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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약국의 딸들 (박경리 큐레이션 리커버)
  • 박경리
  • 19,800원 (10%1,100)
  • 2026-05-19
  • : 2,890

[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


작년 결혼기념일 여행으로 경남 하동에 간 김에 < 박경리 문학관 > 을 방문했었다. 그때 그곳을 다녀오면서 '토지'를 읽어볼까 생각만 하고 엄두를 내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서평 모집에서 반갑게도 ⟪ 김약국의 딸 ⟫ 을 접하게 되면서 이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현재 박경리를 기리는 전시관은 총 3곳이 있다.

토지의 배경이었던 경남 하동의 <박경리 문학관>, 강원도 원주에 위치한 <박경리 문학공원 >,

그리고 이 소설의 배경이 된 박경리 작가의 고향 통영에 <박경리 기념관>이 있다.


박경리의 작품들이 작가 자신의 삶이 많이 투영되어 있지만, 오늘 리뷰의 작품은 통영 지역에서 떠도는 설화를 기반으로 창작되었다고 한다.


⟪ 김약국의 딸 ⟫ 은 1962년 출간되자마자 많은 사랑을 받았고, 다음 해 1963년에 영화로 제작되었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864년 고종이 왕위에 오르고 대원군이 집권하는 시기부터 일제 강점기 시대를 아우른다.



통영은 다도해 부근에 있는 조촐한 어항이다.

부산과 여수 사이를 내왕하는 항로의 중간지점으로서 그 고장의 젊은이들은 ' 조선의 나폴리'라 한다. p.9


소설의 시작은 통영의 평화로운 전경에서 시작한다. 무척 평화로울 것 같은 도입부와는 상반되게도 소설의 비극은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온다.


통영의 간창골 마을에는 세 형제가 살고 있다. 그중 김약국의 아버지 봉룡은 성질이 급하고 포악했으며 자신의 두 번째 처 숙정과 어린 아들과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숙정을 잊지 못해 고향에서 욱이 도련님이 찾아오고 이를 본 남편 봉룡은 아내를 다그치며 매질을 한다. 봉룡은 화를 참지 못하고 욱을 살해하고 그의 처 숙정도 자결하고 만다. 어린 아들만 남은 이 집을 사람들은 '도깨비 집'이라 말하며 꺼려한다.


김약국은 어진 한실댁과 결혼하고 슬하에 딸 다섯을 둔다. 딸들은 저마다 성품이 다르다. 아들을 두지 못한 한실댁이지만, 딸 다섯을 성심껏 키운다.


첫째 딸 용숙은 욕심이 많고 성미가 고약한 면이 있고 잇속을 잘 챙겨 돈을 버는 재주가 있다.

둘째 딸 용빈은 머리가 좋고 지혜로워, 김약국이 의논할 일이 있을때마다 종종 둘째 딸과 상의한다.

셋째 딸 용란은 다섯 자매 중에서 가장 용모가 뛰어나지만, 말괄량이 같은 성격을 가졌다.

넷째 딸 용옥은 인물은 제일 떨어지지만, 성심이 곱고 인내심도 강하며 살림도 알뜰히 잘한다.

막내딸 용혜는 어리광쟁이로 상냥하고 귀여운 면이 있다.


" 무자식 상팔자라더니, 자식이란 다 길러놔도 부모가 걱정하기는 마찬가질세. 눈어덕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집사람도 머리싸메고 드러눕고...." 극중 중구영감의 말처럼, 자식 많은 이 집에 어머니 한실댁은 매일매일이 전쟁같다. 한 자식을 챙기면 다른 자식이 일을 저지르고, 남편은 바깥일은 열심히 하지만 집안일에도 아내에게도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


다섯 딸을 예쁘게 키워 좋은 곳에 시집보내고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라 꿈꿔왔던 시간이 허망하게, 첫째 딸이 과부가 되면서 그 첫 희망이 무너졌다.


"맏딸이 잘 살아야 밑에 딸들이 잘 산다 카는데."

아들 형제밖에 없는 중구 영감의 부인 윤씨가 걱정을 했다. 한실댁에게는 참으로 무서운 말이었다.

p.97


이처럼 중간중간 등장하는 불행을 암시하는 구절들에 읽는 내내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각기 다른 인물의 특성과 그 성격처럼, 또는 그 고운 성심이 아깝고 애달픈 만큼 다섯딸에게 불운의 그림자가 조금씩 따라붙는다.


"딸자식이라도 많아서 사위들이나 보믄 외롭잖을 줄 알았는데, 정말 뜻대로 안 되는구나." p.209


사람이 사는 곳에 외로움이 있다. p.415


소설에는 선한 면과 악한 면을 동시에 가진 인물들도 등장한다. 김약국이 대표적인 인물인데, 크게 감정이 동요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어진 사람으로 칭송받지만, 아내에게는 끝없는 무관심과 차가운 태도를 보인다. 등장인물의 많은 만큼 소설 속에서 다양한 인간상을 만나고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다.


흔히 주색에 빠지고 방탕함으로써 인생을 죄되게 보낸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런 탕아의 좌절 이상으로 죄악적인, 타인에 대한 무관심, 자기를 위한 성문을 굳게 지켜온 이기적인 김약국이 지금 자기의 육체가 허물어져 가는 마당에서 어떤 마음의 반려자를 구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는 애써 지켜온 고독, 그 고독을 즐기기조차 했던 지난날에 비하여 너무나 비참하게 그 고독을 무서워하고 있는 것이다. p.390


책을 읽으면서, 한 번의 선택으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도 모질게 변해버릴 수 있음이 운명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가족에게만 끊임없이 불어닥치는 불운의 바람 앞에서 '운명일까'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 선택으로 운명이 바뀐 것인지, 운명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인지. 선택에는 시대적인 환경이 크게 작용한다. 구한말, 일제강점기에 여성으로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정조'개념과 희생.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분출하지 못하고 억제해야 하고 강요받는 상황에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몇 안 될 것이다. 보이지 않는 뿌리 깊은 사회적 관습의 무서움이 소설에 잘 드러나있다.



결말이 너무 궁금해서 밤새 다 읽었는데, 그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넷째 딸 용옥에게 생긴 일들이었다. 다른 인물들에게는 찾아보면 나름의 불행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지만, 넷째 딸에게는 그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는데 비극이 비켜가지 않고 오히려 세차게 불어왔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살지 못한 어머니 한실댁의 모습이 눈물겹게 다가왔다.


하지만 소설은 힘든 시간을 딛고 일어서는 삶의 의지와 희망을 놓지 않는다. 태풍이 몰아치던 바다가 잠잠해지고 햇살이 비치며 고요해져 오듯이, 거대한 불운은 자취를 감추고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다르다는 것은 운명이 아니야. 나는 내 직업상 수없는 인간의 죽음을 보았어. 인간의 운명은 그 죽음이다. 늦거나 빠르거나 인간은 그 운명공동체 속에 있다. 죽음을 바라보는 꼭 같은 눈동자가 있다. 우리는 그것을 생각하지 말자." p.430


어떻습니까, 용빈 씨 혼자만이 비극을 짊어지고 있는 건 아니죠." p.475


이 책을 20년, 아니 10년 전에 만 읽었어도 조금은 다르게 다가왔을 것 같다. 2026년 현재 읽고 있는 나에게 그 옛날 사람들의 삶은 너무도 고단하게 다가온다. 개인이 느끼는 세밀한 감정이나 깊은 내면을 파고들 여지가 없었던 그 시절은 당장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만으로 벅차 보인다. 책에서도 요즘의 소설들과 차이점이 확연히 보인다. 개인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글을 쓸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시대였다. 이런 점이 한국 현대소설의 또 다른 특징이자 묘미라고 생각한다. 등장인물들의 다양성과 여러 굵직하고 복잡하게 교차하는 사건들이 촘촘하게 얽혀서 독자들로 하여금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481페이지의 책을 덮고 나니 자연스럽게 작가의 또다른 소설 ⟪ 토지 ⟫ 의 내용이 너무도 궁금해진다.


책을 읽고나서 옛 드라마도 유튜브에서 보았는데, 대체로 소설을 그대로 반영한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 다시 드라마로 만들어졌으면 한다. 김약국은 극중 인물처럼 좀 더 잘생긴 중년배우로, 다섯딸도 각 캐릭터를 잘 살려줄 여배우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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