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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사노바의 스페인 기행
  • 지아코모 지롤라모 카사노바
  • 8,820원 (10%490)
  • 2002-10-25
  • : 129
스페인에 관련된 책을 많이 읽으려고 하는데, 사실 읽기가 쉽지 않았다. "스페인의 역사" 이런 류의 두꺼운 입문서를 읽기전에 쉬운 소설 같은 책은 없을까 둘러보는데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책을 들어서 잠시 내용을 보니, 카사노바가 18세기에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만난 여자들에 관한 얘기가 많이 나오는 것 같았다. 오호라, 바로 이거야! 내가 찾던 거지! 스페인 여자들과 사랑을 나누면서 스페인 문화도 배워가고, 그 당시 시대상황도 엿볼수 있겠구나~

 

베네치아 출생으로 프랑스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인텔리였으며, 유럽의 어느 나라에서든 사람들의 환대를 받고, 평생 천 명이던가? 의 수많은 여자와 관계를 가졌다던 카사노바. 인간적으로도 끌리는 이 사람이 펼쳐놓을 스페인의 문화,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하니 이 책을 당장 읽고 싶어졌다.

 

게다가 책장을 열자마자 나오는 '옮긴이의 글 - 카사노바, 호색가 너머의 삶을 좇아' 를 보면 더더욱 이 책을 읽고 싶어진다.

 


카사노바 연구가인 에블린 하메그니스의 표현을 빌자면, "그는 만국공통어였던 프랑스어를 구사하며(.......) 놀랄만큼 끈기있게 그 당시의 가장 견식있는 계층으로 슬그머니 끼어들어갔다. 어디를 가나 그는 꼭 자기 집에 머무르는 것처럼 편안했다. 공기처럼 자유롭고 모든 민족적 편견에서 벗어난 그는 터키의 석학과도, 쾰른의 선거후와도, 암스테르담의 유대인 선주와도 공개적인 토론을 벌였다." 낯선 곳에 가도 그는 이방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가 속한 그 드넓은 나라에는 국경이 없었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프랑스어로 말하고 생각했다. 그 나라는 '대화와 우아(優雅)의 유럽'이라고 불렸다."(리디아 프렘의 『카사노바 혹은 행복 연습』중에서)하지만 새로운 사회에 금세 적응하면 뭐하겠는가. 그 무엇도, 그 누구도 결코 그를 같은 장소에 붙잡아두지 못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구두끈을 매어 도망치고, 탈출하고, 말에 박차를 가하고, 국경을 통과한다.

(......)

군인, 밀정, 외교관, 작가, 모험가, 그리고 가장 유명한 호색가로서의 그의 명성을 확립시킨 그의 자서전 『나의 인생 이야기』는 그가 122명의 여인과 벌인 흥미로운 연애담을 들려줄 뿐만 아니라 18세기의 풍습과 생활을 탁월한 솜씨로 상세하게 묘사한다. 그는 밑바닥에서 꼭대기까지, 영국에서 러시아에 이르는 18세기 유럽 사회를 꼼꼼하게 묘사하였다. 또한 그는 매춘부에서 명문귀족에 이르는, 화장실에서 사실에 이르는, 부두에서 궁궐에 이르는 모든 것을 세심하게 기록하였다. 그의 묘사는 다른 모든 에로틱 작가들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 따라서 온갖 부류의 인간형이 등장하는 이 작품은 그 어떤 18세기 소설보다 더 깊이 있게 우리를 매료시킨다. (5-7쪽)

 

이 때만해도, 이 책을 읽으면 매력적인 카사노바의 모습을 볼 수 있겠구나, 라는 기대에 설레였다. 하지만 책을 읽기 시작하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 책이 내가 생각했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꺠닫는다. 카사노바는 1767년 말에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났다고 하는데, 이 때 그의 나이는 마흔 둘이었다. 그래서 자신이 슬슬 늙어가고, 여자들도 예전처럼 자신에게 관심을 많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씁쓸해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건만 들릴락말락 한숨만 나왔다. 샤를로트가 내 가슴에 남겨놓은 상처도 아직 아물지 않았는데 이제는 여자들이 옛날처럼 그렇게 나를 환대하지 않는 것을 보니 마음이 영 쓰렸다. (56쪽)

 

이 글을 읽으니 얼마나 서글픈지. 여자들의 외모만 세월 속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남자들의 외모도 점점 매력이 없어지는 것이다. 천하의 카사노바도 자기가 늙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읽다보면 이 책의 제목이『카사노바의 스페인 기행』보다는 『카사노바의 스페인 굴욕』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카사노바의 스페인 기행은 다사다난했다. 구설수, 감옥 투옥, 시기와 질투 등으로 얼룩진 스페인 여행기는 이미 절정의 시기를 지난 카사노바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젊은 시절의 카사노바는 참 매력적이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일단 사람이 굉장히 똑똑하고, 스스로도 자신이 다른 누구보다도 똑똑하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연애에 있어도 여유있고 느긋하다. 안달복달하는 아마츄어같은 모습은 없다. 단지 정확한 타이밍을 노리는 노련함이 있을 뿐이다.

 

카사노바의 관찰력을 보여주는 예가 있다. 역시 언어에 일가견이 있어서 그런지, 스페인의 도시이름을 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과달라하라와 알칼라를 거쳐 마드리드까지 가는 동안 나는 앞으로 내가 머무르게 될 나라에 대해 조금씩 조금씩 알게 되었다. 과달라하라와 알칼라! 오직 아(a)라는 모음밖에 안 들리는 이 단어들, 이 이름들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것은 스페인을 수세기 동안 지배했던 모르 족의 언어가 이 나라에 남겨놓은 수많은 흔적 중 하나이다. 아랍어가 '아' 투성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학자들은 '아'가 모든 모음들 중에서 가장 쉽고 자연스럽기 때문에 아랍어야말로 모든 언어들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음이 틀림 없다는 결론을 끄집어냈다. 그러므로 알라, 아찰라, 아란다, 알마다, 알라마타, 알바다라, 알칸타라, 알카라스, 알카발라 등 다른 모음은 없는 아름다운 스페인어 단어들을 세련되지 못한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 이론의 여지없이 스페인어는 입술을 둥글게 하여 낭랑하고 활기차고 위엄있게 발음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가장 뛰어난 시와도 조화를 이룰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감미로움을 훼손시키는 세 개의 후음만 없다면 이탈리아어만큼이나 음악적이기까지 하다. (39,40쪽)

 

그리고 앞에서 말했듯이, 카사노바의 묘사는 굉장히 자세해서 그림을 보는 것 같은데, 그 묘사로 인해 '판당고'라는 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 그것은 '판당고'라는 춤으로, 나는 내가 이 춤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그건 큰 착각이었다. 나는 이 춤을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극장에서만 봤는데, 여기서는 댄서들이 스페인 민족 특유의 동작을 취하지 않아서 춤 자체가 참으로 매력적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내 글솜씨로는 이 춤을 제대로 묘사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남녀 한 쌍이 서로 마주보고 춤을 추는데, 세 걸음 이상은 절대 떼지 말아야 하며, 캐스터네츠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박자를 맞추면서 음악에 따라 최대한 선정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남자의 자세는 행복한 사랑의 행위를, 여자는 동의(同意)와 황홀, 쾌락의 도취를 보여준다. 내가 볼 때, 어떤 여자든 남자와 함께 이 춤을 추게 되면 그에게 모든 걸 맡겨버리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64쪽)

 

하지만 한 편으로는 곧 스페인 여행을 떠날 나를 슬프게 하는 예리한 지적도 있었다.

 


이 나라 남자들은 일반적으로 잘생긴 쪽보다는 못생긴 쪽에 가깝다. 하지만 여자들은 아주 예쁘고, 욕망에 불타오르고 있으며,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염탐하려고 주변을 얼씬거리는 자들을 속여넘기기 위한 계략에 대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그들은 과감하게 위험에 맞서고 도전하는 연인을 소심하고 공손하고 신중한 남자들보다 더 좋아한다. 물론 교태를 부려가며 이런 남자들을 붙잡아두려고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경멸하는 것이다. 그들은 눈으로 말하는 법을 완벽하게 터득해, 산책할 때나 교회나 공연장에서 맘에 드는 남자에게 이 유혹의 언어를 사용한다. 남자는 이런 점을 십분 이해하여 기회를 포착하고 이용할 수만 있다면 분명히 성공을 거둘 수가 있다. (44쪽)

 

뭐 하지만 다들 안토니오 반데라스처럼 생기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못생겼다" 라는 말은 참... 예리하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점은 스페인은 정열의 나라이고, 개방적으로 생각하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남녀관계에 대한 규율이 많았다는 점이다. 판당고라는 춤도 엄격하게 금지되었던 적이 있었다고 하고, 일반적으로 사회적인 시각이 성에 대해 개방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이게 좀 놀라웠다. 어쩌면 억압은 스페인의 역사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었고, 성에 대한 것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무어인으로부터의 억압, 가톨릭 억압, 파시스트의 억압 등등... 그래서 판당고나 플라멩코와 같은 정열적인 춤으로 자신들의 억압된 감정을 분출했는지도 모르겠다.

 

판당고는 도대체 뭐야? 가이드북에서는 못봤던 건데... 이것도 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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