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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림님의 서재
  • 빈 옷장
  • 아니 에르노
  • 11,250원 (10%620)
  • 2020-05-25
  • : 901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처음 에르노의 작품을 접한 것은 《사건》이었고, 그 후 바로 다른 작품들을 찾아 읽었다. 《부끄러움》, 《한 여자》, 《남자의 자리》, 《단순한 열정》... 작가가 '이제부터 사실만 쓰겠다'고 공언했던 것과 같이 이들은 모두 자전적 이야기이다. 그의 작품들은 진솔하고 민망하리만치 솔직하며, 강렬한 데가 있다. 에르노의 데뷔작은 드니즈라는 이름의 소녀가 주인공인 소설이었고, 사실 이 또한 자전적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고서는 한층 더 솔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모든 천박한 용어들과 현실보다 적나라한 경험, 감정들.. 다시 한 번 충격을 받았다. 어쩌면 데뷔작이기 때문에 그저 작가로서 독자를 부드럽게 안는 스킬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긴 이왕 이런 내용을 쓰기로 한 이상 무엇이 문제겠는가마는.

에르노는 계속해서 자신이 왔다갔다 헤매야 했던 두 세계를 언급한다. 그는 한 노동자와 강인했던 그 아내 사이에서 태어났고, 후에는 학생이(여기서 학생이라는 말은 남들은 흔히 될 수 없는, 12살에 공장으로 가지 않고 대수학을 배운 사람이라는 것을 뜻한다.), 더 후에는 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그가 '된' 것은 그의 안에 있는 것 모두를 절대 보여줄 수 없다. 오히려 그 쪽, 문화적인 요소들은 모두 후천적으로 배워낸 것이다. 그는 평생 부모님의 식료품점과 카페, 그곳을 찾는 사람들과 상스러운 파롤들을, 결국 자신의 삶이었던 것들을 혐오했다. 아니, 그것들이 자신의 삶이었고 때문에 혐오했던 것이다. 그의 부모는 공부하는 학생인 딸을, 심지어 언제나 좋은 성적만을 가져오는 그 딸을 자랑스러워했지만 남들 앞에서 자랑스러워하는 듯이 보이는 것은 피하려 애썼다. 그들이 딸(드니즈 혹은 아니)을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관심을 기울였는지 혹은 우월감 내지는 무언가를 느꼈기 때문에 지지했는지는 솔직히 확신할 수 없다. 어쨌든 그들은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쳤다고 말한다. 내 생각에 그들은 이미 느꼈던 것 같다. 자기들의 딸이 이미 다른 세계에 속해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것을.

그 다른 세계에서 아이는 살아남기 위한 행동 양식을 터득한다. 공부를 통해 좋은 평판을 얻어내는 것. 자신의 카페에서 겪은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고 책에서 본 여러 고성과 관광지들을 꿈꾸듯이 말하는 것, 냉장고가 생겨 차가운 요거트를 대접할 수 있게 되어도 절대 학교 친구들을 초대하지 않는 것.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동시에 다른 모든 여자아이들처럼 자신과 남들의 성에 눈을 뜬다. 시끌벅적한 음담패설과 뒤뜰에서 아무렇게나 소변을 보는 더러운 곳에 살았어도 어머니는 항상 아이를 밀어냈다. 드니즈가 다른 남자아이와 함께 걷는 것을, 말 섞는 것을 본다면 어머니의 반응은 불 보듯 뻔하다. 그러나 드니즈는 (어머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주둥이를 맞대고' 다니는 것 까지 들켰다. 그 순간 어머니가 느꼈을 부끄러움. 모범생이자 '더러운 년'인 드니즈가 느꼈을 부끄러움. 평생 자신의 집이 카페라는 것에서, 그 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사실에서,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부끄러워 한다는 사실에서 느꼈을 부끄러움.

이 모든 폭력 속에서 자라난 아이는 빈 옷장을 열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려 한다.

《빈 옷장》의 모든 페이지에서 나는 내가 읽은 그의 다른 모든 작품들을 느꼈다. 마치 세상 모든 존재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듯이. 작가의 칼 같은 글쓰기, 백색의 글쓰기가 다시금 여실히 느껴지는 글이었다. 석사 논문을 에르노로 쓰기로 정하고, 이번에도 언어의 사용과 그녀가 속했던 두 세계의 괴리에 집중하여 읽어보았다. 번역에서 약간의 의문점이 없었던 바는 아니었고, 원문을 살펴보며 다시 비교해보려 한다. 에르노의 세계에서 언어란 모든 형상이자 질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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