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Earth Hour행사 때 아파트 밴드에 홍보글을 하나 올렸는데 그 때 댓글에 집에 공부하는 자녀가 있어서 참가는 힘들겠지만 마음으로 응원한다는 댓글이 올라왔다. 그런가보다하고 별 생각이 없었는데 이번에 받은 책에서 한 시를 만났다.
저녁 여덟 시 부터 아홉 시까지?
어쩌나, 그 시간 수학학원에 있는데
어쩔 수 없네요
불 끄고 쉴 수밖에
지구 안에 있는
내가
내 책가방이
내 연필이
내 문제집이 쉬어야 지구도 푹 쉬는 거잖아요.
<바람의 사춘기> 중 ‘지구를 위해’ 일부
머리를 쾅쾅 때렸다. 마음이 울렁울렁 했다.
학생은 지구인일까 아닐까. 이런 멍청한 질문을..당연히 지구인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사실 그렇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너는 공부 해야 하니까, 그런 건 나중에 해. 대학교 가서 실컷 해’ 이런 말을 얼마나 들었던가. 그 땐 잘 몰랐지만 나도 학생 때 공부하느라 참 힘들었다. 그 때의 나와 20년이 지났지만 상황이 변한 것 없는 지금의 학생들이 안타깝다고 늘 생각하고 있지만. ‘우리 애는 공부해야 해서 우리집은 안돼요’ 하는 말에 내가 긍정도 부정도 어떤 마음도 들지 않았다는 것은 뭐였을까? ‘그럴 만도 하다’는 인정 아니었을까?
시 속의 아이는 핑계였을까? 물론 그랬을 수 있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네요, 다른 일도 아니고 지구를 위한 일인데’ 라고 거듭 강조하는 것이 아무래도 ‘지구의 시간이라니, 소등 행사라니!앗싸 학원가기 싫은데 잘됐다.’ 하는 마음이 엿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가 그저 투덜거림이 아니라 마음의 깊은 곳을 찌르는 이유는 ‘나도 지구의 일부이다’ 라는 부분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일반적으로 이런 뜻이다. ‘우리는 지구의 일부다. 그러므로 지구를 괴롭히지 마라’ 그런데 이 시의 주장하는 바는 전혀 다르다. ‘우리는 지구의 일부니까 지구 쉴 때 나도 좀 쉬자’ 라는 이 신박한 주장.
만약 그 댓글을 쓴 부모님의 자녀가 그 댓글과 비슷한 취지의 말을 들었을 때(이런 행사가 있다는데 우리집은 안되겠어. 너 공부해야하잖아) 마음이 어땠을까? 나는 (다른 수많은 일들처럼) 환경보호캠페인도 미뤄야하는 구나. 나는 시민사회 구성원이 아닌가봐. 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학생을 ‘공부’라는 이유로 배제해오고 있지 않았을까? 다시 앞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학생은 지구인인가?
그 아이들이 만약 ‘기후위기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너’ 라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알게 되었다면, 그땐 어떤 마음일까? 공부하느라 몰랐는데.. 사실은 자신의 남은 삶이 어른들이 저지른 환경문제로 인해 몹시 고통스럽고 피폐해질 수 있다는 사실,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기회마저 차단당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까?
<바람의 사춘기>라는 시집은 인디스쿨 서평단을 통해 지원받은 책이다. 무슨 생각인지 제목을 보고 그저 끌리는 마음에 골랐던 것 같다. 최근 사춘기 아이들에 관한 책들을 몇 권 읽어서 일지도 모른다. 사실 시집인 줄도 몰랐다! 책을 무척 즐겨 읽지만 아직 시와는 마음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나마 직업상 저학년 동시집은 조금 읽어봤지만 청소년 시집은 처음이다. 동시집은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던 것과 달리 바람의 사춘기는 재밌기도 했지만 마음 한편이 아프고 슬프기도 했다. 아이들은 어떻게 읽을까 궁금하다.
놀랐던 점은 신청할 때는 몰랐는데 박혜선 작가님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소원>이라는 그림책으로 알고 있는 작가님이었다. 환경그림책을 찾아 읽다가 발견했던 플라스틱 병에 대한 아주 시적이고 아름다운 그림책인데, 그 때 ‘와 시인이어서 그림책의 글도 참 아름답게 쓰셨구나’ 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우연하게 내 손에 시집이 도착할줄은 몰랐다. 게다가 그 시집안에서 환경문제와 관련된 시를 만나고 또 환경문제와 십대 청소년의 입장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박혜선 작가님은, 아니 세상의 많은 어린이책 작가님은 본인이 어린이도 아닌데 십대청소년도 아닌데 어떻게 그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는 것일까. 어떻게 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까? 아이가 있을까? 나도 아이가 있지만 글쎄, 아이를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잘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잘 되지 않지는 않지만 어린이, 청소년 책의 힘을 빌려, 그것을 써준 작가님들의 능력을 빌어 그들의 마음과 그들의 입장과 그들의 삶과 그들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을 이해해보고 또 이해해 보려고 계속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나의 첫 청소년 시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