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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80일 : 누가 임신을 아름답다 했던가
  • 전혜진
  • 12,600원 (10%700)
  • 2019-06-25
  • : 277

이번 책의 리뷰는 마지막 장에서부터 시작해야겠다.

왜 다들 이런 이야기를 제대로 안 해줬던 거죠? - P 412

 

아니, 적어도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미리 알기는 알고 시작해야맞는 게 아니었을까요?

 

그런데 (우리 큰 애가) 작년에 임신과 출산에 대해 학교에서 배우는데 진짜 그냥 생명 탄생의 위대함에 대해서만 배워 왔더라. 아니 위대하기로 치면 프랑켄슈타인 뮤지컬에서 크리처 만들 때에도 위대한 생명 창조의 역사가 시작된다고 하던데. - P 414

 

대체 어떤 미친 놈이 임신을 아름답다고 그러는 거에요.

그러게. 그러게나 말이야.  - P 415

 

장장 419페이지에 달하는 길고 긴 장편소설을 통해 긴 호흡으로 해주신 이야기를 전혜진 작가님은 마지막 페이지에서 짧고 굵게 잘 요약해 주셨다. 임신과 출산은 죽을 만큼 힘들고, 포기하고 감당해야 하는 것이 많다는 것을, 놀랍도록 적나라하게 드러내주었다.

그래서 추천을 한다. 임신 해당자인 여성들이 아니라, 그 외의 모든 사람들에게.

 

‘다큐멘터리 소설’이라는 장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만약에 없다면 나는 이 글을 여성을 위한 첫 번째 ‘다큐 소설’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다큐멘터리라고 할 만큼 상세한 최신 정보들이 가득하고, 실제로 겪은 임산부들의 스토리를 아마도 오랜 기간 취재를 다녔을 것이라 확신이 들 만큼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임신의 A to Z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출산을 경험한 엄마들이라면 누구나 공감 가능하다. 그렇지만 전혜진 작가는 기출산 여성의 공감만을 이끌어내고자 이 글을 썼을 것 같지는 않다. 미혼의 여성, 임신을 준비하는 여성 또한 너무 당연한 독자이긴 하지만,

이들이 목적이 아니다. 임신이라고 하면 내 일이 아니라 아니라 생각하는 남편들, 업무 능력과 상관없이 죽을 죄를 지우는 회사 요직에 앉아계신 분들,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맘충이니, 뭐니 입 놀리는 젊은 것들, 여성을 임신기계로 보는 정부 관계자들. 이 분들 보라고 썼을 것이라 확신한다.

왜냐면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리고 알려고 하지 않으니까.

아마도 이 분들이 이 작품을 보게 된다면 이 분들에게는 ‘다큐 소설’이 아닐 것이다. “이런 세상이 있었어?!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세상이야!.... 무서워..” 이들에게는 아마 판타지 소설일 것이다. 혹은 스릴러일 것이다.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치열하고 피터지는 판타지스릴러.

 

이 작품을 통해 모두가 알았으면 좋겠다.

아기를 잉태하고 출산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여자라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과 건강과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한 선택이라는 걸.

알아주면 좋겠다. 아니 모두가 알아야 한다.

 

 

4명의 확실한 캐릭터

임신 어벤져스, 280에서 만나보자.

 

작가이자 스스로 임신을 선택한 임산부로 작가 자신을 투영시킨 것 같은 재희,

유능한 대기업 과장이지만 두번의 유산과 오랜 시험관 시술 후의 임신으로 회사를 포기한 의지의임산부 선경,

남편의 계획적 콘돔 빼기로 인해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한 후 강력계로 전출을 포기하게 된 지원,

늦은 결혼에 노후를 걱정하지만 선물처럼 다가온 아기를 축복으로 품는 은주

사실 모든 경우의 임신과 출산을 모두 모아둔 임산부 캐릭터 총집합이다. 서로 다른 연유지만 동시에 임신을 하게 된 이들은 서로의 힘든 상황을 이해하고 격려하며, 위급한 상황에서는 서로의 119가 되어주고 외롭고 쓸쓸한 겨를 없이 서로의 가족이 되어준다.

방관자이거나 비평자이거나 심지어는 비판자이기까지 한 주위 사람들은 야속하기만 하다. 그래서…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어쩔 수 없이 현재는

“엄마가 엄마를 이해하고 엄마가 엄마를 이끌어준다.”

전혜진 작가도 같은 걸 느꼈던 것 같다. 결국은 사람이다. 같은 경험을 통해 느낌과 생각을 나누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

 

 

아이를 낳고도 일을 계속하는 사람이 근처에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가 아이를 낳게 되는 용기가 되었다. 그걸 이제야 알았다. 함께 우왕좌왕하며 어쩔 줄 몰라 하던 친구들의 존재만큼이나 몇 걸음 앞서가는 사람들이 있어야 더 힘이 난다는 것을. -P410

 

 

 

 

 

 

<280 : 누가 임신을 아름답다 했던가> 는 시의 적절한 메시지도 가득 담고 있다. 가장 최근에 판결이 난 ‘낙태죄 위헌’ 판결.이 작품은 이에 대한 메시지를 끊임없이 제기한다. 작가의 대변인 격인 재희의 학생 중 한 명이 원치 않는 임신을 했다. 이에 재희는 낙태 방법을 알아주고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다.

어찌 보면 굉장히 민감한 사안이다. 나도 낙태죄 위헌 판결이 났을 당시,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키워본 10년차 엄마로써, 그리고 끊이지 않고 뉴스를 장식하는 영아살인, 영아시신유기 범죄들을 보면서, 엄마가 된다는 것이 그만큼 어려우므로 절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낳아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 강해지고 있다.

 

 

내가 아기를 낳는 거랑 이 문제는 다른 거야. 이건 자기 결정권에 대한 문제라고. 여자 몸이 인구 대책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것이라는 뜻이니까, 잘 됐다. 정말 잘 됐어.

 

그 애가 살 세상이, 어쩌면 아주 조금 더 나아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며, 아주 오래된 싸움이 결국 여기까지 왔다고 말해야 옳겠지만 그 길에는 한 방울 한 방울, 사람들의 눈물과 노력과고백들이 쌓여 왔다는 것을 재희는 알았다.  - P406

그것을 정면으로 주장하는 전혜진 작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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