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엽서라거나 편지라기보다 소포에 가깝다. 언젠간 오겠지하고 기다리다가 잊혀져버린 선물. 3년 전, 다니던 회사에서 ‘잘리고’ 서른 즈음의 방황을 어쩌지 못하고 떠났다가 230일 동안 음악을 통해 또는 영화를 통해 알았던 지명을 찾아 다니며 하루하루를 기록했고, 책을 냈고, 그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 책이 되었다.
그리고 3년 후. 그는 또 다시 180여 일의 다시 긴 여행길에 올랐단다. 지난 여행은 오직 자동차 한 대로 홀로 미국을 횡단하는 여행을 했다면, 그리고 그 외로움과 불안감 속에서 청춘을 찾아냈다면, 이번에는 온 세상이 눈으로 뒤덮인 아예 인적이 드문 저 먼 북쪽 끄트머리 섬으로 떠났다. 길고 길었던 여행의 마지막인 것처럼 멀고 신비롭기만 한 땅 아이슬란드로 말이다.
서른 살의 여행 그리고 3년 후, 과연 생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나도 이것이 궁금했다. 책을 읽어보고 느낀 첫 번째 감정은 그가 더이상 불안해하지 않는다는 거다. 그만큼 그의 정서는 정제되었고, 청춘이라 불리는 뜨거운 공기도 차분해졌다. 오히려 더 외로울 법한 곳에서 외로움만을 토로하지 않는다.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았던 지난 여행이 자신의 존재를 찾기 위한 하나의 수행과도 같았다면 이번에는 여름에 한 번, 겨울에 한 번 이렇게 같은 곳을 두 번 가며 시간을 두고 버티는 법을 터득한 것이다. 어린 애의 변덕 같은, 철부지 정서는 사라진 것이다. 어쩌면 3년이란 시간동안 그는 조금 더 차분해졌고, 물러서서 자신을 그리고 세상을 관조하기 시작했다. 계속 청춘의 열병에 시달리거나 맞서자고 하면 진부할 것이 엎어져 있으면 그건 너무 시시하다. 그러나 3년의 세월 동안 성장을 한 작가는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세월과 시간에 익숙해지는 것처럼 익숙해졌고,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한다. 젋음은 필연적으로 불안이란 연료와 함께하는 것을 말하며...
아이슬란드가 차분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의 책에 담긴 공감이란 단어로는 설명이 부족한 단어들과 그 분위기는 이 책 전반에 깔려 있다. 다행이다. 멈추지 않아서, 그리고 우리와 같이 같은 고민을 꾸준히 해주어서. 나만 위로할 것은 이기적인 제목과는 전혀 다른 우리 세대를 우리 시대를 위해 들려주는 작은 시낭송회 같다. 작은 카페에서 작은 불 하나 켜고 모여 앉아 낭독하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