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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과 감성

원더랜드에 있는 앨리스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너나 없이 활발하고 어린이'다운' 소녀를 떠올린다. 그런데 루이스 캐롤이 누구를 모델로 이야기를 썼는지를 들여다보면 조금 달라진 감각을 갖게 된다. 루이스 캐롤은 자신의 본명을 라틴어로 재해석하면서 만든 이름이고, 앨리스는 자신이 근무하던 직장 상사인 수학과 학과장의 둘째 딸을 그려낸 인물이다. 캐롤이 만들어낸 이야기 속 앨리스는 빅토리아시대에는 흔하디 흔한 순수한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에 다름 아닐 수도 있다. 어린이를 사랑하는 게 죄는 아니지 않은가. 더구나 캐롤에 의해 표현된 앨리스는 학대자의 시선 아래 노출된 가엾은 인물이 아니다. 앨리스를 그리는 캐롤의 전개에는 탁한 욕망의 관점이라고 하기에는 또 다른 차원의 시선들이 있다. 앨리스는 하트 여왕이 목을 치라는 명령을 내릴 때 조차 강압에 맞서는 용기를 가진다. 시대는 순진무구한 덕목으로 치장된 소녀상을 요구하지만,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하는 앨리스는 동시대의 비동시성을 표현하는 인물이 된다.

그러나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캐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원더랜드에서 마지막 하얀 기사의 등장은 예정되어 있었다. 하얀 기사는 앨리스를 돕고자 한다. 아니 구원하고자 한다. 앨리스가 여행 중 제일 먼저 떠올리는 장면이 하얀 기사의 부드럽고 친절한 미소였다는 사실은 뭔가 시사적이다. 그러나 캐롤은 수학자답게 혹은 현실주의자답게, 앨리스를 하얀 기사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지도록 만들지 못한다. 캐롤은 거꾸로 가는 세상에서 모험을 해야 할 앨리스를 위한 이야기를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누가 알 수 있을까. 어떤 세상에 서 있음이 다른 세상으로 가기 위한 장치라도 되는 듯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문학이라는 세계가 어떻게 삶을 흔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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