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별아저씨 2003/05/28 03:36
별아저씨님을
차단하시겠습니까?
차단하면 사용자의 모든 글을
볼 수 없습니다.
직장생활 2년차의 친구들은 말한다, 돈때문에 하는 일이지만 너무 답답하고 힘들어 지고 있다고. 결혼을 한 선배들은 말한다, 이제 처자식 때문에 직장을 때려 치우지도 못한다고. 청년 실업자인 친구들도 말한다, 대학 나오고도 오라는데가 없다고. 아직 학생인 나는, 어떤 비전도 없이 아직도 공부만 하고 있는 내 신세를 한탄한다. 술자리에서 우리들은 서로의 신세가 가장 막막하다고, 자신이 제일 힘들다고 경쟁이나 하듯 앞다투어 말한다.
언제 부터 였을까. 우리가 우리의 일상을, 참으로 변변찮은 것으로 평가절하하기 시작한 것이.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직장을 선택하고, 나이가 차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놓고,, 우리는 무심하게 자신의 일상을 확대해 나간다. 그리고 어느날 무심하게 펼쳐놓은 일상이 자신보다 더 비대해진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우리는 일상을 다만 부인하며 벗어나려고만 한다.
이면우 시인은 열일곱 처음 손공구를 들어쥐었다.스물 일곱, 서른 일곱, 속맘으로 수없이 내팽개치며 손공구와 함께 떠돌다 마흔 일곱에야 겨우 짐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아주 오래 움켜쥐고 있으면 쇠도 손바닥처럼 따스해지고야 마는'(손공구, 57p). 것을. 계약직 보일러공의 팍팍한 현실, 그리고 아이와 아내, 한 가장으로서 그는 '자기 안에 생의 북쪽을 지니고 간다'(생의 북쪽, 53p). 그러나 그는 자신의 그 막막한 일상속에서 ' 삶은 눈두덩이 따뜻해질 만큼 곰곰 달다' (붉은 고구마, 40p)는 것을 발견하기도 하고, ' 보일러 스위치 넣고 삼십분 뒤 책 겉장 갈아댄 박용래 시선집'( 쓸쓸한 길, 60p) 을 펼쳐 어둔밤을 견디며, '바람이 분다 다시 살아야 겠다' (이천년 숲, 73p) 라고 스스로 되뇌인다.
내가 그 어떤 시인보다 이면우 시인을 좋아하는 것은, 그는 다만 일상을 견뎌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힘껏 마주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생의 굴레를 우리는 다만 벗어나거나 짐짓 잊어버리는 척 피하려고만 했었다.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란 그 얼마나 혹독한 체험인가. 그러나 이면우 시인은 정직하다. 삶을 힘껏 마주안는 것에는, 딱 자신의 일상만큼의 용기와 체험이 있으면 된다는 것을 그의 시는 말하고 있다. 거창한 철학과 거대한 담론 따위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정직하게, 적극적으로 일상을 견뎌내는 것, 그것이 자신의 생을 살아가게 한다.
'고맙다 저 불길, 참 오래 날 먹여 살렸다 밥, 돼지고기, 공납금이
다 저기서 나왔다.....나는 불길에게 일찍 붉은 마음을 들어 바쳤다,,,,,나는 나지막이 말을 건넨다 그래 지금처럼 나와 가족을 지켜다오
때가 되면 육신을 들어 네게 바치겠다' (화엄 경배, 85p)
그에게 보일러공이라는 한평생 동안의 일상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어떤 일상이 있는가. 각자에게 어떤 모양의 일상이든 우리에게 중요한 한가지는, '삶에 지치지 않은 우리가 꾸준히 살아가는 것'(우리는 꾸준히 살아갈 것이다, 74p) 뿐일지도 모른다.
PC버전에서 작성한 글은 PC에서만 수정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