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늦봄부터 여름까지 서울을 뜨겁게 달구었던 화가 호크니!
무려 40만명 가까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그의 전시를 보았다는 소식에
호크니를 좋아하는 분들이 이렇게나 많았나 내심 놀랐었다.
이 책은 표지에 나온 호크니,프로이트, 베이컨의 사진만으로도 충분히 호기심을 끌었다.
세 화가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세계 최고가를 경신하는 그야말로 현대 미술계의 거장들이기 때문이다.
책에는 제2차 세계 대전부터 1970년대까지 런던 예술계를 이끌었던 화가들이 총집합되어 있다.
이 책의 저자 마틴 게이퍼드는 프로이트와 호크니의 그림 모델도 되었던 세계적인 미술평론가이다.
실제로 사귐과 대담을 나누며 지켜본 화가들에 대한 생생함을 글 속에 잘 전달해 준다.
마치 이방인이 런던 예술계의 뒷골목을 친구 찬스를 써서 함께 다닌 느낌이다.
우리는 대부분 화가의 오늘날의 영광을 기억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들이 보낸 시간 속에는
수많은 좌절과 실패와 절망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사진처럼 그려야 하는 회화적 전통이 사라진 시점에서 무엇을 그려야 하는지 방황하고
스스로 존재의 본질을 찾아 거스르고, 넘어지고, 전복시키고, 꺽이지 않고, 계속해 나가는 힘
그것이 오늘날 이들을 현대미술의 이단자들로 이름을 남게 했을 것이다.
실제로 본문에 언급된 더 많은 이름들은 나타났다 사라졌다.
책 속에서 베이컨은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고 한다.
이야기가 서술되는 순간 이미 그림이 지루해진다고 .
프로이트는 베이컨을 그림 초상화로 유명해졌지만 그후 10년 동안 구상미술을 무시하는 풍조 때문에
그림이 안팔려 빚쟁이를 피해 도망다녀야 하는 생활고를 겪기도 한다.
쉽게 읽히는 에피소드도 있지만 들어본 적 없는 영국 화가들 이야기는 쉽게 넘어가진 않았다.
이럴 때 몇 장 뒤로 넘겨 보는 것도 ^^
그림을 꼭 알고 봐야 하는가 그냥 좋은 그림은 좋은 그림으로 느껴야지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 앞에 서면 나는 '이 그림 좋다!'만 연발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 작품을 그렸으며,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상징하는지 알고 싶어진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놓친 호크니의 여러 면모를 다시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그리고 다음에 여기 나온 다른 화가들의 작품을 볼 기회가 있다면 더 깊이 있게 이해하면서
감상의 즐거움을 누릴 듯하다.
호크니는 그 어떤 범주에도 속하지 않았는데 그것이 그의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였다. 게다가 그이 작품은 끊임없이 바뀌었다. 이것은 불확실성이라기 보다는 독창성과 내적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호크니는 몇 년 뒤, 양식을 바꾸는 것은 이전에 했던 작품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있을지"를 알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 P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