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은 ‘질문’한다. 그런 점에서 꽤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는 <섹슈얼리티와 광기>는 우선 좋은 책이다. 저자는 이렇게 묻는다. ‘근대 문학의 주인공들은 왜 죄다 아파했을까?’
저자에 따르면 이광수의 근엄한 계몽주의가 힘을 잃은 뒤 등장하는 1920년대 근대문학은 온갖 병을 앓고 있는 인물들로 들끓는다. 김동인과 염상섭 나도향 등의 소설은 섹슈얼리티와 광기라는 소재로 가득했다. ‘임야’ ‘표본실의 청개구리’ ‘약한 자의 슬픔 ’ ‘타락자’등에는 성윤리를 저버린 여자, 불감증의 아내, 종교적 열정과 살해의 망상에 사로잡힌 아들, 성적 불능자이며 도착적인 남편, 히스테리에 걸린 간호부, 관음증 환자인 전차 차장 등이 등장한다.
도대체 주인공이 혈색 좋고 무탈한 삶을 사는 경우는 없다. 그들은 자신의 성적인 욕망에 대해 도대체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몰라 당황하기 일쑤다. 혹은 죽음충동을 극복하지 못해 삶의 순간순간이 고통의 연속이 된다. 그들은 자기 외부적 장애보다는 성욕과 광기라는 ‘내부의 적’ 앞에서 동요하고 혼란스러워 하곤 했다. 폐병에 걸린 고뇌하는 잿빛 청춘. 원고, 편지지, 약갑 등은 지식인 청년의 전유물이었다.
영웅담과 모험담은 없다. 영웅이 아니라 환자가, 모험이 아니라 병력의 진술이 문학이 되는 시대가 열렸다. 자연스레 일기체나 편지체로 대표되는 고백체 양식이 대두됐다. ‘신경증 환자와 광인의 만남’이라는 극적인 장치를 통해 무의식과 대면을 시도했다. 인물의 병리적 욕망을 꼼꼼히 분석하고 기록하고 관찰하고 질문하는 가장 섬세한 절차야 말로 근대문학의 능력이 된 것이다.
“이 시대 문학은 성에 대해 모든 것을 말하고자 하는 의지로 가득 차 있다. 나도향의 <전차 차장의 일기 몇 절>은 이 시대를 대효하는 혹은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품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한 여성의 남성편력을 쫓아다니고 미행하는 차장의 고백으로 되어 있는 이 작품은 오로지 문학이 알고자 하는 영역이 육체와 욕망뿐이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45)
근대문학은 도대체 어찌하여 이렇게 병리성을 문학의 본질로 삼았던 것일까? 대개는 이 같은 당시 문학의 공통된 ‘병리적’ 양상에 대해 ‘식민지 지식인의 좌절이 원인이다’라는 인과관계가 분명해 보이는 해석과 가치판단을 붙여왔다. 하지만 당대 ‘인간’들의 삶의 조건을 그렇게 한 줄 요약할 수는 없는 문제. 저자는 그러한 인과론적 해석과 그 해석에 덧씌워져 있는 낡은 가치판단을 걷어내는 작업을 수행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근대문학의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신음해야만 했던 이유는 ‘인간의 진실’에 대한 ‘앎의 의지’ 때문이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의 질문은 근대와 함께 탄생했다. ‘근대성’과 전면적으로 마주한 20년대 주체들은 단순히 노동하는 존재나 국민국가의 일원으로서는 자신의 고유성을 갖추지 못했다. 정치·경제 공동체가 자신을 규정한 정체성을 넘어 ‘나만의 진실을 확보’하고자 했고, 따라서 섹슈얼리티와 광기는 인간의 내면을 탐색하고 자기의 진실을 확보하는 데 최고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20년대의 병리적 주체들에게 현실은 돌파의 대상이 아니라 가치보전이 불가능할 때는 재빨리 이탈해야 할 부정적인 공간이다.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조건에 대한 분석, 그 조건의 필연성에 대한 분석은 20년대 문학담론과 만나지 못했음을 저자는 지적한다. 욕망의 해방이 아니라 욕망에 대한 분석, 욕망의 억압이 아니라 욕망에 대한 앎의 의지가 문학담론을 지배한 것이다.
“병든 야만인들을 우리 내부로부터 몰아내는 것이 신소설의 소명이었다면, 우리 내부의 타자인 병리성에 대한 추방 불가능성 앞에서 그 병리성을 인간의 진실로 포착하는 것이 근대문학의 소명이 된다.”
1920년대 현상은 2000년대도 유효하다. 근대문학의 진지한 관음증은 주체의 진실을 파악하기 위해 여전히 동원된다. 인간은 지옥의 문 앞에 서지 않으면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상처와 고통에 근거한 자기탐색의 여로가 문학으로 탄생한다. 때문에 “인간에 대한 앎의 의지 그리고 여기에 바탕을 두고 인간의 진실을 구성하려 한 근대문학은 현재진행형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근대를 넘어서는 삶’에 관심이 있다고 밝혔다. 근대문학과 병의 관계를 통해 근대의 본질까지 탐색을 시도한다. 근대성의 파괴를 위해 망치를 들었던 니체를 불러내고 <광기의 역사> <성의 역사>의 푸코를 문학에 접붙여 ‘근대성’을 계보학적으로 추적한다. 그리고 ‘근대문학은 인간학이다’란 결론으로 책을 마무리 짓는다.
이 책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병리성’이라는 근대적 현상 분석에 대부분 할애될 뿐, 푸코와 니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인 정상성과 근대성의 ‘돌파’에 대한 모색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정체, 즉 주체의 진실을 알기 위해 폐병에 걸리고 피폐한 심신을 부여안고 고통에 몸부림치는 근대문학의 주인공들에게 ‘근대를 넘어서는 삶’은 어떻게 가능할까. 저자는 다음과 같은 물음으로 ‘근대 이후’를 넌지시 전망해본다.
“자기를 포기하지도 않고, 자기 내부의 진실에 맹목적으로 집착하지도 않는, 주체와 진실의 새로운 관계는 없는 것일까? 다시 말해 자기의 비밀을 파헤치기보다 ‘한 번도 되어본 적이 없는 자기’가 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