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나눈 사이
쩡이 2026/10/29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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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0) - 202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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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을 받는 동안 기다리는 시간에 읽을 책 한 권을 챙겼다. 검사실을 옮겨 다니고 내 차례를 기다리다 보면 책에 집중하기 쉽지 않은데, 이날은 달랐다. 잠깐 펼쳤던 『피를 나눈 사이』를 계속 손에 들고 있었다. 주변이 어수선한데도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은 소설은 오랜만이었다.
영진과 화진은 피를 나눈 친자매다. 백혈병에 걸린 첫째 영진을 살리기 위해 부모는 둘째 화진을 낳는다. 태어난 이유부터 언니를 위해서라니. 화진의 삶을 생각하니 시작부터 마음이 쓰였다. 자신의 조혈모세포를 언니에게 나눠주고, 자라면서도 가족의 중심에 있는 영진을 바라봐야 했다. 언니의 그림자처럼 살아온 시간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런 영진이 사람을 죽인다. 더 놀라운 건 화진의 행동이었다. 언니를 신고하는 대신 범행을 감추는 일을 돕는다. 처음에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아무리 피를 나눈 언니라지만 사람을 죽였는데 어떻게 계속 곁에 있을 수 있을까.
그런데 읽을수록 마음이 조금씩 달라졌다. 미워한다고 하루아침에 언니를 밀어낼 수 있을까. 화진은 태어날 때부터 영진에게 묶여 있었다. 그래도 궁금했다. 왜 도망치지 않았을까. 왜 모든 사실을 알리고 언니에게서 벗어나지 않았을까. 답을 찾고 싶어 화진의 다음 선택을 계속 따라가게 됐다.
결국 화진은 연쇄살인범이 된 언니를 자신의 손으로 끝내기로 결심한다. 그때는 오히려 그 선택이 이해됐다. 자신을 평생 옭아맨 친언니를 미워하고 죽이려는 마음까지도. 동시에 궁금했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영진은 정말 동생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을까.
이때부터 책을 읽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도착하는 의문의 문자까지 더해지면서 후반부는 심장이 쫄깃했다. ‘설마?’ 하면서 계속 읽었다. 내가 놓친 게 있었나 싶어 앞에서 읽었던 장면까지 하나둘 떠올랐다. 반전이 드러나는 순간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나왔다. 무엇보다 내가 그동안 화진의 마음을 얼마나 믿고 따라왔는지 깨닫는 순간이 재미있었다.
‘가족을 사랑한다는 건 어디까지 감싸주는 일일까.’
사랑해서 덮어주는 것이 정말 그 사람을 위한 일이었을까. 오히려 잘못을 멈추게 하는 것이 사랑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화진이 결국 언니를 끝내기로 한 선택은 미움만으로 보이지 않았다. 평생 언니에게 묶여 살았던 화진이 이제라도 자신의 삶을 되찾으려는 마음처럼 느껴졌다.
분명 화진도 잘못했다. 사람을 죽인 언니의 범행을 감추는 데 함께했으니까. 그런데 언니를 향한 사랑과 미움, 질투와 연민이 뒤엉킨 마음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 한쪽의 감정만으로 화진을 설명하기 어려웠다. 무섭고 징그러울 만큼 얽혀 있지만, 그럼에도 피를 나눈 사이 아니던가.
처음에는 왜 화진이 진작 영진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답답했다. 마지막에는 내가 화진이었다면 정말 더 일찍 멈출 수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남았다. 건강검진 대기실의 소란도 잊게 만들 만큼 빠져들었던 이야기가 책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빠른 전개와 반전이 있는 스릴러를 좋아하거나, 사랑과 미움이 뒤엉킨 자매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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