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백온유, #유원, #창비사전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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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게 살아도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는 힘들다. 감사 노트를 적어본 적이 있다. 일기 형식으로 하루에 있었던 감사한 일 다섯 가지를 쓰는 일이었다. 한두 가지는 곧잘 써내렸지만, 그 이상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어거지로 생각을 쥐어 짜내야 했다. 몇 달이 지나서는 아예 공책을 펼치는 일도 없었다.
백온유 작가의 소설 『유원』의 주인공인 유원은 어릴 적에 아파트 화재 현장에서 기적으로 살아난 생존자로 등장한다. 수십명이 죽은 참사에서 살아남은 건, 정말 감사한 일이지만 함께 있던 언니는 빠른 판단으로 유원을 살려내고 세상을 떠난다. 유원은 죽은 언니의 몫까지 잘 살아야 한다는 중압감을 내·외부적으로 겪는다. 주변인에게 매번 감사를 갚아내야 하고,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늘상 죄책감에 시달리는 유원의 감정에는 생체기가 그득하다. 상처는 분노가 되어 증오로 변하기도 하는 유원의 감정선은 롤러코스터 레일과 같다. 모순된 마음은 언니가 불이 난 집 밖으로 내던진 유원을 다리가 망가지면서도 받아 낸 아저씨로 인해 심화된다.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지만, 그 점을 암행어사 마패마냥 이용하며 유원의 가족에게 무리한 요구를 이어나간다. 끊임없이 유원의 안에서 갈등하는 여러 명의 유원이 위태로워 보인다. 딸을 잃음과 동시에 딸을 얻은 유원의 부모는 유원에게 버팀목이 되어주지 못하는 듯 하다. 하지만 성장 소설인 만큼, 서사 중간 즈음에 유원의 윤리적 딜레마를 누그러트릴 수 있는 친구인 서현을 만나며 마주하는 감정의 변화가 눈에 띈다.
유원이
나는 엄마의 하나 남은 딸이자, 언니가 선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품이다.
백온유, 『유원』, 비매품, 117쪽
에서,
나는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이었다.
백온유, 『유원』, 비매품, 224쪽
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는 온전한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 유원이 올라선 지점부터다.
상처 입은 나를 보듬는 건, 나를 향한 작은 감사를 표하는 일이다.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해본다던지, 평소에 시달리던 일에서 벗어나면서 말이다. 우리네 마음은 늘 벌어지는 갈등에 힘겨워 하지만, 꼿꼿이 견뎌 내기도 한다. 유원이 가쁜 호흡을 내쉬며, 타인에 얽매이지 않는 강직한 자아를 찾아 나서는 발걸음 또한 그렇다.
이 세상 모든 유원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