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은 어느 누구에게나,
그가 외롭고 절망에 빠진 자라
할지라도,
동포와 가장 강한 관계를 갖게
한다. 그것도
즉시, 물론
그 겸손이 완전하고 지속적일 때뿐이지만,
겸손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진실한 기도의 말,
즉 경배이며 동시에 가장 굳건한
결속이기 때문이다.
동포와의 관계는 기도의 관계이며,
자신과의 관계는 노력의 관계이다.
또한 기도에서 노력을 위한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카프카 아포리즘』
제대로 읽고 쓰라는 둥, 그게 아니라는 둥, 무관심만큼 버거운 반응들에 실망을 한 후에 X에서 열심히 트윗을 날렸다. 화려하게 아릅답게 나답지 않게 트윗을 올리면 다른 길이 만들어지리라 생각했다. 그럴리가 없다. 사람들은 안심할 길을 찾는다. 그래야만 한다. 카프카 아포리즘을 보라. 시종일관 어떤 형태로든 질곡을 만들고 거주해야 완성되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 진리의 길이 그런 걸 수도 있겠다. 난 지쳤다. 서재 글쓰기가 남긴 후유증은 한동안 글을 쓸 수 없게 만들었다.
"모든
사물이 본성적으로 자신의 완전성을 욕구하기 때문이다.
불완전자가
자신의 완성을 욕구한다는 의미에서 질료 또한 형상을
욕구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런데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지성은 그 자체로 고찰했을
때 가능적으로 모든 것이며,
오로지
앎을 통해서만 자신의 현실성으로 이행한다.
『영혼론』3권에서
말하듯 지성은 이해하기 전에는 존재하는 어떤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퀴나스의 논변대로 하자면, 지성과 자신의 현실성이 맞물려야 정체성을 지닌 인간으로서 완전해진다. 이 논의에서 한 걸음도 더 나갈 수 없다. 내가 찾고자 한 것은 아퀴나스의 전도였으나, 그걸 노력할수록 자신이 우스워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