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무진의 서재
  • 딸에 대하여
  • 김혜진
  • 12,600원 (10%700)
  • 2017-09-15
  • : 17,762
+ 페미니즘 소설에 대한 이해와 해석에 있어 나 자신이 실망스러울 정도로 갇혀 있음을 느낀다. 책 자체는 읽기 수월했지만 나의 사고의 한계와 비이해로 인해 답답하다. 좀 더 깊이 있고 처음과 끝이 하나로 묶여 그 안에 뭉큰한 어떤 것이 담기는 독서를 하고 싶다.

소설의 화자인 어머니는 나이드는 것, 늙어버리는 것에 대해 경험해가는 동시에 요양보호사로서 죽음을 최전방에서 주시하는 체험을 통해 젊음의 건강과 아름다움, 즐거움과 활기를 잃어버리는 자신에 대한 불쾌감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그는 남편의 죽음 이후 끝없는 노동 속에서 딸을 키워내는 인생을 산(여전히 살고 있는) 인물이며
중년 무렵의 자신을 바라보는 타자에 대한 상상으로 인해 불안 속에 움츠러 들고 있다.
˝ 끝이 없는 노동. 아무도 날 이런 고된 노동에서 구해 줄 수 없구나 하는 깨달음.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 그러니까 내가 염려하는 건 언제나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어떤 식으로든 살아 있는 동안엔 끝나지 않는 이런 막막함을 견뎌 내야 한다. 나는 이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 버렸다. 어쩌면 이건 늙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 시대의 문제일지도 모르지. 이 시대 지금의 세대. 생각은 자연스럽게 딸애에게로 옮겨 간다. 딸애는 서른 중반에. 나는 예순이 넘어 지금, 여기에 도착했다. 그리고 딸애가 도달할. 결국 나는 가닿지 못할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아무래도 지금보다는 나을까. 아니, 지금보다 더 팍팍할까.˝

이로 인해 자신의 딸만큼은 누구나 인정할만한 가치들을 취하고 그런 부류에 속하기를 원하고 원하지만, 정작 딸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아프리카로 봉사를 떠나고 집을 나가는 등 애초부터 부모의 소망과는 다른 행보를 택한다.
이러한 감정은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에게 투영하는 기대이자 감히 비판할 수 없는 욕망일테다.
˝...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다수라는 게 위로가 되진 않는다. 오히려 내 딸이 그런 부류에 속해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매일 충격적이고 놀랍다. 그래서 매번 똑같은 강도의 실망감과 죄책감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딸애는 공부를 지나치게 많이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불필요한 공부를 내가 너무 많이 시킨 걸지도 모른다. 배우고 배우다가 배울 필요가 없는 것, 배우지 말아야 할 것까지 배워 버린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자신의 앞에서 쓸쓸히 죽어가는 젠을 보며 동정하면서도 자신 그리고 딸만큼은 그와 같이 되지 않기 위해 (그렇게 될 것 같은 공포감에) 딸을 야단치고 재촉해보지만 딸이 이미 자신과 독립된 인격체임을 알고 있다. 결혼하지 않았고 자녀가 없어 아무도 자신을 찾아주지 않는 가운데 죽음을 앞둔 젠의 삶에 의문을 품으면서도 매순간 그를 정성껏 돌본다.

이미 죽어버린 남편, 유일하게 남겨진 그리고 하나뿐이었던 그러나 독립해버린 딸, 이 속에서 홀로 남겨져 고통스러운 노동으로 삶을 유지하고 있는 화자는 이미 자신의 경우 해체되어 버린지 오래인 가족의 의미에 집착하는데, 부모로서의 간섭과 개입을 최소화하는 독립적인 부모이면서도 관습적인 부모 역할에서는 철저하며 딸의 연인이자 타자보다 긴밀한 외부인에게 가족이라는 높다란 벽을 세우고 날카롭게 배척한다. 그러나 자신이 돌보는 환자인 젠이 남이나 마찬가지인 아이에게 매달 돈을 후원했던 삶을 어렴풋이 유추해보고 때론 좇으며,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는 일에 부당하다며 힘을 보태고 시위를 이어나가는 딸의 모습을 보며, 자기 먹고 살아가기 위해 일하기도 바쁜 이 사회 안에서 타자를 인정하고 연대하는 사람들을 통해 자신이 억척같이 유지하고 지켰으며 물려주려는 이상적인 가정의 모형을 조금씩 허물어 가고 이해하게 된다. 결국 굳이 베풀지 않아도 될 관용과 아량을 무관한 인물인 젠에게 베풀며 주변 보호사들과는 달리 정직하고 더욱 정성스럽게 때론 과분하게 젠을 돌보는 화자는 피를 나눈 직계가족만이 부양할 수 있는 그 노인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와 죽기까지 보살피며 딸과 그 연인을 받아들인다. ‘가족만이‘로 시작해 ‘가족이든 아니든‘으로 변화하는 화자의 태도는 절절하고 눈물겨운 우리 어머니 세대의 이야기이며 기성세대가 피를 쏟는 고통을 거치며 이른 고뇌의 과정이었다.

젊은 날의 열정과 정의를 향한 노력이 훗날 허비라는 단어로 평가되며 초라하고 볼품없는 생의 마무리만이 남을까봐,
아무도 찾지 않는 고독 속에서 늙다가 죽을까봐, 비주류와 비정상의 말들로 규정되는 딸이 모두 자신의 잘못이자 책임이라고 자책하던 그는 자신이 멸시하고 무관심했던 문제들에 딸과 함께 한가운데에 서게 되면서 그들의 삶의 자리와 무너지지도 쓰러지지도 않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지금도 간혹 듣곤 하는 말들이지만, 내가 만약 젊은 날을 타인과 사회, 그런 거창한 것들에 낭비하고 모든 걸 소진하다가 삶이 저물어 가는 것을 혼자 바라봐야 하면 어떡할까. 그러다 보면 결혼도, 아이도 갖지 못할 수도 있겠다. 남들이 보면 아무 것도 없이 혼자가 되어 버린 존재일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러한 두려움 또한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순조롭고 수월한 일상을 선택하지 않음에 견뎌야 하는 투쟁과 인내의 일상이다.

저자는 늙음과 죽음에 대해 첫장부터 마지막장까지 끈질기고 치열한 문장들을 나열하며 이미 축적된 시간과 경험으로 인해 굳어져 버린 기성 세대가 적의와 혐오, 멸시와 폭력, 분노와 무자비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젊은 들을 이해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끝없이 마주하지만 아무런 대안도, 방법도 없는 진이 빠지는 일이라고 말한다.
˝언젠가부터 나는 뭔가를 바꿀 수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천천히 시간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뭐든 무리하게 바꾸려면 너무나 큰 수고로움을 각오해야 한다. 그런 걸 각오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거의 없다. 좋든 나쁘든. 모든 게 내 것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내가 선택했으므로 내 것이 된 것들. 그것들이 지금의 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닫는다. 과거나 미래 같은, 지금 있지도 않은 것들에 고개를 빼고 두리번거리는 동안 허비하는 시간이 얼마나 아까운지. 그런 후회는 언제나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들의 몫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딸의 시위에 과일과 시원한 물 한병을 건네주고, 자신이 치부로가 여겼던 가정사를 이웃에게 대답하고, 젠을 돌보기 위해 딸의 연인과 협력하는 궁색과 초라함을 겪어 내며 결국에는 온전한 이해에 이루지 못하더라도 연대하며 지난한 삶의 여정을 함께 견디어 내는 어머니의 본성이 우리 안에 더욱 필요하다고 하는 게 아닐까. 수많은 ‘여성‘들 안에서 말이다.

˝이런 순간 삶이라는 게 얼마나 혹독한지 비로소 알 것 같다. 하나의 산을 넘으면 또 하나의 산이 나타나고 또 다음 산이 나타나고. 어떤 기대감에 산을 넘고 마침내는 체녀하면서 산을 넘고. 그럼에도삶은 결코 너그러워 지는 법이 없다. 관용이나 아량을 기대할 수 없는 상대 그러니까 결국은 지게 될 싸움. 져야만 끝이 나는 싸움.˝

˝손을 뻗으면 언제나 닿을 수 있는 거리. 그러나 나는 이 애들이 나로부터 얼마나 먼 곳에 어떤 모습으로, 어디를 딛고 서 있는지 알지 못했던 게 틀림없다. 그리고 이제 모든 것이 뚜렷해진다. 이 애들은 삶 한가운데에 있다. 환상도 꿈도 아닌 단단한 땅에 발을 딛고 서 있다. 내가 그런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이 애들은 무시무시하고 혹독한 삶 한가운데에 살아 있다. 그곳에 서서 이 애들이 무엇을 보는지, 보려고 하는지, 보게 될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했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나는 간신히 삼킨다. 내 잘못이 아니지. 너의 잘못이 아니지.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 그렇게 말한다면 세상의 수많은 피해자들은 어디서 어떻게 누구에게 사과를 받아야 할까. 이렇게 생각하는 나도 예외가 아니다.˝있는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