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대 앞 직장을 옮기느라 예기치 않은 휴가가 생긴 친구가 제주도에 같이 가자고 한다. 가고팠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제주도 올레길을 걷고 싶었으나 ‘결단’을 내리지 못한 나는, 아침 댓바람부터 홍대앞 주차장길을 걷고 있었다. “좀 서운한 영화다” “감동이 없어도 눈물은 나네...” 조조영화로 본 ‘내사랑 내곁에’의 감상평을 두런두런 주고받으며.
환한 대낮의 홍대 앞은 생경했다. 주로 밤과 새벽사이에만 머물던 곳. 1년 365일 성탄절 이브처럼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거리가 헐겁게 비어 있다. 촬영이 끝난 세트장처럼 현실감 없다. 길을 잘못 들어선 거 아닌가 싶어 연신 두리번거렸다. 수다스럽던 친구가 입을 꼭 다문 것 새침한 거리. 걷는 동안 하나둘 셔터가 올라가고 홍대 앞이 기지개를 편다. 맞다. 여기가 거기였구나. 거리가 조금씩 수다스러워지자 알아본다. 우리는 주차장길 부근 카페 골목 테라스가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흡연가 친구는 ‘담배와 수다’가 타인에게 공해가 되지 않는 그 자리를 맘에 들어 했고, 나도 9월의 청명한 바람과 촉촉한 햇살이 주위를 감싸는 그 공간이 마냥 사랑스러웠다.
“그곳에서 20년을 보냈다. 아침의 적막함과 밤의 분주함이 차례로 교차되며 하루하루를 엮어나가는 곳이다. 아침의 고요는 그곳에서는 아주 각별하다. 어떤 아침보다 그곳의 아침은 고요하다...밤새 떨어뜨리고 간 것들을 들여다보았다. 탈피한 껍질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160쪽)
# 남산 아래 다음 정류장은 ‘후암동 신발가게 앞’이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베이지색 효도신발을 신은 할머니가 탄다. “내가 차비가 400원밖에 없네. 만 원짜리야. 어쩌지.” 계단을 오르자마자 지갑을 열어 꼬깃꼬깃 접은 만원을 꺼내고는 ‘텅 빈 지갑’을 인증하신다. 기사님이 백미러로 힐끔 쳐다보시고는 말이 없으시다. 할머니가 의자에 몸을 앉히고 거듭 강조하신다. “나 할아버지(기사님) 알아. 다음에 탈 때 낼게. 지금은 동전이 없다니까. 삼백 원은 다음에...” 얘기 도중 기사님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다음에 꼭 주세요.”
차비걱정에 주름이 두 개 쯤은 더 늘었을 할머니 얼굴이 순간 환하게 펴진다. 할머니가 차비를 협상하는 동안 숨죽여 지켜보던 나를 포함한 앞좌석의 서너 분의 할머니들도 덩달아 안도의 한숨을 쉰다. 나는 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동전 털어 자판기 커피 먹었던 걸 후회했다. 삼백원 그까이꺼;; 대신 내드렸으면 좀 더 간단히 해결됐을 것을.
할머니는 본격적으로 몸을 틀어 옆 라인 할머니들과 말문을 트신다. 아는 사이 같지는 않았다. 헌데 지하철이고 마을버스고 중년 이상 아주머니들은 쉽게 말벗이 되는 걸 목격한지라 그 장면이 어색하지가 않다. 할머니가 병원에 갔더니 독감 백신이 떨어졌다고 해서 헛걸음 한 얘기를 꺼내자 이 아주머니 저 할머니 서로 “나도 그랬다” “내가 아는 누구는...”해가며 대화를 잇는다. 뭐가 그리 재밌으신지 하하 호호 소녀들 마냥 웃음이 터진다. 한보따리 웃음을 실은 마을버스는 동물 내장 속 같은 골목길을 구불구불 묘기 수준으로 통과한다.
“이번 역은 근대화슈퍼입니다. 다음은 정일학원입니다.” 후암동 신발가게, 근대화 슈퍼. 정일학원. 아무 것도 없다. 몽땅 사라졌다. 마을버스 정류장 이름은 이렇게 업데이트가 안 된다. 힘없는 사람들이 타는 버스라 그런 걸까. 항의하는 사람도 없나보다. 신발가게가 진즉 없어졌어도 학원이 자리를 옮긴지 몇 년이 지났어도 근대화 지나서 현대화도 넘어 미래화가 되어가도록 정류장 명칭은 그대로다. 이 느려터진 후진국의 속도가 좋다. 뜨끈한 아랫목에 나오기 싫은 것어럼 아쉬움을 뒤로 하고 마을버스에서 내렸다. 하늘에 삐죽 솟은 남산타워를 바라보고 생각한다. 뭐라도 그대로였으면 좋겠다고.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 없어졌군 하면서 느끼는 것이 많아진다. 그런 소리 입 밖으로 나오는 것이 이제는 조금 지겹기도 하다... 도시가 저절로 자꾸 몸집을 불리다보니, 그런 옛집들이 자꾸 제자리에서 물러난다... 원래 있던 자리에 낡은 대로, 퇴락한 대로 사람과 살을 맞대며 살았으면 좋았을 테지만...” (142쪽)
# 경복궁 근처 “정독도서관에 책 반납하러 가는데 시간 되면 점심 먹을까?” 그제 아침에 집을 나서는데 전화가 왔다. 내가 스물아홉이고 언니가 서른아홉일 때 글공부 하면서 친구가 되었는데, 내가 지금 그 때의 언니 나이다. 지난 십년 간 바람 좋고 볕 좋은 날 연락해서 고궁도 걷고 강화도에서 바람도 쐬고 홍상수 영화도 보고 맛있는 밥집과 운치 있는 찻집도 가고 술도 한잔 기울이는 풍류지기로 지냈다.
오전에 학동에서 일을 마치고 압구정역까지 걸어가서 3호선을 탔다. 땅속으로 15분 정도만 통과했다가 나와도 '다른 하늘이 열린'다. 강남의 높은 빌딩숲 아래선 볼 수 없었던 푸짐한 하늘. 옥인동 방향으로 가서 통인시장에 들렀다. 커피빈 찻값보다 싼 4천원짜리 팥칼국수로 허겁지겁 배를 채우고 아이들 간식으로 줄 김밥과 찰떡을 샀다. 저녁반찬 하려고 우거지를 언니는 이천원, 나는 천원어치 샀다. “많이 주세요~” 했더니 아주머니가 한 주먹 더 넣어주시는 바람에 양이 엇비슷했다. 고마워서 괜히 말을 걸었다.
“아주머니, 단추 멋 내려고 엇갈려서 끼우셨어요. 최첨단 패션인데요?” 아주머니는 고개를 숙여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걸 확인하시고는 멋쩍게 웃으시더니 괜히 아저씨를 탓하신다. “우리 영감은 나한테 관심도 없어서 이런 것도 몰라. 얘기도 안 해줘!"
무슨 낌새를 눈치 채셨는지 가게 안에서 아저씨가 쓰윽 나오신다. 아주머니는 당황한 어투로 “저분들이 당신 잘 생겼대~”라고 엉뚱한 말을 둘러대신다.^^ 순박하게 생긴 아저씨는 빙긋이 웃으면서 우리를 보고 “뭐 먹고 싶어요?” 묻는다. “먹은 걸로 할게요! 많이 파세요!”
까만 비닐봉지 양손에 주렁주렁 매달고 차마실 곳을 찾는다. 사직도서관 가는 길 매동초등학교 앞, 문방구를 개조한 커피집. 낡아서 삐걱거리는 미닫이 유리문에는 ‘영아트 취급점’이라는 키티 스티커가 붙어 있다. 키티의 강인한 생명력에 감탄하며 문을 열고 들어가니 벽면 가득 레코드판이다. 흥분해서는 거의 본능적으로 한 걸음에 성큼 다가갔다. 세로로 빼곡히 꼽힌 깨알 같은 글씨 중에서 ‘시인과 촌장’이 확대경을 들이댄 듯 눈에 띈다. ‘음유시인’ 분위기의 주인장에게 좀 틀어달라고 청했다. 콜롬비아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며 시골 문방구 창 프레임 밖으로 한잎 두잎 떨어지는 낙엽과 들이치는 햇살을 마주하고는, 지지직 '판' 돌아가는 소리를 듣는다. 입김불듯이 조심스레 퍼지는 투명한 목소리..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 서울, 사랑해도 될까요 발길 닿는 곳마다 무수한 길이 열리는 서울. 거의 사십년 떠도는 동안 서울은 단 한 번도 같은 모습을 보여준 적 없다. 어느 계절에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공간은 매번 새롭게 펼쳐진다. 나의 서울은 인심짱, 경치짱이다. 그러니 서울시립미술관 4층 카페에서 내려다보는 우아한 거리만이 아니라 가판대의 말라비틀어진 먼지마저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서울에 대한 연정을 품고 늙어서도 서울에 뒷등을 보이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내게 근사한 ‘서울 그림책’이 생겼다. “살면서 받아본 유혹 중에 가장 강력한 것이 땅의 유혹인지라, 땅의 유혹을 받게 되면 내 몸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 멋대로 춤을 춘다.”(209)는 건축가 부부 임형남, 노은주가 글 쓰고 그림 그린 <서울풍경화첩>이다.
그 책을 일주일 동안 가방 안에 넣고 다니면서 서울과 데이트를 즐기는 짬짬이 읽었다. 나는 내가 서울을 좋아하면서도 왜 이렇게 좋고 정이 가는지, 어디가 그렇게 예쁜지 도무지 알 길도 설명할 길도 없었는데 이 책을 보면서 답과 위안을 동시에 찾았다. 한줄 한줄 얼마나 맞장구를 쳤는지 모른다. ‘대놓고 말하기 뭐했던’ 심지어 죄짓는 느낌마저 들었던 나의 서울 사랑이 떳떳해지는 기분이었다. 눈물나게 고마운 일이다.
<서울풍경화첩>은 서울을 미화하지도, 그렇다고 구박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좋다. 있는 그대로의 비인간적 속도와 혼탁함의 서울 초상을 수채화의 서정으로 부드럽게 그려냈다. 마치 나를 낳아준 엄마의 생을 회상하듯 두 사람의 삶을 품어준 서울이라는 커다란 집을 구석구석 세심한 눈길로 더듬었다. 서울의 60-70년대 청순한 미모가 그대로 살아나고, 성형중독으로 일그러진 21세기 서울의 생얼 조차도 시적으로 묘사된다. 그렇게 일구월심, 자신을 낳고 키워준 서울에 대한 예의를 다한 책이다. "아직도 모르는 서울의 구석구석이 많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며 돌아다니길 좋아한다"는 고백으로 끝맺음을 한 건축가 부부의 ‘서울그림책’이 남다르고 소중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