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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0177님의 서재
  • 남한산성
  • 김훈
  • 14,400원 (10%800)
  • 2017-07-07
  • : 8,510


 

[백성의 초가지붕을 벗기고 군병들의 깔개를 빼앗아 주린 말을 먹이고 배불리 먹은 말들이 다시 굶주려 죽고, 굶어 죽은 말을 군병들을 먹이고 깔개를 빼앗긴 군병들은 얼어죽는 순환의 고리가 김류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악순환의 고리다. 싸움을 위한 준비라지만 싸움을 위한 준비가 될 수 없다. 다만 백성과 군병은 살을 에는 추위에 떨 뿐이다. 그럼에도 영의정 김류는 가마니를 거둬들여 말죽을 쑤게 한다. 방한용으로 이 가마니를 나눠줬던 수어사 이시백을 불러들여 중곤 20대를 친다.

 

[싸움의 형식을 유지하면서 그 형식 속에서 버티는 힘을 소진시키고 소진의 과정 속에서 항전의 흔적을 지워가며 그날을 맞아야 할 것인데, 그것이 가능할 것인지를 김류는 씨름했다.]

 

김훈에게 삼전도의 일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이미 일어난 일의 마지막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인조와 조정신하들에게도 그것은 예견된 결말이었다. 그럼에도 항복하지 못해 기어이 산속으로 기어들어간 것은 차마 그럴 수 없는 인간성 때문이다. 유교적 관념이라 해도 좋고, 재조지은再造之恩이라 해도 좋다. 유리한 편에 서겠다고만 할 수는 없었던 세계관이 있다. 동시에 그렇게 산성에서 굶주리고 추위에 떨다 죽는 길만을 선택할 수도 없다. 국가는 그렇게 포기할 만큼 값싼 실체는 아니다. 그래서다. 그래서 싸움의 형식 속에서 그 날을 맞아야 하는 것이다. 김훈에게 중요한 것은 결론을 향해 가는 과정, 그 과정에서 인간이 보이는 행태다.

 

비루하다. 싸울 생각이 없다. 결론이 항복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싸워야 한다. 싸우지 않고 항복으로 나아갈 수는 없다. 세계관이 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인간의 삶을 인간답게 하는 그 세계관이 죽음으로 나 있다. 그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삶으로 또 항복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 필요하다. 가마니를 풀어 말죽을 먹이면서 싸움의 형식을 유지해야 한다. 중요한 건 기십만 명이라는 적병의 수나, 만 명이라는 우리 군졸의 수가 아니다. 응전의 태세로 항복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적에게나 우리에게나, 겉으로나 뼈속 깊은 곳에서나 항복이 필연적인 사건이 될 수 밖에 없는 시점에 이를 때 까지.

 

악순환이 삶을 향해 나아가는 방편이다.

 

명분을 주장하는 한 무리의 인간이 있고, 명분을 주장하지 않아야 한다는 한 무리의 인간도 있다. 그 사이를 위태롭게 걷는 김류와 같은 인간도 있다. 김훈은 ‘그 갇힌 성 안에서는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이 한 덩어리로 엉켜있었고, 치욕과 자존은 다르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말을 한 세계를 그려보임으로써 완성했다.

 

그의 세계 속에서 사람들은 정신으로 살아 숨쉰다. 영화 속 김류는 줏대 없어 보인다. 김훈의 김류는 다른 인물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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