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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lkw931031님의 서재
  • 연명치료는 사양하겠습니다
  • 양성관
  • 15,300원 (10%850)
  • 2026-09-10
  • : 2,710
✔ 대학 다닐 때 연명의료결정법 관련 논문을 쓴 적이 있다. 정의론 적인 관점에서 연명의료결정법을 살펴보는 내용이었는데, 이를 위해서는 연명의료결정법과 관련된 내용을 자세하게 알아야 했기 때문에 관련된 논의의 배경이 되는 보라매병원 사건이라든가, 세브란스 김 할머니 사건 등에 관해서는 물론이고 존엄사와 안락사의 차이, 연명의료결정법의 세부 조항 등 여러 가지 내용들을 열심히 찾아보았던 기억이 난다. 이 문제가 결코 간단하지 않다는 것 또한 또렷이 기억이 나는데, 연명의료라는 것이 결국 나의 가족 혹은 나와 관련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가족이 절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없을 때 쉽게 연명의료를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게 다만 '삶의 연장이 아니라 죽음의 연기'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죽으면 결국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말 텐데 그의 심장이 정말로 멈추는 순간 의료진을 향해서 뭐라도 제발 해달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상상하는 것만으로 너무 힘들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 이후 그가 의미 없는 생존을 이어가며 끝없이 고통받다가 결국 죽게 될 것을 아는 상황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너무 어려운 이야기다.

“삶의 연장이 아니라, 죽음의 연기에 가깝다. 그 끝에는 수십 개의 관에 연결된 몸과 심폐소생술로 피멍이 든 가슴, 피로 얼룩진 얼굴이 남는다. 가족들은 그제야 "이런 모습일 줄 몰랐어요"라고 말한다…(중략)…그렇게 환자는 가족과 철저히 분리된 채, 낯선 의료진에게 둘러싸인 채 마지막을 맞는다. 이것은 단지 의사의 잘못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죽음을 두려워하고,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제 사람이 늙고 병들어 자연스럽게 삶을 마무리하는 죽음인 '자연사'는 오히려 낯설고 드물어져 부자연스러운 죽음이 되었다. 죽기 직전까지 뭔가를 해야 한다. 아니, 심장이 멈춰도 포기하면 안 된다.”
양성관, 『연명치료는 사양하겠습니다』, 히포크라테스, 2026, p42.

✔ 한국에서 연명의료 중단에 관련된 논쟁은 주로 법적 분쟁 속에서 공론화되면서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곤 했는데, 크게 두 사건이 있었다. 첫 번째는 ‘보라매병원 사건’이다. 한 환자가 1997년 12월 4일 오후 3시경 술에 취해 시멘트 바닥에 머리를 부딪쳐 보라매 병원으로 후송되어 신경외과 전문의가 환자의 상태를 경막외출혈로 진단하고 레지던트와 함께 혈종 제거 수술을 시행했다. 환자는 수술이 끝난 뒤 중환자실로 옮겨졌지만 자가 호흡이 불가능한 상태로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채 치료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환자의 부인이 치료비 부담 때문에 환자를 퇴원시켜줄 것을 계속해서 요구했으며 수술을 했던 담당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언성을 높이며 계속 퇴원을 요구했고 결국 담당 의사는 퇴원을 시키라는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병원의 인턴이 환자를 집으로 이송해 부인의 동의 아래 연명의료를 중단했고 환자는 호흡정지로 사망하였다.

이에 1심은 환자의 부인에게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정범을 인정하였고, 신경외과 전문의와 레지던트에게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공동정범의 성립을 인정하였으나 환자를 이송했던 인턴에게는 무죄를 선고하였다. 항소심은 신경외과 전문의와 레지던트에게 작위에 의한 살인죄의 방조범의 성립을 인정하였고 환자를 이송했던 인턴의 무죄를 유지하였다. 대법원은 피고인 의사들과 검사의 각 상고를 기각하여 원심을 확정하였다. 이 판결은 의료계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 주었다. 환자 가족의 요구에 따라 환자를 퇴원시키던 의료계의 관행이 살인방조죄가 될 수 있음을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1심 법원인 서울남부 지방법원 공보판사는 보도 자료에서 이 판결은 소생 가능성이 있는 환자에 대한 것임을 밝혔다. 이 판결을 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까지 확대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그러니까 이 판결은 인간의 생명 유지에 필요한 의료지원이 어떤 경우에도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강한 생명 존중 메시지를 담은 판결이었다(박경숙 외 2015).

하지만 환자의 소생 가능성은 0%에서 100%에 이르기까지 연속선상에 있는 문제이며 어느 선을 기준으로 소생 가능성이 있다 혹은 없다고 판단해야 하는지는 매우 어려운 문제다. 더 중요한 것은 소생 가능성 판단의 절차적 기준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근거가 없어 연명치료 중단의 일반적 요건 혹은 절차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료계는 혼란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이후 의료계에서는 환자를 함부로 퇴원시키면 살인방조죄로 처벌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환자 가족의 퇴원 요청을 거절하는 사례가 많아졌고 환자 가족과 의료계의 갈등은 깊어져갔다. 보라매병원 판결은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사법적 혹은 입법적 해결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려준 첫 번째 사건이었다(박형욱, 2017).

“보라매병원 사건은 하나의 판결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 판결은 한국인의 죽음을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았다. 이 사건 이후, 의사가 강력하게 치료를 권했으나 환자나 보호자의 뜻에 따라 퇴원하며, 퇴원에 따른 결과에 대해 의료진과 병원에 어떤 책임도 묻지 않겠다는 '귀가서약서'나 '자의퇴원각서'는 사실상 효력을 잃었다. 의사와 병원은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를 퇴원시키지 않았다. 그 결과 각 병원의 중환자실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들로 마비되었다…(중략)…의사는 환자를 집으로 보내고 싶어도 법적 책임을 떠올렸고, 보호자는 집으로 모시고 싶어도 혹시 자신이 가족을 포기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했다. 그 사이에서 환자의 뜻은 자주 뒤로 밀려났다.”
양성관, 『연명치료는 사양하겠습니다』, 히포크라테스, 2026, p28.

연명의료 중단에 관련된 논쟁 두 번째는 ‘김 할머니 판결’이다. 76세였던 김 할머니는 2008년 2월 16일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에서 폐종양 조직 검사를 받던 중 과다출혈로 식물인간 상태가 되자, 가족들이 병원 측을 상대로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지해달라는 소송을 진행하였고, 2009년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인공호흡기가 제거되었다.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뒤 할머니는 7개월 더 생명을 유지하였다(박경숙, 2015; 김은철, 2013).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최초의 사법적 기준을 제시하였으나 사법적 해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었고 결국 입법적 해결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으며 이후 국회에 이와 관련한 다양한 입법안이 제출되었다.

그런데 당시 대법원이 판시한 연명 의료 중단의 기준들(의학적으로 명백한 회생 불가능성의 소견과 연명 치료 중단에 대한 환자의 의사 표현, 그 의사 존중이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 경우 등)은 법, 윤리, 의료, 종교계와 시민들 사이에서 논란을 증폭시켰다(박경숙 외, 2015; 김은철 외, 2013). 특히 사전의료지시서의 효력을 인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면서 후속 논의를 촉발시켰다. 법원이 연명의료중단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는 ‘죽음에 임박한 환자’가 자기결정에 따라 비록 생명 단축이 초래되더라도 인위적인 신체 침해행위(무의미한 연명의료)로부터 벗어나 자기의 생명을 자연적인 상태에 맡기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에 부합하는 행위로 그 권리의 보호는 입법정책의 문제로서 국회의 재량에 속한다고 판시하였다. 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연명의료중단관련 법률의 제정을 원하는 측에게는 결정적인 사건이 되었고, 국가생명윤리위원회의 연명의료관련 TFT가 입법을 권고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결정법」이라고 한다)」이 제정되었지만(이석배, 2017), 아직 해결해야 할 많은 숙제를 담고 있다.

내가 논문을 썼을 때가 2017년이었고 그때는 막 법률이 제정되었을 때였다. 2026년 현재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관련 법이 제정되었으니까 9년이 지난 현재 현장에서는 연명의료에 관한 문제가 많이 해결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막상 책을 읽어보니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하려면 필요한 조건들이 아직도 너무 까다롭고 현실에 적용하기 힘든 점이 있으며 연명의료 중간에서 의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법이 이를 명확히 정해놓지 않은 상태였다. 아직도 법적 절차와 내용에 문제가 있어 현장에서 적용하기에는 현실적으로 힘든 점이 많은 것이다.

“김영석 씨는 자신이 어떤 마지막을 원하는지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뜻을 들어줄 수 없었다.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사이에는 법이라는 선이 그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양성관, 『연명치료는 사양하겠습니다』, 히포크라테스, 2026, p81.

✔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소극적 안락사'도 제대로 허용되지 않는 한국에서는 생각하기 힘들지만 다른 나라에는 환자나 의사가 직접 약물을 투여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의료조력사망'이나 '적극적 안락사'가 허용되는 경우가 꽤 있다. '안락사'라고 하면 내 친구 중 한 명이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 친구는 꼭 나중에 스위스에 가서 안락사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자신의 죽음을 자신이 선택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죽음이란 언제나 갑작스러운 것이라서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올 가능성이 크다. 그 친구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모두 인사를 나누고 본인이 원하는 곳에서 본인이 원하는 날 죽고 싶다고 했다. 사실 나는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친구의 이야기가 이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내가 갑작스럽게 죽게 된다면 죽는 순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하고 눈을 감는 게 얼마나 슬플까. 하물며 내가 말기 암 환자라면, 곧 죽게 될 것이고 그 과정에는 고통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조금이라도 의식이 또렷하고 덜 아플 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와 작별 인사를 하고 고통 없이 떠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많이 사랑했던 막내 이모는 몇 년 전 암 투병을 하다가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말을 들어보면 이모가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마약성 진통제로 인해서 어머니와 이모들도 잘 못 알아보셨다고 했다. 의식이 없거나 흐릿할 때가 많았고 깨어 있을 때는 너무 아프다는 말만 계속하셨다고 한다. 우리 할머니는 지금 100세를 훌쩍 넘기셨다. 이제는 귀도 잘 안 들리시고 눈도 잘 안 보여서 집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하신다. 얼마 전까지는 뉴스도 보고 신문도 읽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힘들다고 하신다. 우리 가족이 찾아가면 항상 죽어야 하는데 안 죽는다는 말씀을 하신다. 죽으면 모두 끝이다. 살아있기만 하면 괜찮을 것 같은데 너무 고통스러운 삶,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그저 무기력하게 죽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삶은 힘들 것 같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하는 게 맞을까? 만약에 내 가족의 일이 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의료조력사망이나 적극적 안락사라는 선택의 의미는 죽음을 앞당긴다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찾아올지 알 수 없고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는 '불확실한 죽음'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확실한 순간'으로 바꾸는 데 있다. 죽음의 시간과 장소를 미리 정함으로써 사람들은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예정된 시간, 원하는 장소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초대해 함께 머물며 특별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다. 병실을 가득 채운 날카로운 기계음이나 고통스러운 신음 대시, 가족이 곁에 있는 가운데 마치 잠든 듯 고요하게 생을 마감한다.”
양성관, 『연명치료는 사양하겠습니다』, 히포크라테스, 2026, p118.

✔ 죽음을 생각하면 언제나 두렵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죽음이 많이 두려웠다.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긴 잠을 자는 것과 같겠지? 그러면 나라는 존재는 소멸되는 걸까? 영혼은 정말 있을까? 영혼이 있다면 끝이 없는 건데 그러면 무한히 사는 걸까? 죽음이 끝이어도 두렵고 무한한 다른 삶이어도 두렵다. 그래서 항상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의식적으로 생각을 떨쳐내버렸다. 그렇지만 나의 죽음이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든 100%의 확률로 이 일은 일어난다. 나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든 죽음에 이르는 그 과정이 고통스럽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쉽게 결정 내리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대비하지 않고 갑작스럽게 찾아온다면 결국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게 될 테니 지금부터 고민해 보는 것이 맞겠지.

“우리는 작은 물건 하나를 살 때도 비교하고 고민하면서, 정작 죽음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모르면 두렵고, 두려우면 외면하게 된다. 그러나 외면은 삶을 지켜주지 못한다. 준비하지 않은 죽음은 가장 혼란스럽고, 가장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찾아온다…(중략)…이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나부터 시작해서 가족으로, 그리고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다양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만큼, 다양한 죽음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양성관, 『연명치료는 사양하겠습니다』, 히포크라테스, 2026, p183.

#연명치료는사양하겠습니다 #히포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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