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양적으로 방대하고 질적으로 수준이 높아 읽는 피로도가 매우 높지만, 전반적으로 균형잡힌 구성과 개별 글들의 자체적인 탁월함 덕택에 끈기있게 읽으면 많은 소득과 지적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고급 학술서이다. 편자 서언에서 밝히듯 크게 다섯 파트로 대별될 수 있는바, 칸트, 밀, 논리실증주의, 비트겐슈타인의 전후기 수학철학적 입장 등을 살펴보는 다소 역사적인 파트(2-4章), 19세기말과 20세기 초의 big three로 일컬어지는 논리주의, 형식주의, 직관주의를 심화된 관점에서 고찰하는 파트(5-11), 20세기 후반에 활발히 논의된 수학에서의 자연주의, 유명론, 구조주의의 여러 버전들에 할애된 파트(12-18), 다소 유별되는 주제로서 수학에서의 가술주의(可述主義)predicativism와 수학의 적용가능성 개념을 살펴보는 파트(19, 20), 논리적 귀결 개념, 적합논리, 고계논리 등의 주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리철학적 논쟁을 살펴보는 파트(21-26) 등이며, 1장은 이 모든 주제들에 관한 전반적인 서론 격의 글이라 할 수 있다. 챕터별 각 글들의 서술방식도 다양하여 해설적, 논증적, 비판적, 구성적, 역사적, 비교대조적 방식 등을 취하는 다양한 성격의 글들이 포진해 있다.
하지만 이런 양적인 방대함과 다종성에서 느껴질 수 있는 압박감을 탁월하고 매끄러운 구성과 편집력으로 잘 상쇄한 듯하다. 책 전반적인 차원에서든 개별 글들 차원에서든 내용의 양과 텍스르토서의 서술 수준을 통일감 있는 구도 하에서 균질화했다는 느낌이 초독 시부터 들었다. 또한 역시 서문에서 밝히듯 (일부 파트나 주제를 제외하면) 각 입장이나 논제에 대해 우호적인 글과 비판적인 글이 최소한 한 편씩 할당되어 있어, 주제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을 기를 수 있으면서도 한 편의 글 내에서 난삽함이나 혼란을 가중할 여지가 최소화되어 있다. 내용이나 주제 자체가 지니는 난이도를 차치하면 이렇듯 적어도 텍스트로서는 읽는 피로감을 최소화한 학술자료의 모양새를 도모한 기도가 엿보이는바, 편집자인 샤피로의 기획력과 편집력이 빛을 발휘한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출간 이전에 그가 저술한 수학철학 입문서의 구성이, 가술주의 및 적용가능성 파트와 논리철학 파트를 제외하면 이 책의 구성과 거의 유사하기도 하고, 대부분의 글에서 필진들이 초두나 말미에서 샤피로의 논평에 감사하다는 말을 덧붙인 걸 보면, 이런 추측이 마냥 억측은 아닐 것이다.
이런 탁월한 편집력 하에서 수학철학 분야의 A급 학자들이 필진으로 참여한바 각 글의 자체적인 완성도나 수준 및 논증적 참신함 등도 매우 높으니, 강도높은 배경지식과 더불어 끈기있는 독서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많은 소득을 올림과 함께 수학철학 텍스트를 읽는 즐거움도 십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유사한 분량과 난이도의 자료집으로 퍼트넘과 베나세납이 편집한 "수학철학 선집" 역본을 서너번 열심히 재독한 바 있는데, 시기상으로도 다뤄지는 주제 차원에서도 이 책이 그 책에 대한 보완물이나 후속격의 텍스트로 읽힐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들었다. 퍼트넘과 베나세랍의 책은 19세기 인물인 프레게부터 괴델 등에 이르는 학자들이 쓴 비교적 고전적인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83년의 개정을 통해 G. 불로스나 C. 파슨스, H. 왕 등이 70년대에 발표한 글들도 추가적으로 수록되어 있긴 하지만, 여하간 주제 면에서는 20세기 초의 집합론적 구상과 발전사안 등으로 한정된 형국이다. 반면 이 책은 앞의 책에서 다뤄지는 주제들을 일부 포함하는 동시에 더욱 최신성을 갖춘 주제들을 당연히 다루고 있다. 수록된 글의 필진들만 봐도 이 책의 대부분 저자들은 수학철학과 수학기초론의 고전적인 시기로부터 한두세대 이후 시점에 활동한 인물들이다(타계한 지 십 년 된 S. 페퍼먼이 1928년 생으로 최연장자이고, 대부분의 필진들이 4-50년대 생이며, 그 이름이 Rayo함수로도 대중에 꽤 알려져 있는 아구스틴 라요가 1973년생으로 최연소이다). 기획 면에서도 차이가 큰데, 앞의 책이 뚜렷한 접점이 없이 기발표된 논문들 모음집인 데 반해, 이 책은 이 기획을 위해 자체적으로 새로 쓰인 글들로 구성되어 있어 훨씬 통일감과 안정감을 갖춘 자료집이다.
그러니 개인적으로 추천컨대, 역본의 번역상태가 매우 안 좋긴 하지만 퍼트넘과 베나세랍의 책을 여러번 재독해가면서 샤피로의 "수학에 관해 생각하기" 역본으로 추가적인 발전사안들에 대한 감을 꾸준히 키워간다면, 미구에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시점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물론 기초논리, 메타논리, 집합론이나 모델론과 같은 수학 기초론 등에 대한 초보적인 감이라도 기본적으로 익혀놓고 있어야 한다는 점 역시 필수적인 예비사안이다).
2. 조금이라도 가닥이 잡히거나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글들을 간략히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다:
2-1. 스튜어트 샤피로, 1장, '수학과 그 논리에 대한 철학'
전술했듯 책 전반에 대한 서론 격의 글로서 책에서 다뤄지는 모든 주제들을 개괄해준다. 말미에서 밝히고 있듯이 "생각하기"의 압축본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수학철학 및 수학기초론 분야에서 그간 이뤄져온 발전사안을 매끄럽고 평이하게 요약해내었다.
2-2. 리사 샤벨, 2장, '선험성과 적용: 근대시기의 수학철학'
수학의 선험성과 적용가능성을 중점으로 데까르뜨, 뉴튼, 라이프니쯔의 수학철학적 관점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선험적 관념론 기획이 수학의 두 측면을 만족스럽게 설명할 수 있다는 칸트의 논증을 해설한다.
2-3. 아구스틴 라요, 7장, '논리주의 再考'
논리주의를 언어-논리주의, 귀결-논리주의, 진리-논리주의로 대별하고 뒤의 둘을 다시 의미론적/구문론적 버전으로 각각 나누어, 총 다섯 가지 형태의 논리주의를 평가한다. 배후논리가 1계인지 2계인지에 따라 각 형태들 간 함축관계를 논증적으로 명료하게 정리해내고, 최소적합성이나 'recarving'(마땅한 역어를 아직 선정하지 못했다) 등의 개념을 통해 수학에 대한 논리주의적 번역에 가해질 수 있는 제한사항과 제기될 수 있는 문제점 등을 고찰한다. 명료한 비판적 관점과 더불어 저자 고유의 구성적 글쓰기가 돋보여 매우 흥미롭게 읽으면서, 논리주의에 대해 이런 차원의 평가가 가능하다는 점에 감탄하였다.
2-4. 마이클 데틀렙슨, 8장, '형식주의'
고전적인 소위 빅 쓰리 중 유일하게 한 장만이 할당되었지만, 보통 30쪽 내외에 이르는 여타 글들과 달리 80쪽이라는 분량으로 균형을 맞추었다. 그런 만큼 다양하고 방대한 내용을 통해 형식주의의 역사적 기원과 핵심 착상들을 다양하게 추적하되, 이를 저자가 생각하는바 형식주의의 본질에 대한 특정 관점 하에서 갈무리하여 제시한다. 실린 글들 중 가장 역사적인 성격이 짙은 편.
2-5. 칼 포시, 9장, '직관주의와 철학'
직관주의의 교주 브라우어 및 그의 사도들인 A. 하이팅과 M. 더밋의 직관주의적 핵심 착상들을 두루 살펴본다. 해설적 성격이 짙어 평이하게 읽히지만, 많은 내용을 다루려다 보니 개별 사안들에 대한 서술이 짧아 아쉬움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말미에서 칸트의 이율배반에 대한 직관주의적 해소법이 소묘된 부분이 무척 흥미로웠다.
2-6. D. C. 맥카티, 10장, '수학에서의 직관주의'
순수수학적인 사안들이 많이 등장하고 모든 논의가 자연언어와 논리식들이 혼합된 준형식적 증명들로 이뤄져 있어 읽기는 매우 어렵지만, 실제 수학적 활동에서 직관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글이었다. S. 쾨르너의 "수학철학"에서 "직관주의 수학철학은 그저 직관주의 수학을 직접 하는 것"이라는 기조의 문구를 본 기억이 있다. 그런 기조를 저변에 둔채 직관주의가 수학에서 실제로 쓰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로서의 논리체계 뿐만 아니라, 기초산술학, 실수론, 모형과 양상성, 위상수학과 토포스이론 등 실제 수학분야에서 직관주의적 실천행위가 어떻게 이뤄질 수 있는지를 다양하고도 상세하게 실연해보인다. 다만 직관주의가 수학을 결코 빈약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마지막의 논평은 논증적으로 이해하질 못하였다.
2-7. 로이 쿡, 11장, '직관주의 再考'
자연언어의 귀결관계에 대한 모형화로서의 논리라는 관점에 입각하여, 논리상항과 귀결관계에 대한 대수적 구조로서의 논리체계에 대해 모종의 모호한 연속성을 부여하는 논증을 구성한 뒤, 이를 통해 직관주의 논리와 고전논리 간의 구분선을 모호하게 흐림으로써, 최종적으로 논리학에 대한 다원주의적 관점을 소묘해보인다. 여러 논평과 비교, 정의와 원리들을 통한 구성적 논증력이 돋보이는바 매우 흥미롭게 읽은 장들 중 하나이다.
2-8. 마이클 D. 레스닉, 12장, '콰인과 믿음의 망'
콰인 식 자연주의와 그에 따른 수학철학적 귀결, 이를 뒷밭침하는 필수불가결성 논증 등을 중점적으로 살펴본다. 콰인의 인식론적, 존재론적, 과학철학적 논제들을 수학철학과 자연스럽게 결부시켜 평이하게 해설한다.
2-9. 찰스 치하라, 15장, '유명론'
존 버지스와 기디언 로젠이 수학에서의 유명론과 실재론을 비교평가하면서 실재론에 우호적인 입장에서 공저한 저서 "대상 없는 학과"에 대한 짤막한 해설 및 논평에서 시작해, 버지스와 로젠이 유명론에 가하는 비판을 조목조목 반박한 뒤, 자신의 구성가능성 양화사를 도입하여 수학언어를 유명론적으로 구성하는 작업을 간략히 소묘한다. 간결한 논증적 서술과 구성적 실례를 통해 전체 요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해난다.
2-10. 존 버지스, 기디언 로젠, 16장, '유명론 再考'
수학적 유명론의 존반적인 논증구조를 분해하여 이로부터 자연주의적인 개정적 버전, 소원화된 개정적 버전, 내용-/태도-해석적 버전 등 유명론의 네 가지 형태를 추출해대어, 각 버전에 대해 가능한 반론, 재반론, 최종 평가 등을 논증적으로 차근차근 살펴본 뒤, 마지막엔 스티븐 야블로가 켄들 월턴의 가장(가식, …인 체 하기)makr-believe 개념을 빌어와 구성한 태도-해석적 버전의 유명론을 간략히 소개 및 평가한다. 고전적이고 정통적인 스타일의 논증적 철학글쓰기가 돋보인다.
2-11. 제프리 헬먼, 17장, '구조주의'
기반을 두고 있는 구조가 무엇인지에 따라 구조주의를 집합론적, 독립-보편자적, 범주론적, 양상적 형태로 나누고, 기초론적인 관점에서 제기되는 문제에 따른 평가지표들을 통해 각 형태들을 평가한 뒤, 최종적으로 각 지표상 단점이 가장 적은 것으로 드러난 범주론적 형태와 양상적 형태의 결합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글을 끝맺는다. 순수수학적인 내용과 기초론적으로 메타적인 논의들이 주를 이루어 명확하게 이해하긴 어려웠지만, 샤피로 식의 실재론적 구조주의와는 색다른 제거주의적 구조주의의 구체적인 형태를 상세히 접할 수 있게 해준 글이었다.
2-12. 프레이저 맥브라이드, 18장, '구조주의 再考'
(메타논리적 특성으로서의 불완전성이 아니라) 수학적 대상의 존재론적 성격으로서의 불완전성 개념을 중심으로 레스닉 식과 샤피로 식의 구조주의를 해설 및 논평한다. 구조적 동형성이나 동일성 기준, 수학적 대상에 대한 존재론적 개입 등의 개념이 두 사람의 실재론적 구조주의에서 어떤 식으로 다뤄질 수 있는지 해설한 뒤, 구조주의의 인식론적 동기와 존재론적 목표점 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상충지점이 있음을 설득력 있게 논증해낸다.
2-13, S. 샤피로, 21장, '논리적 귀결, 증명론, 모형론'
증명론과 모형론의 기초적인 개념들을 제시하고 이를 통해 증명론적/모형론적 귀결개념과 그 메타적 관계들을 간명하면서도 체계적으로 살펴본다. 읽을 때마다 느끼는 바이지만 샤피로는 교육적인 측면에서 효과적이고 탁월한 방식으로 글을 참 잘 구성하는 학자이다. 논의에 필요한 사안들을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제시해 나간 뒤 앞서 확립된 것들의 총체를 적재적소에서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 민감하거나 쟁점이 될 만한 부분에 이목을 효과적으로 집중시킨다. 역시 샤피로가 쓴 25장, '고계논리'와 더불어, 어렵긴 하지만 매우 흥미롭게 읽으면서 모형론과 수리/메타논리에 대한 관심을 적극 환기해준 글이다.
2-14. 다그 프라비츠, 22장,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본 논리적 귀결'
앞선 샤피로의 글에서처럼 A. Tarski식으로 제시되는바 모형론적 귀결개념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수학에서 증명이라는 절차의 인식론적 측면을 포착하고자 저자가 정의하는 규준적canonical 증명/논증 개념을 활용하여 고전논리의 논리규칙을 구성주의적으로 재구성한다. 전반부의 평가적 논증파트가 무척 세밀하고 복잡하지만,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논리적 귀결개념을 어떻게 다듬어낼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접할 수 있게 해준다.
2-15. 닐 테넌트, 23장, '추론의 적합성'
소위 실질함축의 역설을 해소하고자 등장한 적합논리 체계를 저자 고유의 방식으로 수정한 뒤 G. 겐첸의 자연연역체계 및 시퀀트 계산 체계에서 어떻게 재구성될 수 있는지 예시해보인다. 역설을 피하기 위해 추론에서의 인식론적 소득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이것이 유지되는 누적적 연역절차의 얼개를 확립한 뒤, 이를 구체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제한사항으로서 자연연역/시퀀트계산 체계에서의 약화 및 컷 연산 금지조치의 방법론적 정당성을 논하고, 이를 직관주의논리와 고전논리 각각에 적용하여 재구성해보인다. 저자가 스스로 차별점을 강조하는 앤더슨과 벨납의 적합논리체계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여러 기술적인 세부사항들에 대한 선지식이 거의 전무해 4회독까지도 논의를 따라가기가 거의 불가능했던 글이다.
2-16. J. 버지스, 24장, '적합성은 필요하지 않다'
실질함축의 역설을 방지하고자 하는 적합주의 진영의 주장이 규범적인 것인지 아니면 기술적인 것인지 논구한 뒤, 역설을 방지하기 위한 세 가지 조치인 약화 금지, 귀결의 이행성 거부, 선언적 삼단논법 거부 각각이 적합논리 진영의 주장과 부합할 수 있는지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적합논리를 두고 벌어진 소위 노트르담 형식논리저널 논쟁의 중심에 섰던 인물인 만큼, 적합주의 진영에 대한 효과적인 공격을 간명하게 잘 정리하여 제시한다.
3. 2년 반이라는 기간에 걸쳐 다섯 번을 재독한 성과는 이 정도이다. 수록된 26편의 글들 중 대강 반 남짓 밖에 이해를 못한 데다가 위 글들 마저도 4-50% 정도 밖에는 이해를 못했으니, 좀 더 만족스런 성적에 도달하자면 앞으로서 서너 번은 더 읽어얄 듯하다.
희한하게도 올 초 늦겨울에 코파의 "의미론적 전통"을 5회차 재독했을 때처럼, 이 책도 4회차 재독까지는 의무감에 꾸역꾸역 글자만 읽는 일이 많다가 어째 이번 독서에는 이해의 가닥이 잡히는 부분이 확 늘면서 좀 더 성실하게 꼼꼼히 읽게 되었다. 특히나 그전까지는 읽는 일 자체가 불가능했던 논리철학 파트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확 늘면서, 여타 책들을 뒤적이고 인터넷이나 챗지피티를 들볶아가며 한 문장 한 문단씩 제대로 이해하고 넘어가려는 오기가 절로 들었다. 퇴근하고 나서 잠자리 들기 전까지 읽는 두 시간 여 동안 고작 세 쪽을 읽어나가는 날도 있었다. 그 바람에 읽는 기간은 달포 하고도 두 이레가 걸렸으니, 통독에 한 달이 채 안 걸리던 초독 시에 비해 읽는 속도는 차츰 더뎌져 온 셈이다.
그치만 외적인 강압에 쫓겨 억지로 하는 게 아닌, 스스로가 좋아 흥미를 느껴가며 혼자 해나가는 공부의 묘미는 이런 데 있는 것 같다. 전문가의 지도나 가르침이 없어 느리고 더디고 막막하지만, 평가나 시험이나 제출해야 할 결과물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니 그런 막막함이 초조함이나 스트레스로 변모할 일은 없고, 외려 다른 책들을 물색해가며 더 전진하고자 하는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동기로 승화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재독으로 모형론이나 메타적인 수리논리에 대한 관심과 갈증이 확 일면서 유관 원서들도 몇 권 발굴하여 미구에 구매하기로 다짐짓하게 되었다. 숙제는 늘어났어도 내가 스스로에게 부과한 것이라, 그 책들도 붙들고 끙끙대며 씨름할 기대감이 외려 든다. 지식 면에서도 방향 설정 면에서도 소득이 참 많았던 뿌듯한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