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급 스포일러, 개인적인 해석 주의
여자다움이란 뭘까? 일본은 여자다움이라는 소양을 기르기 위해 다도회 학원도 있는 등 우리나라같이 양성평등을 주창하는 나라에서 보면 이해되지 않는 문화를 간혹 볼 수가 있죠. 뭐 필자도 평등주의자이긴 한데, 각자에겐 각자의 역할이 있으니까 굳이 똑같아질 필요는 없다는 주의이기도 합니다만. 아무튼 이번 27권은 늘 그렇듯 큰 사건이 있은 후 쉬어가는 에피소드입니다. 몇 가지 옴니버스식으로 진행되는데요. 첫 번째가 티아를 주축으로 한 클란과 나나의 여자다움, 즉 여자력 키우기라는 낯간지러운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여자력 하면 으뜸가는 하루미의 행동 하나하나를 관측하고 자기들 나름대로 지식을 모아 뜨개질도 하고 아크로바틱 같은 희한한 운동도 하지만 사람은 원래 안 하던 짓 하면 무리가 오기 마련이듯 잘 될 리가 없죠. 하루미는 여자력은 높지만 주인공에게 존경을 받고 있어서 다른 히로인처럼 격없이 대해지는 게 소원이라고 합니다만, 애초에 현실적으로 따지면 하루미는 위계질서가 뚜렷한 학교 1년 선배에다 2천 년 전(7.5권, 8.5권 참조) 알라이아 황녀의 환생체인 그녀를 주인공이 격없이 대하는 건 무리가 따르죠. 그래놓으니 강하게 나가지 못하는 게 안타까운 인물이기도 한데요. 아마 완결쯤 가서도 선택받지 못하는 인물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러면 2천 년 전에도 마음을 보답 못 받았는데, 환생하고 나서도 선택받지 못한다면 이보다 불쌍한 히로인은 없을 듯하군요.
두 번째는 시즈카에 영혼 기생 중인 화룡제 아르니아가 온천 달걀에 미쳐 날뛰는 이야기로서 몸무게에 민감한 시즈카가 곤란을 겪는 이야기입니다. 언제부턴가 자기 몸에 깃들었던 아르니아 때문에 몸무게에 변화가 찾아왔고, 아직 모르던 시절에 다이어트한다고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그녀는 먹는 것에 굉장히 민감해 하죠. 이번 에피스도에서는 시즈카, 키리하, 루스가 등장합니다. 온천 달걀 이외에 신사에서 소원 기도를 올리는 것도 있지만 소원이야 뻔한 거고. 세 번째 이야기는 많이 먹기 대회라는 동네 축제에 참가하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는 사나에와 티아, 주인공을 주축으로 해서 모든 등장인물들이 출동해서 누구 위장이 가장 큰가를 겨루는데요. 그냥 일상생활 같은 거라서 패스. 네 번째는 포르트제에서 일어난 쿠데타를 진압하기 위해 몇 달이나 학교에 가지 않아 곤란한 상황에 놓인 이야기입니다. 마법사 협회에서 등장인물들 대역을 내세워 등교는 시켰으나 명색이 정의를 추구하는 마법사 협회로서는 아무리 명분이 있다고 해도 학교를 안 다녀 놓고 다닌 것처럼 하는 건 아닌 거 같아 시험을 치르게 하지만 아무래도 상태가 안 좋은(주로 유리카) 몇 있다 보니 유급 위기가 찾아옵니다. 거기다 주인공과 티아간 경쟁심과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는 통에 왁자지껄해지죠. 티아로서는 편지 한 장만 남겨두고 지구로 돌아가버린 주인공이 못마땅해서 열받은 상태, 클란도 주인공에게 맨날 놀림당하며 곱게 못 죽을 거라 독설을 날리면서도 따라오는 게 흥미롭죠.
맺으며: 이번 27권은 너무 활약하는 것도 독이 된다는 철학 같은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2천 년 전 나라 구한 것만으로도 영웅으로서 대대손손 전설로 내려온 인물이 실존하며 이번엔 행성(포르트제) 전체를 구하는 업적을 이뤘으니 그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는 말로는 부족한 지경에 이르렀죠. 주인공이 아이스크림을 사 먹어도 만든 회사 주가가 오르고, 택시를 탔더니 이 택시는 주인공이 이용한 택시라며 전시가 되는 웃지 못할 상황을 본다면 광기로 여겨지기엔 충분할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열기가 식은 후의 일은 어떻게 될까. 군(軍)을 황제의 의중과 상관없이 단독으로도 움직을 수 있는 권한이 있고, 말 한마디에 경제가 좌지우지된다면? 택시를 탔는데 그 택시가 전시되었다니까요? 혜택을 받는 기업이 있으면 그렇지 못하는 기업도 있을 것이고, 힘으로 인해 쿠데타가 일어났는데 더 큰 힘을 가진 자가 존재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공포를 불러오겠죠. 그래서 주인공인 편지 한 장만 남기고 지구로 돌아가버린 것에서 마왕을 무찌른 용사는 또 다른 마왕이 되기 전에 몸을 숨겨야 된다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거 같아 좀 씁쓸해지기도 했군요. 이런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황제가 되고 히로인들을 부인으로 맞이하는 엔딩은 아무래도 힘들지 않을까 하는 느낌도 들게 했습니다만, 이런 독자들의 마음을 예측한 건지 작가는 그에 따른 작업에 들어가기 시작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