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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EMMA님의 서재
  • 찬란한 멸종
  • 이정모
  • 18,900원 (10%1,050)
  • 2024-08-07
  • : 36,772

기후위기는 지구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보면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어떻게 보면 새로운 탄생을 위해 구세계가 멸망해야 한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지구가 46억년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겪은 다섯 차례의 멸종은 새로운 탄생을 위해 기존의 세계를 깨뜨리는 행위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서 저자도 

 

멸종이란 다음 세대의 생명체를 위해 자리를 비켜주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p. 23]

 

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 멸종이 내가 속한 종(種)의 멸종이 아니라면 우리는 기꺼이 그 주장에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그러니까 인류가 멸종의 대상이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지구온난화 혹은 기후 변화를 지구를 멸망시키는 위기인 것처럼 말하고, 우리가 그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런데 그것이 진실일까?

 

지구는 수천 년, 수만 년, 수십만 년 전부터 어느 정도 온실효과를 겪어왔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출현하기도 전의 먼 옛날부터 지구는 온실효과의 영향을 받는 온실 속 같은 곳이었다. 지금 온실효과와 기후변화가 문제인 것은 그 효과의 정도가 갑자기 너무 빠른 속도로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기후 위기라는 것은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0.03%에서 0.04%로 짙어짐에 따라 부가적으로 발생한 현상을 가리킨다.

 

사람들은 0.03퍼센트이던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 양을 0.04퍼센트 정도 올린 것 때문에 걱정하고 있는데, 광합성을 하는 세균들은 긴 세월에 걸쳐 0퍼센트에 가깝던 산소 기체 농도를 20퍼센트 이상으로 높여버렸다. 지구의 생명체들과 자연은 이런 일을 벌였다. 그 모습만 놓고 보면 46억 년 지구 역사 전체에서 요즘의 기후변화는 미세한 변화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결국 기후 위기로 촉발된 인류의 멸종은 지구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문제에 불과하다.

 

 

다양한 생명체의 눈으로 본 지구의 역사

 

자, 그렇다면 누가 이 ‘지구’의 역사를 설명하는데 있어서 가장 적합한 화자(話者)일까? 흔히 역사에서 1차 사료(史料)는 사건이 발생한 당시 또는 그 시기에 만들어진 자료를 얘기한다. 그렇다면 멸종(滅種)의 역사를 소개하는데 있어서, 그 당사자가 설명하는 것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행위가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저자는 인류가 멸망한 것으로 가정한 2150년부터 지구가 탄생한 46억 년 전까지 거꾸로 거슬러 오르며, 지구에 놀라운 변화를 일으킨 생명체의 시선에서 17개의 주요 장면을 소개한다. 물론 여기서 설명해주는 화자(話者)들이 실제 화자가 아니라 저자가 선택한 20여 종의 존재가 직접 자신의 사연을 들려주는 형식으로 꾸민 것에 불과하다. 특히 6600만년 전[중생대 백악기] 티라노사우루스(Tyrannosaurus)가 들려주는 다섯 번째 대멸종, 2억 1000만년 전[중생대 트라이아스기] 포스토수쿠스(Postosuchus)가 들려주는 네 번째 대멸종, 2억 5100만년 전[고생대 폐름기 말기] 디메트로돈(Dimetrodon)가 들려주는 세 번째 대멸종처럼 각 시대 최고의 포식자가 들려주는 ‘멸종’에 대한 얘기는 ‘여섯 번째 대멸종’의 대상이 될 우리 인류의 입장에서는 남의 얘기로 들리지 않는다. 또한 이런 다양한 존재가 화자(話者)가 되는 방식은, 독자에게 마치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 얘기처럼 흥미로우면서도 ‘인간’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지구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게다가 이런 방식으로 지구의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은 마치 자기가 각 글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감정 이입하기도 쉽다.

 

이렇게 지구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저자가 단순히 그것만 바랬다면, 이 책의 제목은 <지구사> 정도가 아니었을까? 저자는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혹은 겪을 ‘여섯 번째 대멸종’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도 함께하고 있다. 

 

2150년에는 과연 인류가 살고 있을까요? 물론 저는 그때도 인류가 살아남았기를 기대합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대부분의 기술은 지금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바뀌지 않고 지금처럼 산다면, 그래서 지구가 꾸준히 더워진다면 2150년 지구에는 인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여섯 번째 대멸종은 이미 진행 중입니다. [pp. 7~8]

 

 

멸종에 순응해야 하나 저항해야 하나

 

지금까지 지구의 역사를 살펴보면, ‘대멸종’ 당시의 최고 포식자는 반드시 멸종하고, 생물량이 가장 많은 생물도 반드시 멸종한다. 문제는 이 두 가지 조건을 달성한 유일한, 그리고 최초의 존재가 바로 ‘인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는 ‘여섯 번째 대멸종’의 대상으로 당당하게 올라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인류는 당장의 이득에 눈이 어두워 이 대멸종을 막기는커녕 진행을 재촉하고 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을 무려 95%나 지니고 있으면서 말이다. 결국 ‘의지’와 ‘실천’의 문제인 셈이다.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충분한 기술이 있었다. 그들이 멸종하기 130년 전에도 기후변화를 막는 데 필요한 기술의 95퍼센트가 있었으며 이 기술을 사회에 적용하는 데 충분한 돈도 있었다. 또 많은 사람이 에너지 전환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절실하지는 않았다. 누군가가 해결하리라 믿었다. [p. 37]

 

‘공유지의 비극’처럼 개별 주체의 합리성과 자유가 빚은 미래인 셈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미래가 될 가능성이 높은 예측이다. 이 예측이 현실화되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한다. 인류에게는 더 이상 지구를 걱정하거나 다음 세대의 생명체를 위해 기꺼이 자리를 비켜주겠다는 이타적인 마음가짐으로 보낼 시간이 없다. 인류의 멸종을 막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기후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인류는 여섯 번째 대멸종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당신은 그것을 바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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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재식, 2023,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어크로스, p. 32

 곽재식, 앞의 책, p.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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