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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heee님의 서재
  • 사피엔스 (무선본)
  • 유발 하라리
  • 19,800원 (10%1,100)
  • 2015-11-23
  • : 78,870

다가가기 힘든 책이라는 선입견은 단연컨대 <사피엔스>의 두께에서 나올 것이다. ‘인류 문명화에 대한 거대한 서사’, ‘호모 사피엔스의 통찰’이라는 주제에 이정도 분량이면 굉장히 무거울 것 같은 느낌이고,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책일 것 같고. 읽기 무서운 책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올해 읽어야할 책 리스트에만 넣어놓고 늘 미뤄만 오던, 사실 나의 이야기다.

그러나 막상 펼치면, 영화 같은 반전의 전개에 무릎을 탁탁 치며 읽게 된다. 쏟아지는 정보에 허우적거리는 것이 아니라 저자가 제시하는 새로운 논점에 같이 빠져든다는 것이다. 감탄의 연속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겁먹고 미뤄뒀던 사람들에게 하루빨리 이 책을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다.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저자는 우리 종의 역사를 인지혁명(우리가 똑똑해진 시기), 농업혁명(자연을 길들여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하게 만든 시기), 과학혁명(우리가 위험할 정도의 힘을 갖게 된 시기)의 세 가지 혁명을 중심으로 개관한다. 그리고 충격적인 화두를 던지며 각 파트를 연다.

“사람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 중 하나는 이들 종을 단일 계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 이런 직선 모델은 오해를 일으킨다. 어느 시기를 보든 당시 지구에 살고 있던 인류는 한 종밖에 없었으며, 모든 오래된 종들은 우리의 오래된 선조들이라는 오해 말이다.”

 

시작부터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을 깬다.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는 인간의 유일종이 아니었으며, 우리를 ‘형제 살인범’이라고 칭하면서 사피엔스에게만 있는 고유의 언어를 통해 ‘세상을 정복했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그 언어의 특별함이 무엇일까 파헤치는 것이 특히 공감적이었는데, 언어의 진화는 소문을 이야기하고 수다를 떨기 위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이 그것이었다. ‘무리 내의 누가 누구를 미워하는지, 누가 누구와 잠자리를 같이하는지, 누가 정직하고 누가 속이는지를 아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뒷담화 능력을 통해 발전시킨 언어라니. 저자가 소개하는 예들에 무릎을 친다. 더불어 대상에 대한 실제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보다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허구’를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 언어가 가진 특이성이라고 서술한다. 허구 덕분에 우리는 건국신화나 성경의 창세기 등의 집단적 상상력으로 협력이 가능했고, 이 모든 언어의 특이한 발전이 사피엔스의 성공 요소였다는 것이다. 언어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하기 위해 발전되어왔다는 그 선입견을 깨는 대담하고 획기적인 아이디어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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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혁명은 안락한 새 시대를 열지 못했다. 그러기는커녕 농부들은 대체로 수렵채집인들보다 더욱 힘들고 불만스럽게 살았다”

 

이어 저자는 농업혁명을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고 표현한다. 농경사회가 과연 인간 진화의 결과인가, 수렵채집사회에서 농경사회로의 발전이 과연 행복인가. 우리는 그렇게 배웠다. 진화의 결과이다. 행복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를 환상이라고 말한다. 더욱 많은 사람들을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있게 만드는 능력을 심어준 덫이었다는 것이다.

 

“근대 후기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90퍼센트는 아침마다 일어나 구슬 같은 땀을 흘리며 땅을 가는 농부였다. 그들의 잉여 생산이 소수의 엘리트를 먹여 살렸다. 왕, 정부 관료, 병사, 사제, 예술가, 사색가…… 역사책에 기록된 것은 이들 엘리트의 이야기다.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갈라진 위계질서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백인-흑인 및 아프리카 원주민, 귀족-노예, 그리고 남자-여자까지, 부의 위계질서에 따른 소수의 행복이 과연 성공적인 농업혁명으로 그려질 수 있는 것인가의 의문을 갖는다. 작은 역사를 조명하며 더 넓은 시야로 바라봤을 때의 다양한 상황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소수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으로 자신의 지평을 확장할 때에 비로소 역사와 제대로 마주하는 순간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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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혁명을 출범시킨 위대한 발견은 인류는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모른다는 발견”

 

과학혁명은 앎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무지의 발견에서 이루어졌다는 전환의 발상을 소개하며, 과학혁명은 무지의 혁명이라고 말한다. 상업, 제국, 보편 종교를 거쳐 오며 오늘 날이 만들어졌고 과학연구를 통해 모르는 것을 알아가면서 새로운 힘을 얻는 것이 곧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인류는 곧 역사를 끝장낼 능력까지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저자의 말마따나 우리는 이 시대를 살면서 이 시대를 가장 모르는 사람들이다. 과학에 기만하지 않으며 인류의 방향성을 통찰해야한다. 계속해서 성장하는 사피엔스는 종말을 향해서가 아니라, 행복의 가치를 찾기 위해서 움직여야함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허를 찌르는, 깜짝 놀랄 만한 생각과 이론을 말하면서 저자는 근 600페이지에 달하는 인류의 대서사를 지루하지 않게 이끌어간다. 일련의 정보를 나열해 지적호기심을 충족시키기보다는 그 정보가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의 ‘이해’를 통해 지적호기심을 자극한다. 이 분야 저 분야의 학문을 종횡무진하며 우리가 그간 알고 있던 상식들을 보란 듯이 깨버리고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보는 역사를 지향한다. 그 과정을 재미있게 풀어나간다는 것이다. 더불어 인류의 역사라는 전체적인 틀 안에서, 그것에 얽혀있던 인간의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독자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책에서 만난 인류사 안의 인간 문제는 현재까지 활발하게 논의되는 것들이다. 지구의 역사를 이야기함에 있어 인간 중심으로만 서술되는 것이 타당한가에서부터 젠더의식, 인종차별, 제국주의와 자유 · 자본주의까지. 자신의 생각을 더해가며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읽을 수 있게 한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방향으로 인류의 역사를 바라보게 하는, 그런 새로운 역사관을 만나게 되어 즐거웠다. 두 번, 세 번 읽어가며 내 생각을 계속해서 더해가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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