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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paysment님의 서재
1. 11년 전 초여름 일이다. 엄마가 오토바이로 신문배달을 하다 넘어져 왼손 새끼손가락 한 마디가 떨어졌을 때였다 아프고 겁나는 와중에도 엄마는 피투성이 마디 하나를 오른손에 꼭 쥐고 있었다 부모님 주변 누군가 절단된 데 봉합 신경치료는 평택 모모한 병원이 알아준다길래 그 곳으로 갔다 마침 2학년 여름방학 초엽이던 나는 달포 조금 넘는 동안 병원에서 엄마와 지냈다 보르헤스와 데리다를 많이도 읽던 날들이었다 8인실 넓은 창으로 지는 초여름 오후 태양이 그리는 동그라미가 나만의 알렙 같다고 느꼈다 매일 아침 회진을 올 적마다 모호하거나 별 정보적이지 않은 허툰 말만 되뇌던 주치의는, 결국 신경이 살아나지 못해 다시 절단수술을 해야겠다는 통첩을 팔 월 중순에야 내뱉었다 작으나마 신체 한 부위가 없이 살아야된다는 생각에 엄마는 손가락 마디 떨어지던 날보다 더 섧게 울었다 그 해를 비롯, 몇 녗간 가을 겨울만 되면 엄마는 중앙시장서 장봐온 껌은 봉투를 왼손에 들질 못하였다 마디 없는 절단면이 시렵다 했다

2. 재작년 12월 말일이자 딱 연말이던 낮, 오토바이 사고로 발목 골절을 당했다는 전화를 아빠에게 받았다 코로나 검사로 아산 충무병원에 갔다가 별 문제 없으면 천안 충무병원으로 이동한다 하였다 늦오후 즈음에야 코로나 음성이 확정되어 나는 해 져가는 매선 바람에 충무병원으로 가 응급실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코로나 관련 사항은 아빠를 실어온 사설 응급차 관계자가 알려주었고 응급실 접수처 측에도 그리되었다 병실을 안내받고 올라갔는데, 코로나 검사결과가 어떻게 됐냐는 질문을, 간호사를 비롯 병원 내 서로 다른 관계자들이 도대체 세 번 씩이나 묻는 꼬라지를 보며, 여기는 이런 사소한 사항에도 일을 개떡으로 처리하는 곳이구나 바로 직감이 왔다 사흘 뒤 수술 집도가 예정된 의사에게 내려가 동의서를 쓰기 앞서 아빠의 다친 상태에 대한 설명과 수술 계획을 듣는데, 대충 여차저차 배치된 이런 형태의 뼈 두 개 이상에 발생한 복합골절을 필론식 골절이라 한다 했다 방금까지 논리학사를 읽으며 필론식 조건언에 대해 읽다 내려온 나는, 필론식 골절 수술이 무척 까다롭고 실패율도 대체로 높단 말에, 논리학 강의에서 필론식 실질 조건문의 진리조건을 처음 배우던 때처럼 긴장이 되었다 이레 조금 지나 수술날, 수술이 끝난 직후 의식이 돌아온 아빠는 동물처럼 울부짖으며 아파했다 수술 동의서에서 동의체크했던 추가 마약성 진통제를 간호사에게 신청하려 중앙으로 가 말하니, 집도 의사의 구체적인 지시가 있어야는데 지금 바로 연속으로 다른 수술을 들어가 당장은 지시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란다 이게 도시 뭔 쌉똥같은 소린지, 이미 동의체크한 사항이면 미리 지시받고 준비를 해둬야 하는 거 아닌지, 일을 왜 이따구로 처리하는지 따져묻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렇게 아빠가 세시간 여를 울부짖는 소릴 듣고 나서야 진통제가 왔다 주변에 개 웬수같은 새끼가 혹여 손모강지나 발모강지라도 뿌러지면 반드시 천안 충무병원을 추천하겠다고 저주스런 마음으로 다짐짓했다.

3. 병원을 동네 근처로 옮기고, 재활과 물리치료를 받고, 퇴원을 하고 나서도, 한달 두달 세달이 지나도록 아빠 발목의 붓기는 여름 초입에 시장으로들 나오는 통연근마냥 땡땡하게 부어만 갈 뿐 가시질 않았다 미심쩍었던 아빠가 다시 충무병원을 찾았는데 당시 집도했던 의사는 그만 두고 새 의사가 와 있었다 사진을 찍어보고 난 그 의사가 하는 말이 ‘수술이 안 되었다‘ 이런 표현을 썼다 작은 뼛조각 하나가 봉합되지 않아 염증이 발생해 속에서부터 난 부종이 계속되어온 것이다 분명 수술 직후 확인했던 사진은 뼈 모양새가 아주 온전하고 이렇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된거냐는 아빠의 물음에, 겉모양과 다르게 애초에 수술이 제대로 안된 케이스라 했다 한다 그 얘길 들은 나는 몇 달포 전의 저주스런 마음을 더욱 강하게 되새김하고는 다가동에 지진이라도 나서 병원 건물이 폭삭 무너지길 신에게든 악마에게든 간절히 염원했다 결국 그 뼛조각은 그 의사가 써준 추천서로 순천향 병원에서 빼게 되었다

4. 아빠 사고나기 전 겨울 초입에 엄마는 눈이 자꾸 시리고 눈물이 나서 버들육거리에 있는 큰 안과를 찾아갔다 1층 안경집만 가본 바 있던 나는 접수실부터가 삐까번쩍한 걸 첨 보고 놀랐다 진료를 금방 마치고 내려온 엄마에게 어찌됐냐 물으니, 식당 일을 그만두는 수밖엔 없다는 말을 들었단다 식당일 하시는 아주머니들이 종일 눈앞에 섰는 가스불 때문에 으레 이렇게 눈시리고 아픈 거 세상천지 삼척동자 해남 윤씨 종갓집 막냇며느리 배냇딸도 다 아는 사실인데, 하나도 의학적이지 않은 그딴 개쌉소리를 진찰결과랍시고 내뱉으며 이 큰 건물로 안과 짓고 퍼질러 앉아 의사선생님 소리 들을라 치면 까짓거 나도 다 하겠다며, 삐까번쩍한 병원건물 뒤편 쥐좆만한 주차장에서 차를 돌리며 쌍욕을 퍼부었다

5. 아침에 일어나 앉자마자 목과 코 사이가 따끔거렸다 바로 감기임을 알아챘지만 몸을 못 가눌 정도는 아닌 거 같아 출근을 했다 오전 내내 라인에 서서 물건 받는 일이 점점 더 힘들어졌다 더 버티다 병 키우지 말고 오후엔 쉬자 마음먹어 부장님께 조퇴를 구하고 나왔다 숙소 근처 달랑 하나 있는 의료원이 신통찮다는 말에, 차로 삼십 분을 달려 백암 쪽으로 갔다 가보니 역시나 신속항원검사부터 하는데, 결과 뜰 때 까지 병원 밖 뒷골목에서 기다리다 들어가니, 코로나는 음성인데 이틀 후에도 상태가 호전이 안 되면 다시 오라는 말만 하고 진료가 끝났다 음성이어서 다행인 거도 알겠고 잠복기 고려해서 다시 오라는 말도 이해를 하겠는데, 정작 지금 내가 아파서 찾아온, 이틀 후에도 호전이 안 되면 다시 와야하는 바로 그 증상이 어떠한지에 대한 질문은 일절 없다 어디가 가장 아픈지 무엇이 가장 심한 증세인지 평소와 다른 부수적인 신체 변화는 없는지 아무 묻는 것 없이, 압설막대로 혀 눌러 목구녕 한 번 들여다보는 일 없이, 그저 처방전을 받으란다 으레 이런 식으로 처리해온 동네 병원이겠거니 싶다 환자가 ‘감기로 왔어요‘ 그러면 그 환자가 앓는 감기만의 특수성을 상세히 알아내려는 여하한 노력도 없이, 그저 이적진 처방해추면 귀납적으로 높은 확률로 잘 들어왔던 고만고만한 약들 띡 처방해주면 그만인 그런 형편없는 여러 동네 소아과들 중 하나였던 것뿐이다 몸살에 운전하느라 지친 나는 역시 또 따져 묻는 일 없이 병원을 나섰다 약 먹고 오후에 푹 자고 일어나니 괜찮아지긴 했지만, 모든 학문과 그 응용에서 중요한 것은 답이 아니라 답을 구내해는 과정이다

6. 일련의 크고작은 일들을 겪으며 나는 의사 및 의료 관계자란 존재자들을 일절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안 믿는 것 이상으로 쌍욕을 퍼붓게 되었다 인간 신체를 탐구하며 그 기능적 결함을 해결하고자 분투해온 의학적 노력이 쌓아올린 지식 자체는 분명 찬란하고 대단한 것이지만, 그 지식을 여하한 창의성도 없이 기계적으로만 십 몇년을 달달 대가리에 쳐 욱여넣어 의사면허 받고 병원 하나 떵 차려놓고는 그저 매일 똑같은 모양새로 처방해내는 지식 소매상에 지나지 않는 의사들의 행태가 너무나 혐오스럽다 하나도 전문적이지 않아 보이는 형편 없는 똑똑한 멍청이들이 구할이다  하기사 찬란한 지식에 기생하되 그 자체로는 찬란하지 않은 후루꾸들 득실대는 분야가 의학 뿐이겠냐마는 말이다

- ‘22.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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