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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대한민국의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과연 교양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보았다. 프롤로그에서 말한 대로, 우리에게 교양이란, 학교에서는 전혀 배울 기회가 없는, 다만 부차적인 지적 욕구의 산물일까.

이 땅의 학생들은 교양을 쌓을 시간이 없다. 학교는 수업 시간이 너무 많고, 학생들은 많은 과목을 편식하지 않고 다 소화내야만 한다. 그러나 전세계의 어떤 나라의 학생들보다 월등히 많은 시간을 공부에 투자하는 우리 학생들이 과연 투자한 시간만큼의 지식을 산출해 내는지는, 이땅에서 교육 시스템을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고등교육이라는 것이 다만 대학을 통과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되고 일단 대학을 가고 나서는 아무 쓸모없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대학에서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대학의 교양과목들은 일찌기 학점을 위한 수업이 된지가 오래이며, 대학교육은 다만 취업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일상생활에서 유용한 수단이 되지 못하는 교양은 부차적인 영역으로 밀려난다.

그러나 사회가 복잡해지고 과학문명이 인간의 삶을 대체해 갈수록, 오히려 한 인간의 고유한 지적능력과 자질은 더욱 중요해진다. 개인의 자질이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고, 나아가 인류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것을, 우리는 오늘날에 더욱 실감하고 있지 않은가.
고등학교때부터 토론을 하고 에세이를 쓰며 질적으로 우수한 독서를 습관화한 프랑스의 논술문제를 보면, 우리와의 수준이 현저히 차이가 나는 것을 사실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앞에서 지적한 대로 우리의 오랜 중고등 교육 시스템의 고질적인 비효율성과 자생적인 개선의 결여에 우선하겠지만, 대학교육에서도 여전히 타율적이고 근시안적인 학생들 자신의 책임도 크다고 생각한다. 물론, 학생이 아닌 우리 성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이 책은 인간, 인문학, 예술, 과학, 정치와 권리, 윤리- 총 6장으로 나뉘어 있으며 각 장에는 바칼로레아에 출제되었던 문제들과 뽑힌 답변으로 이루어져있다. 질문들은 각 분야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보편적인 내용들이며, 그러하기에 답변이 난해하고 어려울 것이다. 스스로 왕성한 학문적 욕구를 가지고 평소에 꾸준히 독서를 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도저히 답을 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결국 일상생활에 체득화된 교양이 아니고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소리다. 자신의 삶과 지식을 이분화시켜 놓는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문제들이 과연 어떤 가치를 지니는가. 우리의 일상과 지식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공존하는 것이며 삶과 유리된 지식은 그 어떤 가치도 없다는 것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혹자는 이런 책에서 교양의 정답을 바랄지도 모르겠으나, 그것이야 말로 우리의 오랜 타성, 남이 떠먹여 주는 밥상처럼 지식을 받아먹기만 하는 행위의 반복이다. 이 책은 교양문제와 그에 걸맞는 훌륭한 답변을 실었을 뿐이지, 그것이 절대불변의 정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교양의 정답이 있다고 믿는 우리는 그래서 지식을 내면화 시키는데 항상 어려움을 겪는다. 교과서의 지식이 항상 답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달달 외우는 식의 지식이 과연 진정 우리의 것이 될 수 있었는지 상기해보자.

지식이란 자신의 자발적이며 생산적인 사고가 없이는 결코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 남의 것을 그저 읽는다고 해서 내가 그것을 모조리 내 것으로 만들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많은 책을 폭식하듯 읽어대도 자신의 사고와 언어로 되새김질하지 않는다면 그저 눈으로만 스쳐지나간 글자들일 뿐이다.

바칼로레아의 질문과 답변들을 통해서, 과연 나의 생각은 어떠할지 한번 써보는 것도 좋겠다. 자신의 것이 되지 않은 지식은 글이나 말로 쓸 수 없는 법이다. 그러한 에세이를 통해서 우리의 독서는 방향성을 가질 것이고 교양은 보다 내실을 기할 것이다. 자신이 밥상을 차려봐야 부족한 것과 넘치는 것을 알듯이, 교양도 자신이 직접 차리는 식탁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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