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일찍이 상자 정원이라는 세계가 만들어졌습니다. 천사를 정점으로 해서 흡혈귀, 악마, 수인, 인간이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우러져 살아간다 하여 모두 사이가 좋은 건 아닙니다. 오만한 귀족 같은 천사, 고고한 흡혈귀, 간사한 악마, 눈치 보는 수인, 불가촉천민 인간, 그리고 이 세계를 만든 여왕과 그 일족. 이 세계에는 전승이 하나 전해져 내려져 옵니다. 다섯 종족은 1천 년에 한 번 세상을 만든 여왕에게 공물을 바칠 것, 그리고 선택될 것. 그러면 그 종족은 살아 남고, 다른 네 종족은 멸망하리라. 본 작품의 여주 '엘'은 여왕의 발자취를 쫓습니다. 상자 정원이라는 이 세상의 진실을 알기 위해서요. 전승이 진짜인지도 알아봐야 하고. 하지만 가는 길은 만만찮습니다. 일단 여왕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고,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조차. 게다가 지금은 질서를 지키고 있지만 다섯 종족이 어우러 가는 세상이 잘 돌아갈 리도 없습니다. 여러 사건이 터지고, 사람들이 죽어 나가죠. 이번 5권에서는 흡혈귀 사냥꾼에 의해 흡혈귀들이 사냥 당하고 급기야 '엘'의 지인인 흡혈귀 '노아'도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이번 2권은 흡혈귀 공주 '노아'의 이야기입니다. 흡혈귀의 정점에 서 있죠. 언제부터 살아왔는지 모를 나이지만 외모는 어린 소녀입니다. 엘과는 지인 관계지만 친구는 아닙니다. 1권에서 어떤 사건을 해결할 때 노아의 힘을 빌린 엘은 큰 빚을 지고 말았죠, 그래서 이번 2권에서는 빚을 갚기 위해 사냥꾼에 의한 흡혈귀 사냥이라는 사건을 해결해야만 합니다. 안 하면 죽어요. 그런 계약을 맺었죠. 다시금 버디를 맺은 이브와 사건을 쫓습니다. 쫓습니다만, 사냥꾼이 너무나 강합니다. 알고 봤더니 암흑시대 때 흡혈귀 사냥에 최전선에 섰었고, 흡혈귀의 정점 '노아'와 1:1 대결에서 발라버린 역사를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이거 완전 장난 아닙니다. 어중이떠중이 흡혈귀는 상대도 안 되고, 노아마저 위기에 빠져 버리죠. 당연히 엘과 이브도 뼈와 살이 분리됩니다. 참고로 흡혈귀는 죽어도 되살아 날 수 있습니다. 물론 무조건은 아니고요. 노아도 되살아 났지만 전성기 때의 힘을 쓰지 못하게 되었죠. 그래서 도망 다녀야 합니다. 시종일관 도망 다닙니다. 어떻게 어떻게 사냥꾼을 궁지에 몰아넣어도 너무 하다 싶을 정도로 그는 죽지 않습니다.
그런데 암흑시대가 언제 적 이야기인데 이제 와 부활해서 흡혈귀 사냥을 해대는 걸까. 그때 흡혈귀의 정점 노아를 없애면서 흡혈귀 사냥이라는 사냥꾼의 일은 끝이 났건만. 그래서 뒤를 캡니다. 사냥꾼은 좋아서 부활한 게 아니었습니다. 흑막이 있었죠. 이 흑막의 목적이 본 작품의 굵은 핵심이 될 듯하더군요. 일단은 이 세계를 만든 여왕과 연관이 되어 있고, 그 첫 단서로 노아가 선택되었습니다. 근데 노아가 왜? 그래서 더 파봤습니다. 파보니 노아가 기르던 애완동물이 나왔습니다. 정서 불안을 안 고 사는 가련한 히로인이었죠. 이 애완동물은 노아에게 구해지기 전까지 기구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애완동물은 노아에게 없어선 안 될 인물이 되었죠. 애완동물도 노아 없는 세상은 생각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번 2권은 그런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둘은 서로 결사적으로 서로를 지키려 하죠. 하지만 중과부적. 엘과 이브가 합세해도, 모든 흡혈귀가 모여도 사냥꾼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수세에 몰리면서 노아는 과거를 회상합니다. 모든 힘을 발산하여 처절하게 싸웠던 일. 사냥꾼은 그걸 잊어버린 걸까. 서로 긍지를 걸고 싸웠던 일. 이게 키포인트가 됩니다.
맺으며: 1권은 인간관계에서 풋풋함이 익어가는 시간이었다면, 2권은 완성된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같은 이불에서 자고, 같이 일어나고, 같이 밥을 먹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고, 작은 것에 기뻐하고, 웃고, 상대가 아프면 걱정하고, 사건을 해결하며 서로의 등을 맡기는 이야기. 어느덧 소중하고 소중한 사람이 되어 이 사람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마다하지 않게 된 이야기. 청춘 러브 코미디는 절대 아니며, 백합 또한 아니면서 여자들끼리 꽁냥꽁냥 하는 보고 있으면 가슴 따뜻한, 한편으론 그런 행복한 모습들이 어딘가 처절함이 묻어나는 이야기. 언제 터질지 모르는 종족 간 다툼과 사람이 죽어 나가는 이야기여서 그런가, 이들의 따뜻한 이야기 이면에서 위태위태함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엘과 이브의 이야기. 노아와 애완동물의 이야기. 사람을 애완동물로 표현해서 눈살이 찌푸려질 수 있겠으나 그것이 본질이기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애완동물의 진짜 정체는... 이번 2권에서는 사냥꾼이라는 강적을 만나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도 서로를 챙기고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들은 가슴 아프게도 하였군요. 평소 나사 빠진 듯한 이브가 엘에게서 받은 월급 반을 슬럼가 집 짓는데 다 써버리고 우리 아지트입니다 하는 장면은 웃기면서 짠하게 하였습니다. 이브의 얼굴에 묻은 이물질을 벅벅 닦아주는 엘과 그걸 가만히 받아들이는 이브. 이 작품에는 그런 가슴 짠하게 하면서 웃음을 선사하는 특징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