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75
분명 내 두눈으로 똑똑히 보았소. 2년 전 정월 말일. 기쿠노스케 님은 키가 여섯 척은 되는 거한 도박꾼 사쿠베에를 멋지게 베었지. 틀림없는 사실이오.
나오키상 수상작으로 과거의 사건을 과거의 인물이 다시 조사하면서 하나의 복수, 한줄의 복수를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며 기여했는지, 그리고 복수라는 사건의 이면에 존재하는 미스터리를 통해서 진정한 과거의 극복이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문학으로 복수보다 생활이 미학적으로 대접 받을 수 있는 가치가 있음을 조용하면서도 강력하게 주장한다. 사견으로는 이것이 수상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다섯명의 시선과 이야기로 사건을 복기한다길래 #아쿠타카와류노스케 의 #라쇼몽 과 어떤 접점이 있을까 궁금했는데, 형식은 비슷하나 의도로서는 #애거서크리스티 의 어떤 작품과 맞닿아 있었다.
에도 시대의 생활상과 당시 관념에 고전 미스터리가 얽혀 있는 셈이다. #미야베미유키에도시리즈 와 #흑뢰성 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 또한 인상적으로 읽을 수 있을 듯하다.
1810년대의 에도 고비키초의 모리타 극장 뒤편에서 복수라는 칼부림이 일어난다. 10대의 청년 기쿠노스케가 아버지의 원수이자 가솔이었던 사쿠베에를 죽이고 목을 밴다.
p230
"아버지는······ 저를 베려고 하셨습니다."
복수를 완수한 기쿠노스케는 사쿠베에의 목을 들고 그간 몸을 의탁하며 지낸 모리타 극장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로부터 2년 후 이 일을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 기쿠노스케의 지인이 모리타 극장을 찾아온다.
그리고 문전 게이샤(호객, 바람잡이), 극장 무술 담당, 극장 침장, 기쿠노스케가 기숙한 극장 목공인의 아내, 극장 작가와 차례로 대화를 나눈다. 이 소설은 그 대화를 통해서 기쿠노스케의 됨됨이와 두 사건(아버지의 죽음, 사쿠베에의 죽음), 그리고 극장 5인방의 삶도 드러난다.
극장 지역을 악처惡處라고 밝히는 5인이지만, 무사의 아들로 태어나 악처에 스며든 기쿠노스케가 복수라는 엄정한 비장미의 막다른 길에서 하나의 구원을 겪는 과정이 남다르다.
그리고 담담하고 깔끔한 종결(미스터리에서 정말 중요한 미덕임)에서 차기작을 기다리게끔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