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변하는 실재 보다는 생성을 중시했으며 그에 따라 형이상학적 실체 보다는 생성하는 이 지상의 현실을 긍정하기 위해 분투한다. 니체는 지상의 세계 보다 천상의 세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리스도교를 공격했으며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플라톤의 이원론을 지독하게 붙잡고 흔들어댄다.
도덕의 계보
형이상학의 죽음에 대한 은유로서 신의 죽음. 그에 따른 유럽의 허무주의의 극복을 위해 치열하게 사유한다. 그의 사유방식은 프로이트가 의식의 밑에 깔려 있는 '무의식'을 탐구하는 것처럼 도덕아래에서 어떤 '의지'를 읽어내기 위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가령 권력의지를 버리려는 금욕주의자 마저도 그 아래에 의지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다.
삶의 권력을 추구하면서도 이러한 생각을 스스로 부정하고 고귀하고 고결한 무언가를 추구하는 척하는 위선적이고 허위적인 태도를 드러내어 폭로하는 것이다. 니체의 글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그는 우리가 드러내고 싶지 않은 감추어진 모습을 굳이 벗겨버리고서 비판한다. 도덕의 기원과 맨얼굴을 정면으로 보라는 듯이 말이다.
그리하여 그는 공동윤리보다는 개인윤리를 이야기 한다. 여기서 그에게 주인의 도덕이라는 귀족적 혹은 엘리트적 윤리학을 떠올리게 한다. 반면 "신 개념을 토대로 인간에게 죄 개념을 부여하고, 신에 의한 죄의 심판과 최종적인 심판의 장소인 천국을 고안해내며, 그 목적을 위해 영혼불멸을 상정하고 선악이 확정되어 있다는 것에 대한 양심을 고안해낸다." 니체는 이러한 그리스도교의 도덕을 노예도덕이라고 비판한다.
니체의 그리스도교의 도덕적 비판은 어느정도 진실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어 보인다. 그리스도교의 도덕은 스스로 도덕률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통해 그저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니 대뜸 플라톤의 책이 읽고 싶어진다. 플라톤이 그렇게까지 잘못했는가. 니체의 비판은 심히 잔인할 정도로 비난에 가깝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