는 그 어느 지역보다 많은데 말이다.

우표에 흥미가 있든 없든 이 책은 역사, 지리, 문학, 시사를 아우르는 독특한 재미를 가지고 있는 책이다. 일독의 가치가 있는 책이니 인문학적 교양을 쌓고 싶은 많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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