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전체보기

알라딘

서재
장바구니
cleven님의 서재
현재의 초라함을 넘어 예언의 성취를 보라

다윗은 추방자에 불과했다. 떠돌이 깡패집단의 골목대장과도 같았다. 그런 수준의 다윗이었지만 아비가일은 하나님의 예언을 믿었기에 주저 없이 선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윗을 선택한 것은 하나님의 예언을 선택한 것이고 또한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었다. 나발은 가까이 찾아온 복덩이를 차버렸다. 자기 부를 더 크게 늘릴 수 있는 기회였는데 말이다. 그러나 아비가일은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되리라고 믿었기에 현재의 초라한 다윗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때와 시대를 바꾸시며 왕을 세우고 폐하시며 지혜로운 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 분이시다˝(현대인의성경 단2:21). 사울 왕의 현재가 아무리 견고할지라도 반드시 다윗 왕의 미래가 올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것이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흐름을 타고 움직이는 것이다. 갈렙도, 나오미도, 아비가일도 하나님이 움직이시는 흐름을 타고 움직였다.

˝잇사갈 자손 중에서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우두머리가 이백 명이니 그들은 그 모든 형제를 통솔하는 자이며˝(대상12:32). 시대의 흐름은 불변이 아니다. 바뀌고 바뀐다. 인간과 로봇의 경계가 점점 허물어질 것이고 현실과 가상의 경계도 점점 허물어질 것이다. 디지털 치료제 처방이 점점 늘어날 것이고 유전자 증명도 언젠가 나타날 것이다. 실물 모나리자 그림의 값어치를 능가하는 디지털 아트 NFT들도 나오고 있다.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고 반추한다. 첫째는 이미 누린 은혜와 사랑과 행복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둘째는 이미 저지른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나이를 더 먹을수록 우리는 그렇게 못마땅해하던 부모님 인생도 다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자식과 부모가 소주잔을 기울이며 왜 그런 인생을 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는지, 서로 흉금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심리적 공간도 생긴다. 과거를 기억하고 반추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