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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EMMA님의 서재
  • My Second Hometown 마이 세컨드 홈타운
  • 오지윤
  • 16,920원 (10%940)
  • 2024-10-25
  • : 310

[My Second Hometown]의 목차를 펼치면,

살아 보기
| 베를린, 프랑크푸르트, 밀라노
관찰하기
| 시즈오카, 오사카, 교토, 도쿄
춤추기
| 다딩베시, 카트만두, 히말라야, 포카라, 치트완
기억하기
| 빈, 파리, 두브로브니크, 니스, 로마, 상트페테르부르크, 포틀랜드

라고 되어 있다. 이것만 보면, 이 책이 열거된 19개의 장소에 대한 소개 혹은 경험을 살아보기, 관찰하기, 춤추기, 기억하기라는 카테고리로 분류하여 얘기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소 언급된 장소가 많다는 느낌은 있지만, 여행지에서 일정기간 머물며 살아보고, 여행지를 관찰하고, 여행지를 기억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춤추기’라니. 뭔가 생뚱맞은 카테고리가 하나 끼어있는 느낌이 들었다. 설마 다딩 베시(Dhading Besi), 카트만두(Kathmandu, 네팔의 수도), 히말라야, 포카라(Pokhara), 치트완(Chitwan) 국립공원에서 전통 춤을 배웠다는 것은 아닐 테고. 그래서 ‘춤추기’ 파트를 제일 먼저 펼쳐봤다.

의외였다. 춤추기 파트에 언급된, 네팔의 지명들에 대한 소개는 거의 없고, 그곳에서 만난 이들과의 대화, 그리고 에피소드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저자가 한국어 교사로 머문 디딩 베시 인근의 고아원에서의 경험과 히말라야 등반의 경험 등을 소개한다. 그러면서 한국에 일하러 온 네팔 젊은이들의 허망한 죽음과 자신의 한국어 제자가 한국에 오지 않아 그런 일을 겪지 않게 된 것에 대한 안도가 덧붙여진다.

우리가 지낼 고아원은 다딩베시라는 도시의 중심지로부터 40분 정도 떨어진 산속에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한 달 동안 먹고 자며 한국어 선생님으로 일하기로 했고, 동네에 사는 청년들이 고아원으로 와서 한국어 강의를 듣기로 했다. 모두 한국에서 일하는 데 관심 있는 청년들이었다. [p. 148]

나는 어쩌면 살인자가 될 수도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허망하게 죽음을 맞이한 그 젊은이들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똥통에 빠져 죽을 수도, 스스로를 죽일 수도 있을 만큼 대한민국에서의 노동은 힘들 거란 것을. 레건이 자문자답한 것처럼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희망을 품고 이 나라에 왔다. 그리고 또 다른 젊은이들이 오늘도 의욕 넘치는 눈빛으로 한국어를 배우고 있겠지.
나의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결국 단 한 명도 한국에 오지 못했다.
나는 그것이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한다. [p. 159]

그래서일까? 해당 부분을 다 읽을 때까지 왜 ‘춤추기’라는 파트 제목을 정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굳이 따지자면, 히말라야를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쉬어가는 마을이자 네팔 제2의 도시인 포카라의 결혼식장에서 춤을 춘 경험이 그나마 ‘춤추기’와 연관되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보였다. 나중에 한번 더 읽더라도 ‘춤추기’라는 파트 제목 설정에 대한 의문을 풀리지 않을 것 같다.

어쨌든 의문은 마음 한 구석에 몰아놓고, 책장을 다시 펼쳐 처음 파트인 ‘살아보기’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이 파트는 퇴사 후 친구 집에서 한 달을 얹혀살며 경험한 베를린(Berlin)에서의 에피소드가 중심이었다. 음? 또 한 달? 혹시 이 책의 파트들이 특정 지역에서 한달 살기였나?
베를린에서의 에피소드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사회를 보는 듯 했다.

- 베를린 살면서 좋은 게 뭐야. 자랑 좀 해 봐.
침대에 앉아 책을 읽던 그에게 물었다. 그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느릿느릿 조심스럽게 말했다.
- 지금 창밖에 보이는 풍경이 서울에서는 사치였어. 창 밖으로 나무를 볼 수 있다는 게 왜 그렇게 힘든 일일까. 서울에서는 벽이나 다른 아파트가 보이는 경우가 많잖아. 돈이 별로 없어도 나무가 있는 풍경을 보며 살 수 있어서 좋아. 그것만으로도 여기가 좋아. 그리고 한국에서는 스트레스가 너무 많았어. 삼십 대 중반이 되니까 친구들을 만나면 나누는 이야기가 부동산이며 주식이며 하는 것들로 정해졌던 것 같아.
 - 그건 사람의 문제라기보다 사회적인 문제일 것 같아.
나는 왠지 방어적으로 답했다.
- 맞아. 여기는 평생 세입자로 살아도 주거 안정성이 보장돼. 죽을 때까지 집을 소유하지 않는 사람도 많아. 비교하고 걱정하는 대화는 거의 나누지 않지. 삶의 스펙트럼도 넓고 친구들의 스펙트럼도 넓어. 플리마켓에서 그림을 그리며 사는 친구도 있고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친구도 있어. 어떤 나이에 어느 만큼 경제력을 갖춰야 한다는 기준이 없어. 다들 격 없이 대화하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달까. 사람 대 사람으로 존중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 [pp. 23~26]

하지만, 그건 상대적이었다. 이를 보여주는 것이 프랑크푸르트(Frankfurt)에서 만난 나우엘과의 에피소드였다. 세계 어디서든 엄마의 삶은 밖에서 보는 것만큼 쉽지 않음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해주었다.

- 그래도 독일은 엄마들이 살지 좋이 않아? 육아휴직도 엄청 길 것 같은데.
- 육아휴직이야 몇 개월 주긴 하지. 그럼 뭐 해? 복직한 후가 문제야. 독일은 어린이집이 3시면 문을 닫아. 그럼 우리는 어쩌지? 3시에 퇴근해서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지. 결국에는 아이를 가지면 일을 그만둬야 하나 고민하는 여자들이 생기는 거야. 사회가 여자들의 경력 단절을 조장하고 있어. [p. 76]

피천득의 <인연>을 떠오르게 하는, ‘우리는 또 어떻게 변해 갈까’라는 에피소드도 흥미로웠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의 교환학생 시절 만난 라트비아인 친구 ‘우나’와 10년째 인연을 이어 가며 세 차례 만남을 가지면서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여준다. 10년 사이에 우나는 흡연도, 맥도날드도, 클럽도, 술도. 탄산음료도, 카페인도 끊고 채식주의자의 삶을 살고 있었다. 피천득과 아사꼬의 만남과는 달리 저자와 우나의 만남은 더 이어질 것 같아 흥미로웠다. 다음 만남에서 우나는 또 어떻게 변해있을까?

세 번째로 펼친 ‘관찰하기’ 파트는 부모님의 효도여행, 그리고 일본에 거주하는 인스타그램 친구이자 브런치북 대상 동기인 이예은 작가와의 만남 얘기를 두 축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펼친 ‘기억하기’ 파트는 조금 의외였다. 각각 다른 신문에 실린, 오늘 날짜의 4컷 만화들을 모은 듯한 느낌이랄까?
예를 들면, 잘츠부르크 유학시절 친구인 리사를 만나기 위해 탄, 빈(Wien)에 가는 열차의 옆자리에 앉은 ‘파독(派獨) 간호사’가 언급한  ‘두 번째 고향’이야기나

여기가 두 번째 고향이네. 작은 지구에 살면서 고향을 하나 더 만드는 건 너무 좋은 일 같아요. 그리워할 수 있고 언제나 돌아갈 곳이 생기는 거잖아요. 그건 행운이에요. [p. 227]

국문학을 전공했지만 로마(Roma)에서 관광 가이드를 거쳐 개발자로 일하는 대학 동기 보연과의 만남을 얘기하기도 하며 포틀랜드(Portland)의 카페 코아바의 비효율적인 아니 돈에 구애 받지 않는 널찍한 공간 구성과 어느 호프집의 넉넉한 커피 인심도 부러운 듯이 말한다.

크게 독일 여행, 일본 여행, 네팔 여행에서의 경험과 생각을 이야기하는 살아보기, 관찰하기, 춤추기 파트와는 달리 서로 다른 장소의 다양한 이야기를 그저 엮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학창시절 동아리 방에 놓여 있는 ‘날적이’처럼 통일성이 약한 글을 읽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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