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쿠다 히데오, 하면 자연스레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공중그네'와 '남쪽으로 튀어!'이다. 그리고 나는…… 그 두 작품을 읽다가 포기했었다. 그만큼 오쿠다 히데오는 내게 있어서 ‘불호’로 남아있는 작가이다.
그런데 <죄의 궤적>은 내가 알고 있던, 혹은 생각하던 오쿠다 히데오의 이미지와는 매우 다른 소설이었다.
이 소설의 장르는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범죄 소설, 사회파 미스터리이다. 오쿠다 히데오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기에(실패만 했을 뿐) 비교가 어렵지만, '지금까지의 오쿠다 히데오 작품 가운데 단연 최고 걸작'이라는 평은 과장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죄의 궤적>은 일본 전역을 뒤흔든(너무 뻔한 표현이지만 이만큼 정확한 표현은 없을 듯하여) 유괴 사건. 그 유괴 사건의 시작을 되짚어, 추적해 가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야기는 어느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서 시작이 되는데, 분명 '유괴 사건'에 관한 책이라는 설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1권을 다 읽기 전까지도 유괴의 '유'자도 등장할 기미가 없음에 몇 번이나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 들어가 책에 관한 정보를 다시 읽어봤다(혹시 내가 다른 책과 헷갈린 건가 싶어서…). 조금 계산이 느릴 뿐인 이 빈집털이범과 유괴 사건이 대체 무슨 상관이지?
(읽다가 어느 순간 ‘아…’하고 뒤통수를 맞는 듯한 충격이 찾아오는 구간이 있는데, 사전 정보 없이 읽는다면 그 충격이 더 할 거 같다.)
‘사이코패스’ 범죄자가 나오는 이야기의 경우, 대부분 자극적인 범죄를 묘사하며 ‘얼마나 더 잔인한가’를 겨루곤 한다. 잔인한 사건을 내세워 읽는(혹은 보는) 이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그 범인이 잡혔을 때의 통쾌함을 오락으로서 제공하는 것이다.
<죄의 궤적> 역시 학대, 사이코패스, 유괴, 매춘 등등... 인간을 불쾌하게 할 수 있는 각종 요소가 집합해 있지만, 이 작품은 범죄 자체는 묘사가 되지 않았을 정도로 범죄 자체에 주목을 하지 않는다. 범죄자가, 그런 범죄를 일으키기까지의 과정, 성장기. 마치 나비효과처럼… 방치되고 학대되었던 아이가 감정 없는 살인마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그를 감싼다거나 죄의 무거움을 좌시하는 건 아니다. 이러한 끔찍한 범죄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단순히 한 개인의 문제로만 볼 수 있을 건지.
어디까지가 실화이고 어디부터가 소설인지 읽는 내내 궁금했는데, 그만큼 작가의 묘사가 섬세하고 집요했다.
일반적인 인간의 사고방식으로는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어마 무시하고 잔인한 범죄의 근원은 어디일까? 이 소설은 단도직입적으로 파고든다. 범죄자는 검거되었고, 사건은 해결된 듯하지만 그 어떤 통쾌함도 없이 찝찝함만 남는 이유이다.
인간의 죄는 구분될 수 있을까?
읽고 나서도 한동안, 지금까지도 답을 내리지 못했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솔직한 감상을 적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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