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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EMMA님의 서재
  •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 천선란
  • 15,300원 (10%850)
  • 2025-10-27
  • : 67,980

좀비란 어떤 존재일까

 

좀비. 부두교 신앙의 전설에서 비롯된, 움직이는 시체 형태의 존재를 일컫는 말이다. 중앙아메리카에서는 약물과 폭행을 이용해 부려먹는 노예노동자 같은 형태로 실존하기도 했다고 한다. 아니, 우리가 알고 있는 '신안 염전 노예'와 같은 모습이 '좀비'라고 불렸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에서 주인공 네오가 '빨간 알약(red pill)'을 먹고 세계의 진실을 알게 된 것처럼, 소금을 먹고 정신을 되찾아 돌아오기도 한다.

물론 이 '좀비'이야기는 이후 여러 매체에서 다양한 형태로 변주(變奏)되고 있다. 천선란의 연작소설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에 등장하는 좀비도 그런 변주에 속한다. 

 

 

떠나는 자들

 

'1부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에서 동면에서 깨어난 기계 엔지니어 황옥주가 겪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그녀는 좀비 바이러스를 피해 지구를 떠나 에르사(Ersa) 행성으로 향한 이주선에서 냉동수면 상태로 있었다. 그녀가 깨어났을 때, 이미 이주선은 잠복기에 있던 좀비 바이러스가 깨어난 리더 타일러 조에 의해 그녀를 제외한 모든 승무원이 살해된 상태였다. 비록 그녀의 남사친이었던 묵호는 좀비가 되는 과정에서 그녀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녀가 깨어났을 때는 그도 움직이는 시체가 된 상태였다. 신기하게도 그런 상태에서도 묵호는 옥주를 인식하고 그녀를 물지 않을 뿐 아니라 끝까지 그녀를 지키려고 한다. 사랑하는 이를 지키려는 마음이 좀비 바이러스마저 억누른 것일까? 

 

좀비로 인한 세상의 종말이 다른 종말보다 더 끔찍한 이유가 뭔 줄 알아? 

~ 중략~

모든 종말의 순간에도 인물은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뛰어. 서로를 살리기 위해. 죽어가는 순간에도 애틋하게 눈을 맞추고, 입을 맞추고, 사랑을 속삭여. 슬프지만 아름답고 극적인 이별을 맞이할 수 있어. 하지만 좀비는 아니거든. 사랑하는 사람을 잊고,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고,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을 향해 총을 쏴야 해. 아름다운 마지막 모습이 아니라 시체가 되어버린 처참한 몰골을 봐야만 해. 이게 가장 끔찍한 종말이야. [p.52]

 

그래서였을까? 옥주는 묵호를 버리고 원래 목적지였던 에르사 행성으로 향하는 대신 묵호와 함께 대기 부적합으로 이주가 보류된 카르노(Carnot)으로 향한다. 

 

죽음과 삶의 경계를 오가던 묵호를 볼 때조차 나오지 않던 눈물이, 그때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지금은 참으려 애를 써도 비집고 흘러나온다는 사실이 또 억울해서, 억울함의 억울함을 더해 내가 감당할 수 없게끔 흐른다. 죽어가는 묵호는 괜찮았는데 왜 이미 죽어버린 묵호는 포기가 안 될까. 죽음은 끝이고, 내가 닿을 수 없는 불가능의 영역 같았는데, 죽은 채 곁에 있는 묵호는 닿을 수 있어서일까. 끝을 넘었으니 영원도 가능할 것만 같다. [p. 94]

 

 

이성적으로는 잘못되었다고 생각되는 옥주의 선택아 최악이 아니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이주선으로부터의 메시지였다.

 

에르사… 부적합… 항로 변경이 필요합니다. 갈 곳… 잃었습니다…. 키사… 도착한 그곳은… 어떱니까? [p. 115]

 

어쩌면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 해결하려는 대신 회피하려던 인간의 대응이 결국 갈 곳을 잃게 했는지도 모른다.

 

 

남는 자들

 

1부와 달리 2부와 3부는 지구에 남은 이들의 이야기다.

'2부 제 숨소리를 기억하십니까'는 대부분 인간이 다른 행성으로 떠나거나 좀비가 된 지구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남겨진 자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은 사랑하는 이가 좀비로 변한 것은 아니지만 아니 좀비로 변하지 않았기에 더 사랑하는 존재를 놓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스스로 족쇄를 차는 일일지도 모른다. 식물인간이 된 엄마, 카카포를 지키는 제비나 자폐아인 딸, 노윤을 지키는 은미는 그런 삶을 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제비는 밤이라서 못 본 것인지, 자신들을 태우지 않고 떠나가는, 어쩌면 마지막 구조 헬리콥터를 향해 총을 쏜다. 마치 여기 생존자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처럼.

 

죽음이 들이닥친 순간에 네 존재를 알리는 데 써야지. 세상한테. 내가 여기에 있다고. 아무도 듣지 않는데, 제비가 살아야만 하는 그 순간에. 그럴 때 총을 사용하는 거야. [p. 139]

 

'3부 우리를 아십니까'에서는 2부와 달리 이미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존재를 이야기한다.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지만, 뇌종양 때문인지 기억과 의식을 지닌 화자가 좀비가 된 아내를 리넨 카트에 싣고 그들이 돌보던 거북이 ‘장풍’을 고향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바다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부부는 고목으로 변해간다.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존재의 마지막치고는 평온하면서도 이상한 결말인 셈이다. 

 

내가 그간 열심히 기도하고 헌금한 걸 기특하게 여겨서 신이 우리 둘을 저승에서 만나게 해주면 좋으련만. 우리는 욕심이 없잖아. 많은 걸 바란 적이 없잖아. 천국은 바라지도 않아. 어디든 저승의 남은 땅에 같이 있게만 해줬으면 좋겠다. 그럼 우리가 그곳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는데. [p. 248]

 

부부의 마지막은 신이 두 사람의 소망을 들어준 것일까 아니면 인간을 배제한, 지구의 자정(自淨)이 시작된 것일까? 

모르겠다. 하지만 지구에 남는 것을 선택한, 혹은 선택당한 이들도 지구를 탈출한 이들도 마찬가지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도 형태는 다르지만, 미련을 떨치지 못한, 또 다른 형태의 회피자이기 때문이다.

 

이상 3편의 소설에서 천선란이 보여준 '좀비'는 이성이 없는 살아있는 시체가 아니다. 오직 사랑하는 이 혹은 집착하는 존재가 남아있는 한, 이성(理性)이 살아있지만, 신체가 변형되었거나 일부가 결여된 존재에 가까워 보인다. 그랬기에 '모든' 존비가 아닌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있는 묵호와 같은 '일부' 좀비가 그런 모습을 보여준 것 같다.

 

 

 

옥의 티

 

p. 52

모든 종말의 순간에도 인물은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뛰어. ⇒ 모든 종말의 순간에도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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