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조대림 2026/05/05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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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구가 없다면, 순간이동
- 김희찬.문오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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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 - 2026-04-24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곳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루쉰, 「고향」 중
파란색 소음을 좋아하고, 끝나지 않는 미로를 위해 그림들이 서로 손을 잡게 하는 소년이 있습니다. 그 소년의 우주에는 버려진 낙서들이 떠돌며 살아갑니다. 스스로 알을 깨고 나와 새가 된 소년.
『출구가 없다면, 순간이동』으로 벽을 뚫던 미로 소년 김희찬은 어느새 ‘미로그림 작가’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었습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초능력을 갖고 싶어했던 적이 있을 겁니다. 희찬이의 초능력은 ‘순간이동’입니다. 미로를 풀다가 길이 막히면 초능력을 사용합니다.
희찬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미로에 흥미를 가질 때 행복감을 느낍니다. 네가 즐거우면 그 길이 어디로 뻗어 있든 쭉 그 길을 따라가 보라고 말해 준 엄마로 인해 희찬이는 마음껏 ‘출구 없는 미로, 미로 같은 인생’을 헤맬 수 있었습니다.
‘평범하다’는 말은 ‘뛰어나거나 색다른 점이 없이 보통’이라는 말입니다. 특별하지 않은 ‘일반적’(일부에 한정되지 않고 전체에 걸치는 것-표준국어대사전)인 보통(특별하지 아니하고 흔히 볼 수 있음, 뛰어나지도 열등하지 않은 중간 정도-표준국어대사전)의 상태.
희찬이는 생후 30개월에 자폐스펙트럼 진단을 받고 8살에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엄마의 바람은 희찬이가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열 살 무렵 처음으로 스케치북 뒷장에 있는 미로를 발견한 희찬이는 그 후로 미로를 직접 그리기 시작합니다. 그려져 있는 미로를 푸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직접 ‘갈라졌다가 서로 엉키고 부딪히고 다시 하나가 되’는(표준국어대사전) ‘어지럽게 갈래가 져서 한 번 들어가면 다시 빠져나오기 어려운 길’(표준국어대사전), 미로를 그립니다.
p.137 나는 미로에서 나온 아이다. 이제는 현실 세계에서 스스로 출구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나는 다시 미로 안으로 들어가 여태 가본 적 없는 새로운 길을 만나고, 벽을 뚫고, 순간이동을 하고, 누군가와 손을 잡고 언덕 끝까지 뛰어가는 상상을 한다.
호기심이 많아 낯선 길을 그리던 희찬이는 엄마의 권유로 프리마켓에 들고 나간 미로 그림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합니다. 처음으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성취감을 느꼈던 희찬은 천천히 자신을 벗어나는 중이었습니다.
‘변화에 방황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적응한다.’
희찬은 자신에게 조금의 시간을 주면 스스로 마음이 풀린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시간을 두고 기다리는 것. 모든 꽃이 한꺼번에 피지 않듯이 희찬이도 조금 늦을 뿐이었습니다. 희찬이의 낙서를 보며 어느 소아청소년과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인내’ 입니다.”
‘내 몸속에서는 미로들이 꿈을 꾸고 있다. 눈을 감으면 머릿 속에 펼쳐지는, 숨 쉬는 미로들을 나는 사랑한다.’ 미로 속에 눈을 감고 서 있는 소년의 자유를 그려봅니다.
우리가 ‘혼자 이기적이게 어리광이나 부리고 산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된 것은 언제였을까요. ‘어쩌면 우리는 일상 속 작은 무지개들을 놓치고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낙서는 큰 무지개를 보려고 작은 무지개들을 외면했던 순간들을 돌아보게 합니다.
‘하얀색인 줄 알았는데 검정을 하얀색으로 덮고 있었을 뿐이다.’
전경과 배경을 바꿔 볼 줄 아는 희찬이는 벽을 뚫는 방식도 남다릅니다. 희찬은 도구를 써서 파괴하기보다 돌아가는 방식을 선택합니다.
산을 오르기 위해 나무를 베어내는 것과 나무 사이로 통과하고 호숫가를 돌아가는 것 중에 진심으로 산을 즐기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눈길을 걸으며 눈을 밟을 때는 더 많은 사람들이 눈의 뽀드득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다 밟지 않고 어느 정도 남기면서 가야 한다’
포기하지 말아요. 언제든 순간이동을 할 수도 있고 돌아갈 수도 있어요. 멈추지만 않으면 벽을 뚫을 수도 있어요. 자신이 그랬듯이 지금 헤매고 있는 사람에게 함께 걸어보자고 손을 내밉니다.
p.138 ‘나는 오늘도 미로를 그린다. 내가 만든 미로 안에 있을 때 혼자여도 나는 외롭지도 힘들지도 않다. 어디에는 반드시 출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 출구는 바로 내가 만드는 거니까.
“이제 진짜 행복을 알아봅니다.”
벽을 만나면 벽한테 속삭입니다. 좀 비켜줄래?’
행복은 찾는 것이 아니라 알아보는 것이고 벽을 뛰어넘거나 허무는 방법 외에 비켜달라고 속삭일 수도 있다는 걸 희찬이에게 배웠습니다. 느리더라도 행복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말해 주는 사람들로 인해 마침내 출구를 찾게 될 것이라는 희망도 함께 말이죠.
최진석 교수님의 『나를 향해 걷는 열 걸음』(최진석 저, 열림원, 2022)에는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우리에겐 정해진 ‘답’이 아닌 꾸준하고 성실한 ‘질문’이 필요’하다고 적혀 있습니다. 정해진 ‘길’이 아닌 꾸준하고 성실한 ‘모험’이 필요한 미로야말로 김희찬 작가가 자신을 향해 걷는 외로운 길이 아니었을지.
단 하나의 나로 존재하기 위해 힘겨운 미로를 빠져나온 김희찬 작가와 마침내 출구를 찾아 날아갈 당신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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