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포괄적인 신생분야를 평이하고 깔끔하게 전달하는 전문적 입문서이지만, 번역상태가 다소 의심스러워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철학이란 무엇인가?(존재), 철학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방법), 철학은 왜 해야 하며 어떠한 소용이 있는가?(가치)' 라는 세 물음을 중심 삼아, 철학에 관한 철학으로서의 메타철학이라는 분야를 평이한 서술과 깔끔한 구성으로 전달하고 있다. 저술 의도도 그렇고 책의 실제 난이도나 서술스타일도 그렇고 분명 입문서이긴 하지만, 주제 자체가 메타적인 분야인 만큼 통상적인 철학사 전반과 개별 철학자들의 이론은 물론이요, 논리학, 인식론, 형이상학, 언어철학, 과학철학, 대륙/분석철학, 현상학, 자연주의 등과 같은 철학의 하위 분야나 주제들에 이르기까지ㅡ1계 철학 전반에 대한 선지식이나 감각을 간략하게나마 폭넓게 갖추고 읽어야 유의미한 입문서 노릇을 할 수 있겠다. 통상적인 학부 커리큘럽상 개별 강의를 통해 그러한 선지식들을 다소 갖춰 놓았을 철학과 학부생 3, 4학년이라면(혹은 그에 준할 정도로 철학에 숙달해 있는 일반 독자층이라면) 요즘 같은 방학 시즌에 편하게 일독해볼 가치가 있겠다. 강의를 통해 다양한 1계 철학이론들을 배우면서 각 철학자들이 지녔던 메타적 철학관에 관한 <막연한> 시사점을 분명 접하겠지만, 철학 자체가 그 학문적 지위와 정의특성에 관한 논쟁이 다발하는 학문인 만큼, 무릇 진지하게 공부하는 철학도라면 자신의 전공분야를 한층 더 높은 시각에서 <체계적, 논증적으로>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조금이나마 더 안전하고 실패 여지가 적은 탐구의 시작점과 사유의 재료를 확보케 해주는 희소성 있는 문헌으로서, 적어도 철학과 학생들에게는 구매소장이 추철될 법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부분적으로나마 주제가 겹치면서 메타적인 성격의 저술로 니킬 무커지, "실험철학", 제임스 체이스 外, "분석철학 대 대륙철학", H. J. 글록, "분석철학이란 무엇인가?" 등 세 권을 읽은 바 있는데, 이 책에서도 모두 언급 및 간혹 인용되고 있어 반갑기도 했다. 이 책과 마찬가지로 논의가 폭넓고 또한 번역이 딱히 유려하진 않지만, 해당 책들도 가까운 시일 내에 함께 읽는다면 철학이라는 거대한 분야 자체에 대한 메타적 감각을 갖춰놓는 데에 일익이 있을 것이다.
2. 다만 초두에 언급했듯 간혹 발견되는 오역에서도 그러하고, 전반적으로 읽어가며 느껴졌던 스타일이나 문장력, 논의의 이해가능성 측면에서도 그러하고, 번역 상태가 딱히 안전하지 않아보인다는 점이 가장 큰 단점이라 여겨졌다. 주제의 특성상 이렇게 1계 수준의 다양한 이론, 논제, 관점, 개념, 방법론 등에 대한 메타적 논의가 주를 이룰 수밖에 없는 저술의 경우, 인용되거나 논의에 활용되는 다양한 주제와 입장들을 1차적으로 만족스런 수준에서 이해하고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원저자가 그러한 자료들을 어떤 논의맥락 내에서 어떤 결론이나 함의를 위해 활용하고 있는지를 2차적으로도 충분히 간파하고 이해한 채 번역에 임할 것이 역자에게 요구된다. 그래야만 인용문과 본문, 1계수준과 2계수준 서술, 다양한 철학자들의 입장 사이를 오가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논의 속에서, 독자가 (흥미를 잃지 않는 건 고사하고) 최소한 언어적으로 방황하지 않고 논의의 길을 제대로 따라갈 수 있는 물건이 나온다. 간혹 보이는 오역이나 미심쩍어 보이는 문장들, 이해가 잘 안되거나 한국어 맥락상 오도적이게 배치된 구문들 등을 보건대, 이 책은 그런 면에서 만족스럽게 번역된 물건은 아니라 생각한다.
가령 53쪽을 보자:
해커가 설명하는 비트겐슈타인의 메타철학적 입장에 따르면, 철학은 자연과학의 일부일 뿐만
아니라, 인간 지식에 그 어떠한 공헌도 하지 않는다.
추정컨대 원문은 'not …, nor' 형식의 문장이었을 듯한데, 그렇다면 "철학은 자연과학의 일부<일> 뿐만 아니라"가 아니라 "철학은 자연과학의 일부가 <아닐> 뿐만 아니라"로 번역되어야 한다. 원문에 대한 추정과는 별개로도 위 번역은 논의 맥락상 모순되는바, 해당 문장의 앞 문단 중심내용은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치유적 철학관에 관한 것으로서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이 '과학과 매우 다르다'는 슐릭의 주장에 동의할 것이다"라고 명시적으로 언급되어있다. 논의 맥락에 대한 고려와 별개로도, 비트겐슈타인은 전후기를 통틀어 철학이 자연과학의 일부라 생각한 적이 없다는 철학사적, 해석적 상식을 감안하건대, 해당 부분의 논의맥락에도 철학사적 배경지식에도 민감하지 않은 정신상태에서 야기된 사소하지만 한심한 오역이라 평할 수밖엔 없는 대목이다.
152쪽도 내가 생각기로는 명백한 오역이다:
아마도 쿠퍼가 암시하듯이, 하이데거와 다른 철학자들은 후설의 주관성(subjectivity)이 데카르
트식 실체 개념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주체 영역 안에서만 지향적 경험"을 한다고 비판해 왔
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후 등장한 후기 현상학자 미셸 앙리는 후설의 주관성이 불필요한
편재성(insufficiently immanent)을 띤다고 비판했다.
후미의 'insufficiently'를 '불충분하게'가 아니라 '불필요하게'로 오역했으며 'immanent'를 두 의미 중 '내재적인'이 아니라 '편재하는'으로 잘못 선택하여 번역했다. 미셸 앙리라는 현상학자의 이론을 나는 일절 모르지만, 논의 맥락상 추정컨대, 하이데거, 메를로-뽕띠, 레비나스, 사르트르 등 후설 현상학을 일부 계승하였다고 자처하는 현상학자들은 후썰식 주관성이 과도하게 주체 내재적이라고 비판했음과 달리, 미셸 앙리는 도리어 후썰식 주관성이 <불충분하게 내재적>이었다고, 즉 더욱 철저하게 내재성을 띠지 못했으며 그로 인해 모종의 문제가 발생했다고 진단했다는 내용이, 원저자의 의도였을 듯하다. 논의맥락상으로도 번역된 단어의 의미 자체로도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 되어버린 셈이다. 주체가 <편재성>을 띤다는 말은 소박한 형태의 관념론이나 범심론이 아닌 바에야 철학적으로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에서 더 나아가 주체의 편재성이라는 게 어떤 의미에서 <불필요>하다는 것인지조차 전연 이해할 수 없다. 53쪽에서와 달리 원어를 병기했음에도 이런 결과가 나온 걸 보면, 앞서와 마찬가지로 논의 주제가 되는 1계 이론이나 해당 논의맥락에 대한 면밀한 검토 및 충분한 이해 없이 사소하지만 무책임하게 오역된 사례라고 의심할 여지가 다분하다.
161쪽엔 내 배경지식으로는 추정상으로도 도저히 이해를 기도해볼 수 없는 문장이 나온다:
언뜻 보면 엄밀해 보이는 정의에 호도되지 말라. 그 예는 다음과 같다. 저자 A는 형식어원
(formal derivation) D를 사용하는 그 어떤 유용성 U도 취하지 않는다.
콜린 맥긴이 자신의 '인지적 폐쇄' 개념을 분석철학전통 특유의 준형식적 언어로 기술한 데 대해 대니얼 데닛이 비꼬면서 제시한 문장이다. 문장 전체의 의미를 짐작하긴 어려워도 'formal derivation'이 '형식적 도출'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점 만큼은 추정할 수 있겠다. 어떤 단어의 어원이 '형식적'이라는 말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다행히 해당 본문이 1에서도 언급한 글록의 책 인용문이어서 해당 부분을 찾아보았다:
이 정의의 외관상의 엄밀성 되문에 오도되지 말라. 필자 A는 임의의 형식적 명제 D를 도출할
때 결코 어떠한 용도로도 U를 이용하지 않는다.
(H. J. Glock, "분석철학이란 무엇인가?", 한상기 譯, 서광사, 2008, 322쪽.)
기실 이 문장도 원문(데닛의 1991년 논문 '뇌와 그 경계The Brain and its Boundaries')의 의도를 제대로 알아보거나 이해한 채 번역된 문장은 아닌 것처럼 짐작되지만, 적어도 'derivation'을 '도출'로 번역해내긴 했다. 데닛의 문장을 인용한 글록의 문장을 인용한 이 책의 문장에 대해, 그 맥락과 의도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은 채 다의적 단어를 부주의하게 번역함에 따라, 철학적 맥락을 떠나 한국어 문장 자체로서도 전혀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무책임한 문장이 나와버렸다.
역시 사소한 것이긴 하지만 1계이론에 대한 무지의 증거로서, 246쪽에서 Russell의 'definite description'이 '명확한 기술'로 번역된 것을 들 수 있겠다. 원저자가 칭하는바 철학의 효용 중 '삭제기능(substractive function)'을 지닌 이론들이 논의되는 맥락인데, 통상 '한정 기술구, 확정 기술구' 등으로 번역되는 definite description에 대한 러셀의 논리적 분석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과 절차를 통해 존재론적으로 절약적, 삭제적, 축소적인 효과를 가져오는지를 <명확히> 숙지하고 있다면, 게다가 이런 철학적 함의가 해당 단어가 등장하는 본문의 전후에서도 논의되고 있음을 맥락적으로 <명확히> 숙지 및 이해하고 있다면, 이 영단어를 최소한 '<명확한> 기술구'로는 번역하지 않았을 것이 <명확하다>.
이렇듯 외견상으론 사소한 실수인 듯 보여도, 기실 뜯어보면 단순한 착오에 기인한 오역이라기보다는 본문의 논의맥락이나 본문에서 인용되는 논의들에 대한 주의깊은 검토와 이해가 미진한 탓에 기인한 심각한 형태의 오역으로 의심되는 문장들이 매우 많다. 이런 의심이 쌓여가다보니, 책 후반부로 갈수록 어렵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을 만나도 정합적으로 해석하려 시도하며 읽기 보다는 그저 이해가 안 가는 채로 내버려두고 글자만 읽어내려가게 되는 일이 많았다. 이런 점에서, 앞서 말했듯 미심쩍은 번역들을 자체적으로 교정 및 보정해가며 나름대로 유의미한 이해를 건져낼 수 있을 만큼의 배경지식과 철학적 숙달 수준을 갖춘 독자층에게만 구매소장이 추천될 법하다. 가장 좋은 선택지야 원서를 읽는 것이겠지만, 메타철학이라는 분야를 전공할 전문연구자가 되길 희망하는 게 아닌 바에야 이 역본을 읽어보고픈 일반 독자층이라면, 이해가 안 가는 구절에서 괜히 씨름하지 말고 쿨하게 넘기면서 대략적인 그림만을 접한다는 데에 의의를 두는 쪽으로 독서호흡을 잡길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