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스로 아이들의 책을 꽤 까다롭게 고르는 엄마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 왔다. 아이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하루 세 끼의 음식 만큼이나 아이들의 머리로 들어가는 책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이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되도록이면 신중하게 책을 고르는 편이었다.
그런 내가 아이에게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인 것 같다. 우리 아이도 여느 초등학생이나 마찬가지로 '만화책'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상황이 되면서, 그동안 '양서'만을 아이에게 제공해 왔다고 자부했던 내 자존심(?)도 산산이 무너진 것이다. "만화책만 읽는 것은 편식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아무리 외쳐대도, 아이는 시답잖은(아니, 어떤 책은 유해하기까지 보이는) 만화책에서 헤어날 줄 모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무조건 아이에게 만화책을 보지 말라고 할 수만은 없기에, 내가 택한 차선책은 '좋은 만화책'을 골라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이가 자연스럽게 기다리는 좋은 월간잡지를 아이 이름으로 구독하여, 책을 기다리는 기쁨을 알게 해주려고 했다.
그렇게 해서 고른 잡지는 <개똥이네 놀이터>이다. <개똥이네 놀이터>를 펴내는 출판사가 마음에 드는 이유 중의 가장 큰 것은 문장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잘 살려서 쓰기 때문이다. 거기에 연재되던 <토끼밥상>이 단행본으로 출간되었을 때, 나는 정말 기뻤다. 이런 종류의 책만 나온다면 굳이 아이와 싸우지 않고도 '좋은 만화책'을 사줄 수 있을 텐데,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아이는 <토끼밥상>을 손에 들자마자 단숨에 읽어내렸다. 그러고 저녁준비를 하는 내게 와서는 들깨죽이니, 잔치국수니 그런 따위를 이제는 자기도 할 수 있겠다며 으쓱거린다. 잡지가 오면 나도 틈틈이 봤기 때문에 <토끼밥상>은 나에게 낯설지 않았다. 그리고 세시 절기나 자연 달력에 맞춰 구성한 내용은 아이뿐 아니라 나에게도 도움이 되고 있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서 쓴 책이지만 제철의 음식을 살려서 만드는 요리는 아이와 나를 모두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다음 주에는 아이의 학교에 급식당번을 하러 가야 한다. 급식당번을 하다 보면 소시지, 돈까스 따위가 아니면 손도 대지 않고 오는 아이들, 생선 가시 바르기가 귀찮다며 그대로 쓰레기통에 집어넣는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 아이들에게 <토끼밥상> 한 권은 아이들의 식습관을 바로잡는 데도 큰 도움을 줄 것 같다. 그리고 나처럼 아이에게 어떤 '좋은 만화책'을 고를까를 고민하고 있는 엄마들에게는 자신있게 아이 앞에 내놓을 수 있는 책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