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너무 형이싱학적이야."
한 때는 너무나 장황하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했을 때 자주 듣게 되는 말이었다. 형이상학적이라는 말은 일상생활에서 그리 좋은 말은 아니다. 형이상학이 언제부터 이런 신세가 된 것일까? 일상에서는 이렇게 부정적인 옷을 뒤집어 쓰고 있지만 형이상학은 철학의 시작과 함께 해 왔다. 인간이 신화시대에서 로고스시대로 진입한 이후 철학의 중심은 항상 형이상학이였다. 다시말해 철학은 형이상학이고 형이상학은 바로 철학이었다.
"세게는 무엇으로 이루어졌을까?" "무수한 존재들의 밑에 깔려 있는 근본 원리는 무엇일까?" "신, 그리고 삶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일까?"등등 뜬구름 잡는 것 같고 답도 안나오는 질문이지만 한번 쯤 심각하게 생각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바닥에서 날고 긴 선수들의 사유를 따라가 보기 위해 서점에서 철학사책을 펼쳐보자. 인간의 사유를 지배해온 장구한 사상의 역사가 드라마를 연출할 것이다.
현대에 들어와서 철학의 신세는 리어왕과 같아서 이제 철학만의 고유한 부분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또한 현대철학은 형이상학의 해체가 그 중심에 있다고 말할 정도로 만신창이가 된 지 오래됐다. 과연 형이상학은 이제 사상사의 무덤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일까?
아무리 형이상학의 해체를 논한다고 하더라도 형이상학은 살아남을 것이라고 믿는다. 인간은 자기 삶의 이유와 목적에 대한 궁금증에서 살아있는 한 멈출 수 없으며 세계에 대한 궁금증 또한 그만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의 종 적인 특성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의미와 목적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항상 세계에 대해 생각하고 질문하며 세계 속에 자신을 재정립하려고 노력한다면 그 순간 형이상학적 사유에 뛰어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인간의 실존적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