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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EMMA님의 서재
  • 역사가 묻고 미생물이 답하다
  • 고관수
  • 16,650원 (10%920)
  • 2024-09-13
  • : 1,143

미생물, 역사를 바꾸다 


“2장 최초의 민주주의를 세균이 무너뜨렸다고?”는 흥미로운 얘기를 하고 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기원전 5세기 중반 도시국가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을 결성, 강대국 페르시아 제국의 침공을 격퇴했다. 하지만 이후 지중해의 패자가 된 아테네가 제국주의적 팽창정책을 펼치면서 이에 반발한 스파르타 주도의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전쟁을 벌이게 된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아테네는 몰락한다. 이 몰락에는 단순한 전쟁에서의 패배 외에 지도자인 페리클레스(Perikles)를 비롯한 시민 1/3의 목숨을 앗아간 전염병 장티푸스 혹은 염병(染病)과 페르시아와의 전쟁을 위해 아테네 해군의 노잡이로 투입되면서 사회적 영향력이 커진 4등급의 무산자(無産者)인 테테스(thetes)의 지지에 기반을 둔 중우정치(衆愚政治)도 큰 몫을 했다. 만약, 살모넬라 엔테리카(Salmonella enterica)에 의한 장티푸스가 번지지 않았더라면 전통적인 명문가 출신으로 대중을 설득하고 주체적인 정치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페리클레스 같은 지도층이 계속해서 아테네를 이끌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사소한 구실로 대승을 거둔 해군 수뇌부를 몰살시키는 멍청한 결정을 내릴 중우정치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의 패배도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

3장에서는 대두창바이러스(Variola major)에 의한 두창(痘瘡) 혹은 마마(媽媽)로 불리는 천연두가 유럽인에 의해 유입되어 이에 대한 면역이 없던 아스테카 왕국과 잉카 제국에 치명적인 피해를 끼쳤음을 얘기한다. 4장에서는 산업혁명으로 도시에 대규모로 유입된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근무하면서 미코박테리움 투베르쿨로시스(Mycobacterium tuberculosis) 혹은 결핵균에 의한 결핵이 대규모로 발생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5장에서는 콜레라균(Vibrio cholera)이 세계화에 따라 수 차례 팬데믹을 발생시켰다는 사실과 최초의 역학조사를 통해 나쁜 공기가 아닌 오염된 물을 통해 콜레라가 전염되었다는 사실이 발견되어 도시 위생 개혁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6장에서는 H1N1 A형 독감 바이러스로 인해 발병한 소위 ‘스페인 독감’이 제1차 세계대전과 전후 처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언급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2장에서 6장까지 어떤 미생물이 원인이 된 질병이 역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와 그 미생물을 발견하는 과정 등을 얘기한다.


인간과 미생물의 공존

“7장 포스트 항생제 시대, 미생물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부터 앞 부분과 다소 결을 달리하는 이야기가 시작된다. 항생제의 대표로 인식된 페니실린이 상징하는 세균 박멸은 어떻게 보면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서양의 시각이 담겨있다. 하지만 한때 효율적이었던 항생제의 사용은 내성(耐性)문제가 불거지면서 주춤하고 있다.
 

항생제 내성으로 기존의 항생제가 쓸모 없어지는(이미 쓸모 없어진 경우도 없지 않다) 상황이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메커니즘을 갖는 항생제 개발의 어려움, 비용과 수익성의 문제, 임상시험의 복잡성, 내성 문제 등으로 많은 제약회사가 항생제 개발에서 발을 빼는 실정이다. 어쩌면 우리는 흔한 세균 감염에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포스트 항생제 시대(Post-antibiotic era)’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다시 우리의 미래를 세균에 저당 잡힐 수도 있는 것이다. 어쩌면 벌써 아슬아슬한 벼랑 끝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p. 175]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인체에 존재하는 미생물의 집단적 유전체인 마이크로바이옴 연구를 소개한다. 이에 따르면, 조현병(調絃病), 자폐스펙트럼장애(ASD), 파킨슨병 등 다양한 병이 마이크로바이옴의 영향을 받는다는 연구결과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미생물은 지구에 최초로 나타난 생명체이면서, 외치1)가 그랬듯 인류가 존재하는 순간부터 함께해왔다. 마이크로바이옴에 관한 지식이 쌓여가면서 단순히 함께해온 정도가 아니라, 인간의 건강은 물론 정신세계에까지 몸 속 미생물의 영향이 뻗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생물은 부단히 인간을 바꿔왔다. 어쩌면 인간은 미생물에 종속된 존재가 아닐까? [pp. 223~224]


심지어 위의 글을 읽다 보면, 인간의 성격이나 건강을 미생물이 좌우하는, 나아가 인간이 숙주라는 느낌까지 든다. 하지만 단순하게 생각하면, 미생물은 미생물의 일을, 인간은 인간의 일을 각각 하고 있었을 뿐이다. 단지, 인간이 그것에 선악을, 이로움과 해로움을 부여하거나 그렇게 해석한 것이다.

미생물이 인간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것 또한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 때문이다. 증식이라는 미생물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린 존재가 인간이었을 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미생물의 목적을 인간 역사에서 파괴적인 역할로 전환시킨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었다.

~ 중략 ~

기회주의적 병원체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 즉 인체의 방어 능력이 약해졌을 때만 병을 일으킨다. 대부분의 병원체가 기회주의적이라는 말은 많은 미생물이 인체 내에서 대체로 중립적이라는 뜻이다. 인간 면역력은 완전하지 않기에 감염되는 사람이 생길 뿐이다. 또한 도움이 되는 미생물도 적지 않다. 물론 중립적인 미생물의 다양한 특성을 인간이 이용하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다시 한번 깨닫는 것이지만, 결국은 사람의 손에 달렸다. [pp. 247~248]


덧붙이자면, 이런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에 자연을 공존의 대상으로 보는 동양의 시각이 담겼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과거 우리는 세균을 비롯한 미생물을 질병을 일으키는 못된 녀석으로만 여겼다. 그러나 이제는 해로운 세균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유익한 미생물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뿐만 아니라, 해롭다거나 이롭다는 식으로 이분법적으로 미생물을 나눌 수 없으며, 대신 미생물 군집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미국 뉴욕 대학의 마틴 블레이저(Martin Blaser)가 인간 진화의 운명이 우리의 마이크로바이옴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말했듯이, 미생물은 과거뿐 아니라 곧 현재가 될 미래에도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은 미생물을 이용한 질병 치료로 나아가고 있다. 인류가 아직도 달성하지 못한 질병에서의 해방은 어쩌면 미생물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pp. 243~244]


위 도서를 소개하면서 저자로부터 무료로 도서를 받았습니다.


 1) 외치(Otzi): 5,300년 전(청동기 시대)에 자연 냉동된 성인 남성의 미라. ‘아이스맨(Ice man)’이라는 별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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