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All about you님의 서재
  •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F. 스콧 피츠제럴드
  • 9,900원 (10%550)
  • 2009-01-02
  • : 2,859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여러가지 버전의 '벤자민 버튼'이 쏟아져나왔다. 판본마다 번역은 조금씩 달랐는데, 목차만 봐도 뚜렷한 차이를 볼 수 있다. 그 많은 판본 중에 펭귄클래식의 '벤자민 버튼'을 선택한 것은 영어 원본을 준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끼워팔기 상술에 약한, 현명한 소비자라고 자부하지만, 회사의 공짜전략에 휘둘리는 녀자인 것이다.

 

이 책의 좋은 점은 앞에 작가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서문'이라는 제목 아래에 22쪽에 달하는 작가 소개는, 논문 한 편을 읽고 시작하는 느낌을 주었다. 우연히도 나는 이 책을 읽기 바로 전에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는데, 짧고 빨리 읽혀지는 것에 비해서 이해하기가 힘들고, 정리된 느낌이 없었다. 이 책의 서문을 읽으면서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내 느낌을 정리하고, '벤자민 버튼'에 대한 개념을 잡을 수 있었다.

 

피츠제럴드와 재즈시대 이야기. 재즈시대 (Jazz Age)는 1918-1929의 시기로 제 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대공황이 오기 전의 시기라고 한다. 미국 주식시장의 가격이 치솟고, 전통적인 가치가 몰락하면서 사람들은 자유롭고, 예술과 신기술등에 열광하게 된다. 피츠제럴드의 작품에서 주인공들은 대부분 이런 시대에서 호사로운 인생을 누리는 사람들이다. 자주 등장하는 요소로는 예일, 옥스퍼스, 하버드 같은 아이비리그 대학교 혹은 사립 고등학교에서 받은 교육, 배경 도시로는 뉴욕, 그리고 사교를 위한 파티 등이 있으며, 이는 주인공을 더욱 매력적인 요소로 부각시킨다.

 

이 책의 단편 11편은 이런 작가의 성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매력적인 주인공들과, 작가의 날카로운 관찰력과 심리묘사는 소설을 더욱 흡입력있게 만든다.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단편,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는 영화와는 많이 다른 줄거리다. 영화는 벤자민 버튼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었다. 어렸을 때는 나이 차이를 느끼다가, 30대 언저리 어느 순간 서로의 나이가 맞아서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순간이 있고, 그러다가는 서서히 어긋나게 된다는 연애담이다. 하지만 원작인 소설에서는 그런 순애보 같거나 애절한 사랑은 없다. 여주인공인 힐데가르드는 처음부터 나이 차이가 많은 벤자민 버튼의 늙은 모습 그대로와 사랑에 빠진다.

 


"나는 당신 연배의 남자들이 좋아요." 힐데가르드가 말했다.

"젊은 남자들은 너무 멍청해요. 대학에서 얼마나 샴페인을 많이 마셨는지, 카드 게임을 하다가 돈을 얼마나 잃었는지 저에게 얘기하죠. 당신 나이 남자들은 여성의 가치에 감사할 줄 알아요."

벤자민은 금방이라도 프러포즈를 하고 싶은 자신을 느꼈지만, 애써 그 충동을 삼켰다.

"당신은 아주 낭만적인 나이이지요." 그녀가 말을 이었다.

"쉰 살. 스물다섯 살은 너무 처세에 능하고, 서른 살은 과로로 활기가 없는 편이죠. 마흔 살은 온갖 사연들이 많은 나이라 시가 한대를 다 피우며 이야기를 해야 하고요. 예순 살은, 아, 예순 살은 거의 일흔이잖아요. 하지만 쉰 살은 원숙한 나이이지요. 나는 쉰 살을 사랑해요."

벤자민에게 쉰 살은 영광스러운 나이로 생각되었다. 그는 쉰 살이 되기를 열정적으로 갈망했다. (270, 271쪽)

 

하지만 벤자민이 점차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혹은 어려짐에 따라서 벤자민은 점점 나이가 들어 빛바래가는 아내에 대한 환멸을 느끼기 시작한다.

 


... 벤자민 버튼이 유일하게 걱정하는 것이 한 가지 있었다. 그걳은 아내가 더 이상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때 힐데가르드는 서른다섯의 여인이었고 열네 살짜리 아들 로스코도 두고 있었다. 결혼 생활 초기에는 벤자민도 그녀에게 큰 애정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녀의 꿀빛 같던 머리는 지루한 갈색이 되었고, 푸른 애나멜 같던 눈은 싸구려 도기 그릇처럼 되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그녀는 자신의 방식에 너무 안주하고 있었다. 너무나 평온하고 자기만족적이었고 열광하는 일이 부족했으며 취향도 너무 수수했다. 새 신부였을 때 그녀는 벤자민을 '끌고' 댄스파티와 저녁식사 자리들을 다녔지만, 지금은 상황이 뒤바뀌어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남편과 함께 사교 모임을 다녔지만 아무런 열정도 없었고, 이미 우리들에게 오게 마련인, 그러고는 인생의 마지막까지 우리와 함께 머무르게 되는 그 영원한 무기력에 함몰되어 있었다. (274, 275쪽)

 

아... 이 문단은 참 읽기가 힘들었다. 영화에서 싸구려 모텔같은 곳에서, 침대에 누운 젊은 브래드 피트가 브래지어를 주섬주섬 입는 케이트 블란쳇을 뒷모습을 보는 장면이 있었다. 케이트 블란쳇의 뒷모습은 등살이 쳐진 탄력없는 모습이었다. 얼굴 표정에서도 예전과 같은 생기가 아니라 슬픔과 아쉬움이 감돌았다. 그런데 난 이 때 브래드 피트의 표정이 너무 잊혀지지가 않는다. "내가 사랑하던 여자가 저런 늙은 모습이라니~" 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 나이는 비슷하지만 외모때문에 서로 차이를 느낀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벤자민이 힐데가르드를 떠나지 않는다. 대신, 어려보이는 나이때문에 장교로서의 커리어를 쌓기는 커녕 미친 사람 취급을 받고, 어려보이는 나이에 맞추기 위해 하버드에 진학하고, 그 이후에는 사립고등학교에 진학하는데, 그런 아빠의 모습을 경멸하는 아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 라는 말. 외모만 보고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되지만, 사람들은 얼마나 외모를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가. 이 책을 보면서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구나, 우리나라가 외모지상주의라는데, 다들 비슷비슷하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는 '노동절'이라는 작품이 좋았다. 한 때는 단짝으로 돈을 뿌리면서 즐겼던 친구가, 자신의 처지가 가난해지면서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자신을 사랑했던 여자가 낙오자가 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실망과 냉정함을 애써 감추면서 부드럽게 자신을 거절할 때. 자신의 주변에 남은 것이라고는 초라하고 경박한 여자 뿐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주인공인 고든은 자살을 선택한다. 사실 한 명이라도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하지만 예일을 졸업하고, 상류 사교파티 안에 자신의 미래를 꿈꿨던 한 젊은이는 자신의 현실과 꿈의 괴리를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소설에서 에디스라는 여자는 고디를 사랑했던 여자였는데, 이 여자는 노동절 밤에 자신의 눈 앞에서 폭동에서 흥분한 어떤 사람에 의해 오빠의 다리가 부러지는 것을 본다. 그리고 그 사람을 찾아나서는데, 이 파트가 잘 이해가 안 됐다. 아마도 가난하고 우울한 고디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처럼, 오빠의 신체가 불구가 되면 오빠를 사랑할 수도 없을 것이므로, 그 이유를 찾는다는 것일까?

 

'낙타의 뒷부분', '오! 빨간 머리 마녀' 도 반전의 재미가 있었다. 전체적으로 스콧 피츠제럴드는 너무 심각하지 않게, 그 시대의 삶을 밝은 색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정말 독자가 무슨 말을 듣고 싶어하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같다. 이 사람의 책을 읽으면서 그 시대 상황이 더 궁금해졌고, 더 많은 재즈시대에 관련된 책을 읽고 싶어졌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