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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이성복의 시를 잊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팍팍하기 그지 없는 생활에 나역시도 건조해져 가면서 오래 잊어두고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이성복의 시를 대했을 때, 그의 시는 남해금산의 그것처럼 예민하고 몽환적이며 지극히 수려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이성복의 시에 도취하면서 함께 나자신도 스스로의 사춘기적인 감성에 심취하지 않았었던가.

오랜만에 다시 이성복의 책으로 돌아와서, 이번에는 그의 아포리즘을 읽어본다. 그의 아포리즘은 자신의 시작 행위에 대한 고찰이며, 시가 아우르고 있는 생의 고통과 기억, 뒤틀리는 애증과 불행한 관념, 이 모든 것은 다시 일상과 그 순간의 나 자신에게로 되돌아 온다.

이성복의 글은 언제나처럼 여전히 생명력을 가지고 오히려 서슬 퍼렇게 싱싱하다. 그것은 아마 그 자신이, 자신을 생에 노출시키고 허용하며 적극적으로 힘껏 마주 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대한 상상력과 관념들로 생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온몸으로 감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선악 속에 나를 허용한다. 나는 생의 물결속에 흘러왔으니, 생을 거스르지는 않겠다. 생의 동물성을 최대한 긍정하고, 신화나 사상에 온몸을 내거는 투기는 하지 않겠다. 그것들은 이제 내 몸을 통해 생성되어야 할 것들이다. -이성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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