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결함과 능력은 모두 현재의 우리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400만 년 전 직립보행을 하는 원시인류가 출현한 후 긴 시간이 흘러 약 50만년 전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했다. 언어와 도구의 사용, 농사를 시작하면서 저장과 재산의 개념이 생기고 사람들이 모이고 한 장소에 정착하면서 도시와 문명이 탄생했다. 저자 루이스 다트넬은 인간이 단시간에 이렇게 거대한 문명을 만들어내고 빠르게 발전한 큰 이유 중 하나인 진화에 존재하는 여러가지 결함이 만들어낸 격동적인 역사를 생물학과 세계사, 심리학 등 다양한 각도에서 풀어내고 있다.
인간의 신체구조와 정신에는 큰 설계결함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결함들은 진화를 하면서 어떠한 능력을 가지기 위한 대가인 경우가 많다.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구분하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을 위해 변화된 목의 구조는 다른 동물들에 비해 질식사의 위험성을 크게 만들었다. 의사소통이냐 질식사에 대한 안전함이냐. 이렇게 놓고 보면 나 역시 의사소통이 가능한 진화를 택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생물학과 세계사. 얼핏보면 어울리지 않는 조합으로 보인다. 하지만 가족의 탄생부터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까지 인간들이 쌓아온 역사라는 시간에는 생물학과 유전학, 심리학의 측면들이 거대한 영향력을 미쳐 지금의 현재를 만들었다. 가족이란 정서적인 유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보면 직립보행을 하면서 오히려 작은 골반으로 출산을 해야 했기 때문에 인간은 탄생 이후 다른 동물들보다 훨씬 오랜 기간 의존 상태로 성장을 해야 하고, 그 결과 가족이라는 결합의 형태가 만들어졌다고 볼 수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관계가 원활하게 유지되고 정서적 애착을 만들어내기 위한 중요한 호르몬이 바로 옥시토신이다. 물론 애정과 사람간의 유대, 타인과의 협력, 이타성과 호혜성 같은 감정이 생식, 생명과 종의 유지를 위해 몸 안에서 생성되는 옥시토신과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에 의한 화학적 작용이라고만 보는 것은 너무 삭막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인간이 생존을 위해 생물학적으로 필요한 호르몬을 만들어낸다는 것 또한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가족, 감염병, 유행병, 인구 등 생물학과 세계사를 연결하는 각 챕터들은 모두 흥미로웠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나 눈길이 갔던 지점은 풍토병, 점염병이 만들어낸 역사의 큰 흐름과 인지 편향이었다. 감기와 대상포진, 독감, 홍역 같은 전염병은 동물 질환에서 사람에게 전파된 질병들이며, 농업혁명으로 동물과 같이 살게 되고 집단을 이루고 정주화하면서부터 광범위하게 급속도로 전파된 유행병들이라고 한다. 문명의 발전과 상업의 번성은 우리에게 전염병의 위험 역시 가져왔다는 것이다. 미국의 독립이나 독립왕국을 유지하던 스코틀랜드 의회를 흡수한 영국,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몰락같은 역사의 큰 사건들 뒤에는 풍토병, 유전병이 큰 역할을 차지하고 있었다.
원활한 집단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꼭 필요했던 수 많은 인지 편향들은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확립된 믿음을 바꾸는 것을 거부하고, 그것을 부정하는 증거는 무시하는 확증 편향은 누구나 크고 작게 가지고 있는 인지 편향 중 하나일 것이다. 온라인 미디어 플랫폼이 나날이 발전하고 알고리즘을 통해 선호하는 콘텐츠를 제공받는 오늘날, 확증 편향이 가속화 될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에 오싹해지기까지 한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실 회피 편향 때문에 이득이 낫더라도 확률이 높을 쪽을 선택한다고 한다. 큰 이득보다는 손실을 최소화해서 위험을 줄인다는 것이다. 물론 인지 편향들 역시 제한된 뇌의 연산 능력으로 빠른 결정을 내려 생존에 유리한 판단을 내리기 위한 진화의 결과지만, 그 역시 결함으로 인해 항상 이익되는 방향으로 결정하지 못한다는 점이 재미있다. 그야말로 인간적이지 않는가.
나라는 존재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나의 생각은 어떤 메커니즘을 바탕으로 작동하는가. 항상 궁금해하는 질문들에 대해 과학은 철학과는 또 다른 방향의 답을 던지고 그 사이에서 나라는 더 다양한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는 점이 흥미로워서일까 최근에는 뇌과학이나 생물학에 점점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인간의 진화가 완벽하다가 아니라 오류 투성이기 때문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라니. 신선하고 흥미로운 저자의 시각에 또 다른 방식으로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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