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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냥님의 서재
[마이리뷰] 침묵
밤은부드러워  2024/02/22 13:50
  • 침묵
  • 엔도 슈사쿠
  • 9,900원 (10%550)
  • 2009-01-30
  • : 1,885
1630년대 일본 나가사키 일대의 천주교 선교하러 들어간 포르투갈 신부님들과 탄압에 대한 이야기.

로드리고 신부가 배교하지 않으면 신자들이 고문당하고 하나씩 처형되는데 왜 하느님은 지켜보고만 계실까 의문을 품으며 괴로워하는 모습이 나온다.

하느님에 대해 신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흔한 의문. 세상이 이모양인데 나쁜 사람이 이렇게 활개를 치는데 신이 있다면 이렇게 두실까.

결국 로드리고 신부는 예수님의 성화를 밟고 배교하게 되는데 그에 대해 이렇게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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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밟아도 괜찮다. 너의 발은 지금 아플 테지. 오늘날까지 나의 얼굴을 밟은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아플 것 이다. 하지만 그 발의 아픔만으로 이제는 충분하다. 나는 너희들의 그 아픔과 고통을 나누어 갖겠다. 그 때문에 나는 존재하니까.’

‘주님, 당신이 언제나 침묵하고 계시는 것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

‘나는 침묵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함께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그러나 당신은 유다에게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네가 하려는 일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유다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지금 너에게 성화판을 밟아도 괜찮다고 말한 거와 같이 유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말한 것이다. 너의 발이 아픈 것처럼 유다의 마음도 아팠으니까.’

“강한 자도 약한 자도 없다. 강한 자보다 약한 자가 괴로워하지 않았다고 그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성직자들은 모독적인 행위를 몹시 책할 테지만, 나는 그들을 배반했을지 모르나 결코 그분을 배반하지 않았다. 지금까지와는 아주 다른 형태로 그분을 사랑하고 있다. 내가 그 사랑을 알기 위해서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이나라에서 지금도 최후의 그리스도교 신부다. 그리고 그분은 침묵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설령 그분은 침묵하고 있었다 해도 나의 오늘날까지의 인생이 그분에 대해 얘기하고 있으니까.

- 침묵, p. 329


성화를 밟는 것은 상징적 의미일뿐 내가 그것이 잘못된 행위임을 알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떠밀렸더라도 살아남은 시간동안 신부는 계속 괴로워할 것이다.

밟지 않기를 결심하고 순교한 사람들이 더 위대하다고 할 수 있을까. 밟고도 신앙심을 잃지 않고 반성하고 기도하며 남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순교했어야만 했을까.


기치지로라는 흥미로운 캐릭터가 나오는데 이 사람은 신자이지만 고문당하거나 자신이 위험에 빠질 것 같으면 배교했다가 고해성사를 하고 그것을 반복하는 인물이다.
그 인물이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신앙을 잃지않고 세태에 맞춰가며 괴로워하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독립운동하던 시대를 떠올리며 나는 저렇게 내 한목숨 나라를 위해 바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사실 기치지로의 모습은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었을 것 같다.
내 가족과 내 목숨이 위협받으면 옆집 사람을 고발하고 살아남은 목숨으로 남은 삶동안 괴로워하며 살지 않았을까.

정말 나쁜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죄책감마저 지워버리고 살아가는 사람이겠지. 신앙으로 생각한다면 정말 배교한 자.

더 어릴때 읽었더라면 이치지로 이상한 놈 미친 놈 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배교하고도 신부님을 따라다니며 고해성사를 받아주세요 하는 모습은 순수하다고 말할 수 있다.
타고나길 약자로 태어난- 당시에는 신분도 있었으니 - 자들이 죽음 앞에 모두가 강할 수는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개인의 신념, 신앙으로 시대의 흐름을 바꾸기란 정말 계란으로 바위치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을 하고 신앙생활을 한 모든 이들이 대단하다고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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