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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EMMA님의 서재
  • 교토 속의 정원, 정원 속의 교토
  • 홍광표
  • 17,820원 (10%990)
  • 2020-05-12
  • : 171

교토의 정원, 나라의 탑

 

교토[京都]와 나라[奈良]는 모두 ‘일본의 고도(古都)’에 속하지만, 교토의 사찰은 정원(庭園)이, 나라의 사찰은 탑(塔)이 중심이라고 한다. 아마도 교토의 사찰은 무로마치 시대 선종(禪宗)의 영향을 받아 간결하고 정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가레산스이[枯山水] 정원이 발달하고, 나라의 사찰은 국가가 보호하는 관사(官寺) 중심으로 발전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유홍준도 

 

‘교토의 명소’를 찾아가는 답사의 주체는 불상이나 건축이 아니라 정원이다. 정원에 대한 일본인들의 생각은 일찍부터 각별했다. 일본의 정원은 빈 마당을 꾸미는 조경(造景)이 아니라 정원을 만드는 작정(作庭)이었고, 정원을 설계, 시공하는 이를 작정가(作庭家)라 했다. 

~ 중략 ~

일본 정원사 연구의 권위 중 한 분인 시라하타 요자부로[白幡羊三郞] 교수는 일본 정원사를 큰 맥락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헤이안 시대는 귀족들의 침전조(寢殿造) 양식, 가마쿠라 시대는 선종 사찰의 마른 산수[枯山水, 가레산스이] 정원, 무로마치 시대는 무사들의 서원조(書院造) 정원, 에도 시대는 왕가와 지방 다이묘의 지천회유식(池泉回遊式) 정원이 창출되었다.

 

라고 말했나 보다. 

 

이 책에서는 교토의 정원 49곳을 소개하고 있는데, 작년에 내가 방문했던 텐류지[天龍寺], ‘금각사’로쿠온지[鹿苑寺], ‘은각사’지쇼지[慈照寺], 료안지[龍安寺], 니조죠[二条城], 난젠지[南禪寺], 곤치인[金地院], 지온인[知恩院], 도후쿠지[東福寺]에 먼저 시선이 갔다. 이들 가운데 ‘교토의 정원’하면 떠오르는 곳이 ‘Zen garden'으로 알려진, 료안지[龍安寺] 방장(方丈)의 남정(南庭)인 석정(石庭) 혹은 방장정원(方丈庭園)이다.

 

에도 시대에 출판된 <도림천명승도회(都林泉名勝圖會)>를 보면, 이 정원을 “라쿠호쿠[洛北]의 이름난 정원 가운데서도 으뜸”이라고 적고 있다. 이것으로 볼 때, 료안지 석정은 에도 시대에도 그 격이 높이 평가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일본인들은 이 정원이 일본정원사에 있어, 찬연히 빛나는 정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단순하면서도 명쾌하고 유현하면서도 심오한 이미지를 연출하는 이 정원은 선사상이 정원이라는 물리적 형태로 표현된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료안지 방장정원을 일본 고산수정원의 최고봉이라고 말하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 중략 ~

료안지에 가면 방장 마루에 많은 사람들이 석정을 내려다보면서 명상에 잠겨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한 번쯤은 그들과 함께 마루에 앉아 자기를 들여다보는 선정(禪定)에 들기를 권해본다. 방장의 북측에도 세장한 공간에 정원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 정원에는 ‘오유지족(吾唯知足)’이라고 쓴 둥근 몸체에 네모난 구멍을 뚫어놓은 수조가 하나 있다. 이 수조에서 물을 받아 입을 헹구고, 손을 씻어보는 것도 료안지를 느끼는 방법이 된다. 오유지족이란 ‘욕심부리지 않고, 지금의 나 자신에 만족한다’라는 뜻이다. [p.108]

 

료안지 석정(石庭)

 

료안지 방장정원 실측도


사진 출처: <교토 속의 정원, 정원 속의 교토>, p.109

 

 

교토의 다양한 정원들

 

교토에는 이런 가레산스이 정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교토에서 볼 수 있는 정원은 한국정원의 영향을 받아서 조성된 지천정원(池泉庭園·치센정원)부터 대륙으로부터 선(禪)이라고 하는 불교문화가 유입되면서 만들어진 고산수정원(枯山水庭園·가레산스이정원)까지 총망라되어 있다. 지천정원도 회유식, 관상식, 주유식(舟遊式) 등 그 유형이 많고, 고산수정원 역시 축산고산수와 평정고산수로 분류되는데, 그 내용을 보면 돌만을 사용한 고산수, 돌과 모래를 사용한 고산수, 모래만을 사용한 고산수, 돌과 식물이 결합된 고산수, 돌은 하나도 쓰지 않고 식물만을 사용한 고산수 등 다양하여 마치 정원박람회장을 연상케 하는 장대한 스펙트럼을 가진다. [p.12]

 

대표적인 치센카이유[池泉回遊] 정원으로는 무로마치 시대의 작정가 무소 소세키[夢窓 疎石]가 설계했다는 텐류지[天龍寺]의 소겐치[曹源池] 정원이 있다.

 

소겐치는 동서 35m, 남북 50m 규모이며, 들쭉날쭉한 모래톱과 같은 형태[洲浜形]의 곡지를 기본 양식으로 삼아 조성되었다. 이러한 못에 보다 다양한 시각적 변화를 주기 위한 장치로 못의 중심을 향해 불쑥 튀어나온 여러 개의 출도(出島)를 만들었는데, 출도의 연장선상에 놓인 암도(池中立石, 지중입석)는 텐류지 정원에 원근감을 부여하는 매우 주요한 요소가 된다. [pp. 76~77]

 

소겐치[曹源池] 정원

 

못을 향해 불쑥 튀어나오도록 조성한 출도(出島)


사진 출처: <교토 속의 정원, 정원 속의 교토>, p. 75

 

 

텐류지 정원 평면도


사진 출처: <교토 속의 정원, 정원 속의 교토>, p. 81

 

그렇다고 모든 정원 한 가지 양식으로만 되어 있지는 않다. 우리에게 ‘긴카쿠지[銀閣寺]’로 알려진 지쇼지[慈照寺] 히가시야마도노[東山殿]의 정원은 가레산스이[枯山水] 양식의 상단과 치센[池泉] 양식의 하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천정원은 킨쿄치[錦鏡池]라고 이름 붙인 못에 중도(中島)인 하크즈루시마[白鶴島]를 두었으며, 언덕 아래 센게츠센[洗月泉]이라 이름 붙인 폭포(瀑布) 석조를 만들었는데, 이 폭포는 안쪽에 또 하나의 폭포 석조를 만들어 이중구조를 보이고 있다.

~ 중략 ~

센게츠센으로부터 북동쪽 산 위에 조성된 고산수정원은 쇼와[昭和] 6년에 발굴되어 그 전모를 알 수 있게 되었는데, 현재는 완전히 복원된 상태이다. 이 상부 정원은 사이호지에 무소 국사가 정성을 들여 만든 고인잔[洪隱山]의 고산수정원을 모방한 것이라 하나 두 정원의 석조작법은 형식적으로 차이가 있다. 즉, 사이호지의 석조는 큰 돌을 사용하여 웅건한 기상을 느낄 수 있으나, 히가시야마도노의 석조는 힘이 느껴지기보다는 우아한 아름다움이 나타난다. [p.93]

 

자쇼지 정원 평면도


사진 출처: <교토 속의 정원, 정원 속의 교토>, p. 97

 

이런 일본의 정원들이 가지는 가장 큰 특징은 한국의 정원과 달리 정원을 만든 작정가(作庭家)들이 알려져 있고 존중 받았다는 점이다. 이 책의 서문에 해당하는 ‘책을 펴내며’에서 저자는 사이호지[西芳寺]와 텐류지[天龍寺]의 정원을 만든 무소 소세키[夢窓 疎石, 1275~1351], 곤치인[金地院] 정원을 만든 고보리 엔슈[小堀 遠州, 1579~1647], 슈가쿠인리큐[修學院離宮]을 만든 고미즈노오 상황[後水尾 上皇, 1596~1680], 무린안[無鄰庵] 정원을 만든 오가와 지헤이[小川 治兵衛, 1860~1933], 도후쿠지[東福寺] 본방정원(本坊庭園)을 만든 시게모리 미레이[重森 三玲, 1896~1975] 등을 언급했다. 이 책에 실린 정원들의 사진과 평면도 등을 보면서, 이들 작정가들이 어떤 요소를 이용하여 자신만의 작정 기법을 발휘하였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교토의 정원은 유명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여러 곳의 정원들을 보면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지루해지기 쉽다. 이 책을 읽어보고, 정원을 조성한 시기와 어떤 작정가가 나섰는지를 파악한 후라면, 좀 더 보이는 것이 많아지고 흥미도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유홍준의 말처럼, 다른 시각에서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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