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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무엇이 부국과 빈국의 차이를 낳는가'하는 책 서두의 질문을 책을 읽는 내내 유념하면 필자의 생각을 따라가는 데 도움이 된다.

 

번영에는 공장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소련이 급속한 공업화에도 불구하고 궁극적 부의 달성을 이룰수 없었던 점이나, 오스트레일리아가 공업화 없이 일인당 GDP 기준으로 선진국들과 대등한 수준을 달성할 수 있었던 점은 그것을 증명한다. 또한 20세기 말 최선진국들의 놀라운 탈공업적 부는 번영의 근본적인 원천으로 공업화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시각이 틀렷다는 것을 입증해준다.

 

번영을 위해서는 제도의 확립이 필요하다. 우선 기술의 창조자들에게 적절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한다. 그 인센티브는 창조물에 대한 소유권의 확립, 재산권의 보호이다. 그리고 혁신가들은 지적은 도구를 가져야한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 그리고 사회 종교적인 관용이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러한 방식으로 유발된 발명이 더 많은 공중에게 제공되기 위해서는  다량의 금융자본도 필요하게 된다. 충분한 돈이 축적되어있어야한다. 마지막으로 신속한 통신과 수송의 수단이 확보되어 있어야 한다. 이상의 네 조건이 번영을 위해 필요한 필수요소들이다.

 

이제부터는 논의의 확장이다. 번영의 결과와 부의 흐름

 

번영으로부터는 민주주의가 발전한다. 제도의 확립으로 인한 생산성의 향상은 부를 의미한다. 이러한 부는 시민 개개인이 스스로의 권한을 인식하게 한다. 자유로운 자기표현이 일어난다. 이것이 곧 민주주의이다. 경험적인 계량연구에 의하면 번영은 민주주의를 가져오지만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페인의 독재자  프랑코의 경제장관 라우레아노 로페즈 로도는 '연평균 소득이 2,000달러를 상회할 때 민주주의가 도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코 독재가 무너졌을 때 스페인 평균소득은 2,446달러였다. 때로는 미군 점령기 일본을 예로들며 '현대 사회를 창출하는 데 독재가 훨씬 더 유용하지 않을까'라는 냉소적인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번영, 부를 통해 인간은 더 행복해졌는가? 이에 대해서는 몇가지 방법으로 말할 수 있다. 단일한 나라 안에서 부는 중요하지만, 행복의 유일한 결정요인은 아니다. 여러 나라를 가로지를 경우 부는 오직 느슨하게만 나라의 행복과 상관관계를 가진다. 지구적 수준에서는 문화적, 역사적 요인이 훨씬 더 중요해진다. 경제성장에 의한 나라 부의 총량적 증대는 그 나라를 더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행복의 지각은 부에 관한 이웃과의 상대적 비교를 통해서만 인지된다는 부의 상대적 본성때문이다. 물론 부유해질 때 그 나라가 더 불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빡빡한 시간관리, 스트레스, 직업적 안정성의 하락 등의 현대사회의 문제들은 부의 증대에 의해 상쇄되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방식으로 요약하자면 부의 증대에 의해 수명증가, 문맹률 감소, 유아사망률 감소 등의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아 절대적인 수치로는 빈곤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고있다. 그러나 상대적인 의미-행복의 증대의 측면에서는 전투는 그리 우세하지 않다. 최빈국과 부국과의 격차는 벌어지고, 각국 안에서도 빈부격차가 증대되고 있다.

 

부의 불평등은 국가의 유지에 해롭다. 심지어 가장 안정되고 자유주의적이며 자유시장을 옹호한다 할 지라도 불평등 심화의 재앙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산업혁명 후기의 영국의 극빈자 증가나 경제발전기 미국의 노동자 파업등은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상황이 심각할 경우 자유민주주의의 군대가 평화적 군중을 날선 칼로 공격하는 일이 초래된다. 아르헨티나에서 그랬Š蔓?번영하는 경제를 포퓰리즘의 탈선으로 이끌기도 한다. 이를 해결할 필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경제적 부가 만들어낸 민주주의가 그 훌륭한 해결책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서방이 저개발국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이러한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제도적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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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부의 탄생에 관해 쉽고 방대한 저술을 완성했다. 사회, 심리, 역사, 경제, 정치, 문화의 영역을 넘나드는 이 저술은 충분히 논리적으로 서술되었다. 역사적 맥락을 따라 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상식을 넓히는 차원에서나 시야를 확장하려는 목적에서라면 전반적으로 읽어볼만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에게 부의 증진을 향한 서구 중심의 역사 흐름에 대한 확신은 확고하다. 경제결정론에 가까운 자기 확신은 공산주의의 실패나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가혹한 시선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칠레의 아옌데 정권을 경제를 불구로 만들고 그 결과 피노첸트 독재를 출현시킨 측면에서만 묘사함으로써 다른 구체적 긍정성들을 떠오르지 않게 만들어 버렸다. 물론 그가 전지구적인 신자유주의 흐름이 지금 이대로 지속가능하리라 전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제 위주의 시각을 가짐으로써 윤리, 정치적인 문제들은 모두 그 상부구조에 해당하는 것으로 만든게 아닌지 하는 의문을 가진다. 하기 좋은 비판인지도 모르겠다.

 

경제 결정론적 시각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행복으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결론도 이끌어낸다.그의 세계관에서 이런 결론을 정직하게 응시하기란 쉽지 않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행복의 상대적 속성과 전 세계차원의 비교를 행한 것은 평가받을 만하다. 물론 이 때는 경제적 성과 자체의 의미, 그리고 발전을 추구하는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도대체 더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고 빈부차는 확대시키는게 경제발전이라면 왜 이런 일을 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더 노력해야 하는가? (절대적빈곤의 퇴치는 약할지언정 그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 이후는?...)

 

 

 

처음에는 약간의 거부감을 가졌던게 사실이다. 자본주의를 그 자체로 옹호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자기 확신을 지나치게 확장한다는 느낌도 떨칠 수 없었다. (그의 생각을 따라가면 박정희의 독재도 충분히 정당화된다. 결과적으로 부를 가져왔으므로.) 그러나 읽어갈 수록 정직한 정리의 산물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 내 독서는 제기할 만한 가치있는 의문을 포함하긴 했지만 일부 오독이었다. 행복이나 불평등의 해소에 관한 장들에서 기존 연구성과를 정리한 실력은 훌륭하다. 여기서부터 새롭게 다른 생각의 나래를 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TIP : 경제학적 지식이 있으면 읽기 편하다. 경제발전론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앞 3-4백페이지는 빠르게 읽어내릴 수 있으므로 양이 그리 많다고 볼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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