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컬처블룸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성실히 읽고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
이 책은 고전문학에서 너무도 유명한 헤르만헤세의 <싯다르타>이다.
이번에 스타북스 출판사에서 나온 이 책의 번역은 신동운님이 하셨는데, 여러 다양한 영어 관련 저서를 번역하셨다. 대표적으로 <동물농장>, <햄릿>, <군주론>, <노인과 바다>등의 고전문학과 <하멜표류기>, <손자병법 삼십육계>, <링컨의 기도> 등 다수의 책을 짓고 편역하셨다.
고전문학은 번역이 중요함을 항상 느낀다. 책의 번역이 편하게 읽혀서 문장들이 술술 넘어갔다.
매끄러운 번역에 마음을 놓고 집중해서 하루만에 다 읽었다.
신동운 번역가님의 번역은 내면을 두드리는 울림이 있다. 읽는 내내 마음에 고요한 진동이 울렸다.

_ 줄거리
초반부에는 가볍게 시작했다가, 마지막으로 갈수록 마음 한쪽이 묵직하게 아파온다. 지혜의 돌 하나가 내 마음에 들어찬 느낌이다. 그 지혜의 돌은 인간의 탄생부터 죽음까지를 담고 있으며, 묵직하지만 차분함을 준다.
주인공 싯다르타는 우리가 아는 부처 석가모니가 아닌, 작가가 만든 인물이다. 주인공 싯다르타도 바라문의 아들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청년기까지 부족함 없이 부모의 보살핌 속에 있었다.
어느 날 고행자의 길, 사문이 되고자 한다. 아들의 완고한 뜻을 꺾지 못하고 싯다르타의 아버지는 결국 허락하게 된다.
그의 벗 고빈다와 사문의 길을 성실히 걸어가는 싯다르타는 기다림을 배우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며 진리를 찾기 위해 매진한다.

"지혜로운 말을 할 줄 아는군요. 다만 지나친 지혜는 경계하는 게 좋소."
p.56 (싯다르타와 만나 대화를 하던 부처가 싯다르타에게 하는 말)
어느 날 고대하던 부처(고타마)를 만나게 되고, 벗 고빈다는 부처의 제자가 되기를 자처하고, 싯다르타는 반대의 길을 간다.
싯다르타는 자신은 남들과 다르고 더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마치 우리들이 젊었을때는 두려움을 모르듯이. 뭐든 다 해낼 것 같이 말이다.
아직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무언가를 갈망하던 싯다르타는 사랑과 부, 쾌락과 그 밖의 세속적인 것들을 알아가게 된다.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지만 스포가 되어버리기에 내용은 여기까지만 적어야겠다.
싯다르타는 결국 늙고 주름지고, 마음의 아픔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상처는 더 이상 아물지 않고 덧나는 나이가 된다.
자식이라는, 자기자신보다 더 소중한 존재를 만나서, 큰 슬픔과 함께 그보다 더 큰 행복감도 느낀다. 그리고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시기심도 느끼고 자신이 어린아이 같다던 사람들처럼, 이제는 자신이 어린아이가 된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어린아이들이 더 이상 어리게만 보이지 않고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_ 좋은 문장들
어쨌든 내게서 떠난 것만은 사실이지. 일찍이 바라문이던 싯다르타는 지금 어디 있는가? 부자였던 싯다르타는 또 어디 있는가? 모두 덧없이 변해 버리네. 자네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걸세." p.124
뭇사람을 사랑하게 되었고 눈에 띄는 모든 사물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예전 그의 가장 큰 병은 그 어느 것도 사랑하지 못했던 데 있었다. p.125
싯다르타,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는 오래도록 어리석게 살다가 깊이 깨달았다.
이제 너의 가슴속에서 우는 새소리를 듣고, 그 소리를 따라가려 한다. p.129
세월은 덧없이 흘러갔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 흐름에 마음을 쓰지 않았다. p.144
그들은 강물처럼 말없이, 그러나 끊임없이 버텼다. p.161
이 기이하고 어처구니없는 반복, 이 순환은 윤회 속에서 되풀이되는 하나의 희극이 아니냐고, 그는 생각했다.
강은 웃고 있었다. 끝내 풀리지 않았던 일들이, 모두 다시 돌아왔다. 해결되지 않은 고통은 다시 찾아오고, 다시 사람을 붙들었다. 그것이 이 윤회의 방식이었다. 마치 강이 말하는 듯했다.
"너는 도망쳤고, 이제 너도 붙잡혔다. 너는 떠났고, 이제 너도 남았다." p.176

_ 느낀 점
이 책 <싯다르타>는 우리 인생을 이 책 한 권에 축소해놓았다.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것처럼 한 사람의 일대기를 담고 있었다.
어떤 누구의 삶도, 생사고락(生死苦樂)과 희로애락 (喜怒哀樂) 그 어떤 하나라도 없는 삶은 없음을 말해준다.
그 사이에서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고, 그리고 후회도 한다.
어떤 때는 웃다가 또 울기도 하고,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차다가 또 마음에 슬픔으로 가득차기도 한다.
한 인간의 삶에는 다양한 얼굴을 가지게 되고, 그 모든 얼굴을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윤회'(생명이 태어나 늙고 병들었다가 죽기를 반복)라는 무서움도 알게 되고, 벗어날 수 없음도 알게 된다. 결국 언젠가는 깨닫게 되는 '인생'이라는 삶을, 행복한 순간에도, 슬픔에 허우적되는 순간에도 받아들여야 한다.

알아야 하는 것을 몸으로 체험하는 일은 반갑다.
쾌락과 부유가 결코 부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그것을 눈과 마음과 배 속으로 알게 된 것은 지금이 처음이다. p.130
이제 그는 알 것 같았다. 왜 바라문으로서, 왜 고행자로서 그토록 부질없이 '나'와 싸웠는지를, 너무 많은 지식, 신성한 시, 번거로운 제사의 규칙, 지나친 금욕과 고행, 쉼 없는 노력, 그 모든 것이 오히려 그 '나'를 이기는 데 방해가 되었다는 것도. p.131
지혜보다 경험이 중요함도 말한다. 그 경험은 삶의 어떤 경험이든 나를 깨닫게 하는 길이 된다.
그 길은 수행의 길이기도, 쾌락의 길이기도 하다.
니체는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주어진 삶을 사랑하라'라고.
나는 니체의 다른 말은 다 받아들여도 저 말은 잘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삶이 고통인데 그 삶을 사랑하는 게 말로는 이해가 가도 마음에서 우러나지가 않았다.
그런데 이 책 <싯다르타>를 읽고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나의 삶을 사랑하겠다고 다짐했다. 어리석었던 나도, 고통스런 기억도, 힘들었던 과거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없이 흐르는 잔잔한 강물처럼.
끝도 없이 흘러가는 강물처럼
인생은 그렇게 살아가야하고, 또 그렇게 흘러가는 게 인생이다.

시간이 아이를 다독여 줄 것이며, 침묵이 언젠가 길이 되어 줄 것이라고 믿었다. p.154
싯다르타는 바스데바의 과일나무를 자르면서, 아들이 생겨 행복과 만족을 얻은 대신에 괴로움과 걱정이 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는 아들을 사랑했다. 아들없이 행복하고 즐겁던 때보다, 아들에 대한 괴로움과 걱정이 많은 지금이 더욱 좋았다. p.154
강가에 비친 내 얼굴에서 아빠의 얼굴이 보인다.
아빠의 얼굴이 스치고 나의 얼굴이 스치고, 마지막으로 나의 아들의 얼굴이 스친다.
문득 깨닫는다. 이 모든 현상이 윤회처럼 되풀이되고 있음을... 내가 준 슬픔을 내가 다시 받음을, 내가 느낀 감정을 부모님도 느꼈음을.
내가 지금 하는 후회를 나의 아들도 할 것임을.
자식을 낳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하고 깨닫는다.
어찌할 도리가 없다. 강물을 붙잡아둘 수도 없다. 삶은 그렇게 강물처럼 흘려보내는 것이다.
왜 이제 읽은걸까 후회가 되다가도, 지금이니까 깨달음을 얻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이 책.. 나에게 올해의 책이 될 것 같다. 책을 읽고 나니 새로 태어난 기분마저 든다.
나처럼 아직도 [싯다르타]를 안 읽으신 분들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