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새벽아침, 봉화산 산길을 한걸음 한걸음 오르는 그의 무거운 발걸음을 푸르러가던 새벽의 나무들은 지켜보고 있었을까? 세상의 마지막 길을 오르고 있던 그의 한없이 외롭고 쓸쓸했던 눈매를 지나가던 산새들은 보았을까? 부엉이바위 위에 서서 태어나 자랐던 마을을 내려다 보던 그 찰나의 순간 - 주마등처럼 떠오르는 삶의 구비구비들은 얼마나 깊은 회한으로 그의 가슴을 파고 들었을까? 한모금의 담배가 필요했으리라. 아무리 결기있는 인간도 마지막 순간에서는 누구나 그 영혼의 떨림을 진정시켜줄 무언가가 필요하므로. 하지만 그는 마지막 담배를 피워 물 작은 위로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차가운 부엉이바위 아래로 이승의 굴레를 던져버렸다. 눈부시게 지천으로 피어나 목부터 떨어져 뒹구는 동백꽃잎처럼 처절하게, 그렇게 말이다.
1. 그 사람, 노무현
나는 아무런 수식이 붙지않는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좋아한다. 본래 어떤 인간의 진면목은 일체의 호칭이나 수식을 거부한 이름 석자에 드러나게 마련이며 이런 경우의 이름 석자란 더 이상 고유명사가 아닌 추상명사로 기능하게 되는 법이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추상하는가? 그렇다. 노무현이라는 이름 석자는 오히려 그의 죽음 이후에 점점 더 그 외연을 확대하며 우리가 일찍이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그래서 우리가 오랫동안 망각하고 있던 소중한 가치를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이름이 되었다.
그는 늘 바른 양심에 따라 정치양심과 도의에 어긋나는 정치행적을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대한민국의 정치발전이라는 대의를 위해서 눈에 보이는 이익을 포기할 줄 하는 참된 정치인이었다. 3김시절 야권통합을 위한 그의 노력, 김영삼의 3당야합이 국민의 뜻에 어긋난다며 용감히 반기를 든 일, 자신에게 유리한 지역구(종로)를 버리고 지역주의를 청산하는 밑거름이 되겠다며 부산에서 출마하여 낙선한 <바보 노무현>의 정치역정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
노무현은 또한 사회적 약자편에 서서 그들의 흘리는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가였다. 변호사 시절, 노동자들을 위한 무료변론이나, 청문회에서 권력의 눈치를 보며 정작 보호해야할 근로자들에 대한 냉혹한 박대에 대해 왕회장 정주영을 몰아부치던 그 용기와 진정, 자신이 가난한 시골출신으로 까다로운 의전보다는 소탈한 사람 사이의 인간적인 소통을 더 사랑했던 서민 대통령 노무현은 조금만 타협했으면 임기내내 편했을 수도 있을 조중동이라는 거대 언론권력과 끝까지 타협하지 않은 유일무이한 대통령이었다. 노무현에게 조중동은 군부독재 시절에는 그 권력에 빌붙어 온갖 감언이설로 독재자의 비위를 맞추며 생존해 오다가, 오히려 그들에게 언론의 자유가 실질적으로 보장되던 노무현 정권에 대해서는 그 독묻은 필봉으로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호도하는 악마적 집단에 다름아니었다.
나는 노사모 회원도 아니고 이른 바 노빠라고 불리우는 극렬 노무현 지지파도 아니다. 다만 오늘날 대한민국이라는 땅에서 오늘도 먹고사는 일에 바쁜 일개 범부일 뿐이다. 하지만 노무현이 세상을 떠나고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나서의 조중동의 가증스러운 작태를 보노라면 정말 피가 거꾸로 치솟는 분노를 느끼게 된다. 어떤 때는 전두환 시절보다 더 노골적으로 이명박 정권에 호의적인 기사와 사진을 하루도 빼지 않고 대문짝만하게 찍어대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징그러운 언론에 그가 재임 중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진다. 나는 궁금해진다. 노무현 정권을 그렇게 원수처럼 근거없이 비난하면서 그들이 지키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 지금 이명박 정권에 아부하면서 그들이 확보하고 있는 이익이 도대체 무엇인지 말이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자칭 그네들이 말하는 민족정론지라는 허울에 가당키나 한 것인지 두눈 부릅뜨고 묻고 싶다.
노무현은 취임 초부터 검찰개혁에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사상 처음으로 공중파로 생중계되던 '검사와의 대화'에서 국가최고통치자 앞에서 고개 빳빳이 들고 따져들던 그 젊은 검사들은 얼마 전 드러난 스폰서 검사, 성접대 검사 추문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가? 기소독점주의나 조서중심주의,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보다는 돈있고 권력있는 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왜곡된 검찰상을 바로잡으려 할 때 극렬 반대했던 대한민국의 검찰은 지금 어디에 서있는가? 정권이 바뀌자마자 최대한 예우를 갖추어 전직 대통령을 모시겠다던 이명박 정권의 약속이 마르기도 전에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을 언론에 흘리며 기어코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검찰. 그것도 모자라 뇌물을 주었다는 진술하나만으로 한명숙 전 국무총리를 기소했던 검찰이, 확실한 증거와 증인이 기록한 증거는 무시한 채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한 검찰. 그들은 어느나라의 검찰인가? 바로 당신들이 바보 노무현을 죽였다. 할 말 있는가?
2.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역사는 냉엄하게 웅변하고 있다. 국민을 깔보는 정권, 소리없는 국민의 분노를 읽지 못하는 정권은 반드시 망하고 만다는 사실을. 아울러 우리는 기억한다. 아무리 조중동이 우리의 눈과 귀를 가려도 과연 누가 국민들 편에 서서 참다운 가치를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정치인인 지를 말이다. 물론 정치가의 양심이나 도덕적 수준과 대통령으로서의 국정운영능력은 별개의 사인일 수 있다. 건설 마피아들의 견고한 성을 깨뜨리지 못하고 아파트분양원가공개를 밀어부치지 못한 일이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립을 국회의원들의 반대로 무산시킨 일, 검찰개혁을 확실히 이루지 못한 점, 어설픈 부동산 정책으로 빈부격차를 심화시킨 일 등은 대통령 노무현의 한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노무현의 실패라고 이름붙힐 수 있는 것들 조차도 사실 그 내막을 알고보면 국가조직 전반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기득권 세력들의 강고한 저항에 좌초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나는 굳게 믿는다. 정의의 힘을, 올바른 가치의 힘을 그리고 신념있는 한 인간이 뿌려놓은 진보의 힘을. 비록 부엉이바위처럼 견고한 현실의 벽은 인간 노무현의 몸을 꺾어 놓았지만 그가 이 땅에 살면서 뿌려놓은 위대한 정신의 고갱이는 미래의 어느 순간 아름다운 꽃으로 만개하리라는 것을.....
불의에 타협하지 않았던 사람, 눈앞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양심과 대의를 먼저 보았던 사람, 이라크 파병 병사들과 격의없이 껴안고 파안대소하던 사람,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솔직히 인정할 줄 알았던 사람, 대통령의 체면도 아랑곳하지 않고 감동적인 연설에 가식없는 한줄기 눈물 흘릴줄 알았던 사람, 논바닥 한켠에 아무렇게나 앉아 맨 손으로 김밥을 먹으며 편한 웃음을 지을 즐 알았던 사람, 손녀를 태우고 자전거를 모는 그 뒷모습이 아름다웠던 사람...
당신이 그립습니다. 그 사람 - 노 무 현
(201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