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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속 지느러미
- 조예은
- 13,500원 (10%↓
750) - 2024-05-30
: 6,850
‘지느러미’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듯, 무더운 여름과 어울리는 물비린내 가득한 소설이다. 선형은 죽은 삼촌의 지하실에서 인어 ‘피니’를 마주하게 된다. 피니의 매혹적인 노래를 한번 들은 이상, 다시는 듣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었다. 그렇게 지하실에서 꼼짝도 않고 피니의 노래만 들으며 선형은 점점 피폐해져간다.
”별안간 깨달았다. 피니의 노래를 듣기 전의 자신과 들은 후의 자신은 완전히 다르다. 한번 미지의 영역을 맛본 고막은 계속 인어의 노래를 원할 것이다. 지하실의 두 번째 문을 밀었다. 그 너머에 심해가 있었다.“
어릴 적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세이렌’이 등장하는 부분을 재밌게 봤던 기억이 있는데, 그와 비슷한 소재여서 초반부터 흥미로웠다✨ (작중 선형이 직접 세이렌을 언급하기도 한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입속 지느러미》의 피니는 인간에게 적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조예은 월드의 다양한 소재들이 특히 매력적인 이유는 ‘악의’가 없어서다. 분명 위험한 존재는 맞지만 그보다 더 위협적인 건 ‘인간’이다. 어딘가 불쾌하고 찝찝한 기분의 원인은 늘 인간에게 있었다. 선형의 삶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것 또한 ‘장마철이 되면 식성이 바뀌는 인어’가 아니라 ‘누구보다 가깝다고 생각했던 연인’이었다.
초판 한정 부록인 <터닝북>에서 더 자세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읽을 수 있었는데, 작가님이 환상 서사를 애용하는 까닭은 ‘겁이 너무 많아서’라고 한다.
“있는 그대로를 표현한 현실은 너무 잔혹할 때가 대부분이고, 겁이 많은 나는 그로부터 약간의 거리를 두고 싶다. (…) 하지만 그 안쪽 역시 결국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반영한 세계로, 현실에서 완벽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나 또한 현실의 두려움을 잊기 위해서 종종 크리처물을 찾았던 것 같다. 이해관계를 따질 필요 없이 단순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서 보고 나면 오히려 머릿속이 맑아질 때도 있다(?) 고민을 까맣게 잊어버리기도 하고!
”디스토피아적인 현실과 비교하면 조예은이 만들어낸 비현실적인 세계가 오히려 현실보다 더 나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주인공이 처한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잠시나마 숨 쉴 틈을 만들어주는 건 비현실적인 존재들이다.“
선형은 피니를 만나 열정을 되찾았고 세상에 맞설 용기를 얻었으며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었다. 우리가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인어가 될 순 없으니.. 서로에게 피니 같은 존재가 되어주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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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익숙함의 범주를 벗어난 아름다움은 두려움을 자아내는 법. 과연 이런 존재를 맞닥뜨려도 될까, 이 만남이 예측 불가한 우주적 재앙의 징조는 아닐까 싶었다. 일상에서 비일상의 영역으로 넘어갈 자신이 없었다. (p.44)
📖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을 계속 계속 생각하다 보면 이해에 도달하는 게 아니라 다 상관없어져. 이해하려는 모든 노력이 무의미해지지. 어차피 끝내 알 수 없을 테니까. 나 아닌 모든 존재는 결국 미지의 영역이니까. 그 지점에 이르러서야 깨닫는 거야. 어차피 이해하지 못할 사람을 왜 계속 생각할까?" (p.143)
📖 나에게 환상이란 날고기에 하는 시즈닝, 샐러드에 두르는 드레싱, 어패류에 뿌리는 레몬즙 같은 것이다. 재료 본연의 풍미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보다 매끄럽게 목구멍을 넘어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 (터닝북 p.10)
📖 제아무리 나를 둘러싼 세상이 디스토피아이더라도 조예은의 인물들은 묵묵히 앞으로 나아간다. 자신에게 절실한 단 하나의 선택지를 찾아 종국엔 원하는 곳에 도착한다. 설령 나를 다치게 할 수 있는 장애물이 나타나도 끝까지 해낸다. (터닝북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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