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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병에 걸린, 평범한 소녀의 이야기’라는 수식어를 달고, 척추소뇌변성증이라는 희귀병에 걸린 소녀의 투병 생활을 고스란히 담아낸 ‘1리터의 눈물’이 출시되었다. ‘1리터의 눈물’은 주인공이자 저자인 아야가 병에 걸려 장애인이 되고, 몸이 점점 쇠약해져 감을 느끼며 마침내는 그 굳어진 몸이 아야의 생각을 잠식할 때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저자인 키토 아야가 15살에 척추소뇌변성증이라는 병에 걸리게 된 걸 알게 되면서부터, 몇 년 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글씨를 쓸 수 없을 만큼 몸이 악화되는 동안에 직접 써내려간 46권의 일기를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야는 일기에 어느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자신만의 생각, 병이 진행되는 과정과 그에 따른 몸의 상태,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느낌이나 감정을 솔직하게 적고 있다. 큰 병을 겪은 경험이나 그 기록을 책으로 출간한 사례는 이전에도 많았지만, ‘1리터의 눈물’은 다른 책과는 약간 다르게 구성되어 있고, 그로 인한 색다른 감정을 안겨준다. 일기 형식으로 구성된 이 책은 편집자의 배려로 아야가 그린 간단한 낙서나 그림, 직접 쓴 글씨도 중간에 섞여 있어 다른 이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며, 뒤로 갈수록 점점 흐트러져 알아볼 수조차 없게 되는 아야의 필체를 보면서 병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를 쉽게 짐작할 수도 있다.

이 책에서 아야는 자기 나이 또래가 하는 평범한 고민에서부터 자신이 처한 극한 상황에 대하여 가지는 불안, 고통, 초조함의 감정까지 모두 아우르고 있다. 아야는 남에게 지기 싫어하며, 유난히 감수성이 풍부하며 밝고 명랑하여 묘하게 귀여운 구석이 있는 아이지만, 병에 걸린 후부터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생각을 하기도 하고, 참담한 심정을 토로하며 고통스러워하기도 한다. 아야는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재활 훈련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기도 하고, 자신에게 주먹밥을 준 아저씨나 동화책을 함께 읽은 아이에게, 비록 주변 사람들의 작은 친절이나 행복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흔히 우리는 일기에 남들에겐 말하지 않는 누군가에 대한 감정을 읊기도 하는데, 아야 또한 주위 사람들의 장단점을 나열하며 이건 좋고, 이건 싫고 하는 시시콜콜한 것들을 따지기도 하며, 자신의 감정이나 의사를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섭섭함을 토로하고 격분하기도 한다. 또한 아야는 힘든 투병생활 속에서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즐거운 일들을 해보려 노력한다. 비교적 얌전한 성격 덕분에 사고를 친 적이 없었던 아야는 문득 자신이 해보지 못한 것들에 애착을 느껴 비록 잠깐이지만 일탈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아야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며, 때론 극복해나가는 방법을 배워나간다.

우리가 흔히 일기에 자기만의 삶의 원칙이나 모토 등을 자꾸 되새기면서 마음을 다잡듯이, 아야는 일기라는 매개물로 삶에 대한 소신, 원칙을 세우고 하루하루를 반성한다. 아야는 비록 어린 나이지만 최악의 상황에 굴복하여 남은 나날들을 포기하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처음 자신이 병에 걸린 것을 알았을 때의 아야는 ‘이 병은 왜 나를 선택한 걸까. 운명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라고 적고 있고 때론 너무 힘들어 눈물도 흘리지만 결코 자신을 둘러싸는 온갖 방해 요소들이 자신을 침범하도록 호락호락하게 두지 않는다. 아야가 그렇게 열심히 살다 갔기 때문에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다. 절망적이라면 절망적인, 모든 것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생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아야를 통해 삶은 결코 자신이 놓아버린다고 순순히 놓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야가 가족과 친구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때는 가슴이 뭉클해지기까지 한다. 무엇보다 아야를 사랑으로 돌보고 힘들 때마다 위로와 질책으로 아야를 일으켜 준 어머니의 존재가 매우 크게 다가온다. 아야를 돌보는 수고스러움과 가족을 돌보는 일, 정신적인 고통까지 모두 이겨내면서 아야가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아야의 행복을 빌어준다. 가끔 특유의 유머로 아야를 깔깔거리고 웃게 만드는 어머니는 아픈 딸을 단단히 받쳐주면서도,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나약한 존재가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그리고 아야의 치료에 온 힘을 다한 주치의 히로코 선생님의 존재도 마찬가지로, ‘1리터의 눈물’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대한 소중한 감정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답게 피어난 풀꽃의 융단 위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잠자듯이 죽으면 좋겠다’는 아야의 말처럼, 비록 짧았지만 찬란하게 빛나는 아야의 흔적은 자신을 누르는 혹독한 시련과 삶이 버겁기만 한 우리들에게 큰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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