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이세요?
창비에서 출간하는 청소년 책들이 좋아서 학생들과 독서 캠프를 진행할 때
미션 과제로 자주 활용하는 편이다.
'당근이세요?'는 4편의 단편집을 모아 놓은 책이다.
4편의 소설은 모두 주인공인 청소년의 시선으로 사건을 바라본다.
'딱국질'은 2002년 월드컵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온 나라가 월드컵 응원에 빠져있던 시기, 주인공 지완이는
부모님의 심부름으로 동네 가게에 맥주 심부름을 간다.
가게 주인도 TV 월드컵 중계를 보러 갔는지 가게에는 아무도 없다.
주인 없는 가게에서 주인 아저씨를 기다리며
목이 타는 순간 맥주를 마시게 되면서 눈 앞에 보이는
소시지를 남몰래 먹기 시작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건너가 버린 지완
나중에는 손님이 맥주 값으로 주고 간 돈과 소시지를
남몰래 주머니에 넣고 가게를 빠져나와
월드컵 4 강 진출 축하 트럭에 올라타고
저 멀리 파라솔 아래 슈퍼 주인 아저씨를 보며 지나친다.
'당근이세요?'는 공부방을 운영하는 엄마와 살고 있는 나라의 이야기다.
엄마가 부탁한 당근에 올린 물건을 전달하러 나간 나라는
뜻하지 않게 예전에 살았던 서울로 친구들을 만나러 가게 된다.
그리고 베트남 출신의 엄마를 둔 친구 보라를 만나
보라의 엄마 가게를 가게 되고 그곳에서
보라의 외삼촌이라는 사람과 인사를 나눈다.
노래방에서 '잘못된 만남'을 연달아 세 번이나 부르는 보라를 보면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예감한 나라와 친구 나영은 가게에서 만났던 외삼촌이 사실은 보라 엄마가 새롭게 사귄 남자 친구라는 사실을 듣게 된다.
"엄마를 뺏긴다 생각하지 말고,
엄마로부터 해방된다고 생각해.
그 아저씨한테 넘겨버려.
엄마에 대한 너의 부담을......"
25살 많은 한국인 아빠와 결혼하기 위해 20살에 한국으로 온 보라 엄마.
술에 절어 살던 아빠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았던 보라는 남자에 대한 생각 자체가 부정적이었다.
'오월의 생일 케이크'는 명문대에 다니던 큰 아빠가 젊은 시절 군대에 갔다 온 이후 학교도 그만 두고 세상과 담을 쌓은 사연이 소개되고 있다.
해마다 민서네 엄마는 민서 큰 아빠 생일에 음식을 해서 할머니와 살고 있는 큰 아빠에게 보낸다.
민서는 이번에도 찬합 가득 담은 음식을 가지고 엄마의 심부름으로 할머니댁을 가는 길이다.
그런데 가는 길에 도로에서 사고를 목격하고 충격을 받고 할머니집에 도착한다.
어린 시절 할머니집에서 자란 민서에게 큰 아빠의 기억은 다정함이다.
그러나 무슨 사연이 있는지 큰 아빠는 은둔형 인간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큰 아빠 생일마다 배달되는 옛 연인이 보내는 케이크.......
5.18의 현장에서 군인의 신분으로 그 시간을 지난 큰 아빠의 모습을 중학생의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마지막 작품 '개를 보내다'는 읽고 나니 어린 시절 나의 아버지께서 장날에 사온 유년시절 우리 집 강아지를 떠올리게 했다.
딸들이 유달리 개를 무서워해서 아버지가 개와 친해 보라고 장날에 개를 사 오셨다.
우리 자매들은 사실 동물을 엄청 무서워해서 개와 고양이만 보면
울음을 터뜨리기가 일수였다.
이름도 'Doge'라 지었던 내 유년의 반려 동물은 끝내 우리와 친해지지 못했다.
나중에 우리가 '도그'와 친해지지 못하고 계속 무서워해서
아버지는 '도그'를 아버지 사무실 마당에 묶어두었다.
'도그'와 친해지진 못했지만
나는 이후 가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올 때 아버지 사무실을 둘러
먼 발치에서 '도그'를 보곤했는데
어느 날 아버지 회사에 도그가 안 보여 물었더니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는 얘기를 듣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났다.
소설 속 주인공 진서의 이야기를 보며
유년 시절의 유일했던 우리 자매들의 반려동물이 생각났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흔히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청소년이다.
작가는 청소년의 시선을 통해 한국 사회의 현실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짧은 내용 안에 가슴 뭉클해지는 무언가가 계속해서 울림으로 마음 속에 남는다.
현실 속에 마주하는 일상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
자연스러운 그 일상도 들어가 보면 많은 생각과 사건이 있다.
이웃의 이야기가 곧 우리 가족의 이야기가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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